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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cekim Nov 18. 2021

어서 와 입덧은 처음이지?(8~11주)

나의 첫 임신 이야기

경험을 해보기 전까지 나의 입덧에 대한 인지 수준은 드라마 작가들의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입덧에도 종류가 있고, 아침에 특별히 심하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morning sickness이라고  부른다는 것과 사실은 all-day sickness에 가까운 증상이라는 것을 알 리가 없었다. 물론 나는 임신이라는 변화가 일어나기 전부터 후각이 매우 예민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날이 더워지면서 모든 냄새에 감각이 깨어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그것이 입덧의 시작이라는 신호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코로나19 시국이라 모두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있는데도 사람들의 땀냄새, 음식을 꺼내먹지 않는데도 느껴지는 포장된 음식의 냄새, 에어컨의 먼지 냄새 같은 것들이 금방 인지되고 말았고 이내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보통은 9주 정도가 지나서 입덧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남들보다 일찍 입덧이 시작된 편이었다. 임신 5주 차에 임신 사실을 확인한 후 7주가 채 되기도 전에 이미 구역질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7주 차에 정기 검진을 갔을 때 힘들면 참지 말라고 입덧 약을 처방해주셔서 증상이 심할 때만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약을 받아서 집으로 왔다.


7주에서 8주가 되는 동안, 나는 많은 임신부들이 ‘토덧’이라고 부르는 것이 뭔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입덧은 크게 ‘먹덧’과 ‘토덧’으로 나뉜다고 하는데, 먹덧은 소량의 음식을 자주 먹어야만 속의 울렁거림이 멈추는 증상이다. 토덧은 그와 반대는 아니지만, 심한 경우에 맹물에서도 비린내를 느끼며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매우 제한되고 특정한 냄새를 느끼면 자주 구토를 하게 되는 증상이다. 물론 학술적인 용어도 아니고 증상을 일반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마다 느끼는 것들이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인 형태를 구분하자면 그와 같다. 뭐가 됐든 초기 임신부를 매우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에 무엇이 낫고 나쁜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매우 제한되기 시작하자 ‘차라리 먹덧이었다면’이라는 생각이 든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나의 경우, 그나마 처음에는 신맛이 나는 레몬사탕이나 시즈닝이 없는 밀가루 비스킷 같은 것들이 도움이 됐다. 하지만 곧 이마저도 당분 섭취를 위해 억지로 먹는 수준이 되었고, 맹물 대신 늘 과일차를 우려 마셨다. 그리고 고기는 생선은 물론이고 육류 냄새조차 맡을 수 없게 되었다. 모든 종류의 고기는 조리 과정에서든 조리 후에든 나는 냄새를 맡기만 해도 구역질이 났다. 사실 나는 하루에 한 번은 단백질을 핑계 삼아 육류를 섭취할 만큼 고기 요리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나보다는 남편이 돼지고기를 정말 좋아했는데, 모든 과정의 고기를 멀리하게 된 나 때문에 당분간 집에서는 나와 같이 채식을 해야만 했다. 그래도 고기만 못 먹는 것으로 계속되었다면 그래도 견딜 만했을지도 모른다.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된 후 다음 단계는 밥 냄새가 자극적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특히 쌀로만 지은 밥에서는 특유의 쌀 비린내 같은 것이 느껴졌고, 특별히 밥을 하는 과정의 냄새는 높은 확률로 구토를 일으켰고 잡곡밥이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 집 밥솥은 휴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 때문에 남편까지 밥을 못 먹게 할 수는 없었기에, 남편을 위한 즉석밥류가 떨어지지 않게 되었다. 나의 주식은 샌드위치와 샐러드, 고구마나 감자 같은 구황작물, 갖은 과일류가 되었다. 나는 늘 구내식당 메뉴를 보면서 즐거워하고, 특식이 있는 구내식당을 찾아가서 먹을 정도로 메뉴를 선택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었는데 거의 누구와도 점심을 먹기 힘든 나날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회사에서 혼자 샐러드나 샌드위치를 먹는 건 괜찮은데,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오면 나와 남편이 다른 종족이라도 되는 것처럼 다른 식성을 가진 것이 미안하고 힘들었다. 입덧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즐겁게 먹었던 거의 모든 종류의 음식이 이제는 구토 유발제가 돼버린 것이다. 그나마 에너지를 채울 만한 음식 중에 자주 먹었던 것은 화덕피자 종류였다. 도우에서는 밥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았고, 올라가는 재료도 주로 채소였기 때문에 나를 자극하는 식재료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 근처에서 배달이나 포장이 되는 화덕 피자는 거의 다 먹었던 것 같고, 주말에는 꽤나 비싼 피자 전문점을 가기도 했다. 그리고 거의 어느 때라도 간절하게 먹고 싶은 음식은 평양냉면 딱 한 종류였는데, 애석하게도 맛있는 평양냉면으로 소문난 집들은 대부분 서울에 있다. 나는 직장 문제로 서울과 꽤 거리가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한 상태였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평양냉면 맛집까지는 고속도로를 타고 30분을 차로 이동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혼자 한 그릇을 거의 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평양냉면이 유일했기 때문에, 남편이 제시간에 퇴근하는 날에는 톨비와 기름값, 비싼 음식값을 감수해가며 평양냉면을 먹으러 가곤 했다. 그래도 그거라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먹었지만, 날이 갈수록 먹는 양도 줄어들고 있었다.


사실 임신 12주가 되기 전까지는 엄마의 섭식이 태아의 영양에 심각한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한다. 12주가 지나기 전까지는 태반이 형성되기 전이라 주로 난황에서 태아의 영양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총론적인 관점에서 초기 임신부의 영양 상태와 태아의 영양 상태가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먹으면 죽을 것처럼 토하는 음식을 ‘아기를 위해서’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그냥 늘 긍정적인 우리 엄마의 말처럼 “그래도 먹을 수 있는 게 있는 게 어디냐”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내가 먹을 수 있는 새로운 음식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해야 하는 시기에는 입덧이 좀 더 잦아들길 바라면서, 채식 위주의 식단을 계속했다. 양치만 해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직전에 먹은 것들을 확인해야만 하는 시간에는 자괴감이 많이 들었지만, 12주가 지나 15주 정도가 되면 증상이 끝난다는 선배 임신부들과 주치의 선생님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며 그저 버텼다. 그 모든 버티는 시간의 불편을 가장 많이 줄여준 것은 무엇보다도 임신 7주부터 처방받았던 입덧 약이었다.


정말 고맙게도 입덧 약은 정말 임신부의 입덧 증상을 위해 개발된 약이었다. 많은 경우에 임신부, 어린이, 미숙아처럼 대상의 수가 많지 않은 경우 경제적인 이득을 보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들의 특정한 증상을 위한 약보다는 다른 증상을 위해 쓰는 약의 부수적인 작용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병원에서 처방하는 입덧 약은 처음부터 사용 대상이 임신부이며, 임신 중의 구역 증상을 줄이는 역할을 하는 약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임신부나 태아에게 미치는 다른 부작용은 없고, 나의 경우 입이 마르고 사용량에 따라 피로도가 증가하는 정도의 부작용이 있었다. 일반 성인 임신부의 권장 복용 용량은 취침 전 2정으로, 증상이 심할 경우 오전과 오후에 1정을 추가 복용할 수 있어 하루 최대 4정까지 복용이 가능했다. 병원에서는 일반 용량인 1일 2정을 기준으로 다음 진료일까지 쓸 수 있는 약을 처방해주었다. 나는 처음 출퇴근 기차에서 지옥을 경험하고 난 후부터 그 약을 매일 복용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취침 전 2정을 복용했으나, 다음 날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졸려서 자기 전에도 1정으로 양을 줄였다. 그리고 오후까지 버티다가 다시 구역질이 시작되면 1정을 추가로 복용했다. 결과적으로는 하루에 2정 정도를 복용했으나, 지속시간을 고려하여 저용량으로 유지를 한 셈이다. 내게 이 약의 효능은 우선 역하게 느껴졌던 모든 냄새에 대한 후각이 약간 둔해지는 것에서 시작했다. 원하지 않게 모든 냄새를 다 느껴야만 하는 내 코가 조금 안정을 찾자, 구역질을 일으킬만한 원인이 어느 정도 나아졌던 것이었다. 두 번째로는 구토 자체가 줄게 되었다. 아무리 둔해졌어도 원래 자극을 느끼는 고기, 밥 냄새, 땀 냄새 등에 면역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구역질이 시작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그게 실제 구토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극도로 줄어들게 된 것이다. 위가 약하고 식도염이 있는 나로서는 일단 구토를 줄인 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매우 개선되었다.


물론 나는 입덧 약의 사용 덕분에 그나마 영양 상태를 유지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덧을 하는 기간 내내 몸무게는 약 4kg 정도가 빠졌지만, 구토를 계속했더라면 그나마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본다. 입덧 약을 계속 먹으면서도 입덧을 느끼는 나를 보며, 엄마는 그게 ‘보통 사람들이 하는 정도의 입덧’이라고 생각했고 경험하지 못한 의학적 방법에 대해 의심을 거두지 못한 아빠도 입덧 약에 대한 불신을 몇 번 드러냈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것이 나를 향한 사랑과 걱정의 일부라고 생각해서 듣기만 하고, 정상적으로 출근하여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삶의 질을 위해 나는 입덧 약을 계속해서 복용했다. 부모님에게는 이런 약이 나오기 전의 옛날이었다면 입덧으로 인한 영양 문제로 결국 입원에 이르게 될 것을 이런 약이 그런 경우를 많이 줄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나는 이 약을 홍보하려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이 약의 단점은 꽤 명확하다. 가장 큰 단점은 아무래도 비급여 의약품이라는 것이다. 그 모든 효능에도 불구하고 이 약은 매우 비싸다. 그래서 남은 약과 앞으로 필요한 약을 잘 계산해서 추가 처방을 받아야 하고, 입덧이 줄어드는지 잘 관찰해야 했다. 그리고 부작용에 대해서는, 나의 경우에 코와 목이 마르는 것이 생각보다 심해서 습한 계절이었음에도 불편감을 느꼈다. 그리고 졸음이 오거나 약간 둔해지고 멍하니 있게 되는 부작용이 있었다. 모든 약이 그렇지만, 이득이 더 클 경우에는 복용이 필요하지만 완전하고 완벽한 것은 없다.


강렬한 입덧은 나로 하여금 다른 결정을 앞당기게 했다. 사실 나는 내 입덧이 이렇게 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하더라도 약을 먹으면 드라마틱하게 증상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일찍 휴직하라는 남편의 권유와 먼저 임신하신 파트장님의 진심 어린 조언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일을 하다가 휴직을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맡고 있던 업무가 꽤나 시즌을 타는 일이어서, 너무 바빠지기 전에 휴직을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정된 육아휴직의 시간을 아기가 태어난 후에 시간을 더 많이 보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고민을 했다. 이제는 모든 회사가 올해 11월부터 적용되는 부분이지만, 내가 다니는 회사는 이미 전부터 육아휴직을 임신기부터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복지가 매우 좋은 편이라, 육아휴직 기간도 아이 1명당 최대 3년까지 쓸 수 있었다. 물론 휴직 기간 동안의 급여는 최대 12개월까지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휴직이 가능하다고 해도 경제적 여건을 고려하여 최대 기간을 다 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무튼 나는 2년 정도 휴직을 할 생각이었고, 애착 이론과 발달을 전공한 석사 졸업생답게 가능하면 오래 아이의 영아기를 함께하고 싶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입덧이 시작되면서 기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면서 일단 내가 건강하게 아이를 낳아야 다음을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물론 몇 달이라도 더 급여를 받으면 경제적으로는 좀 더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겠지만, 이미 임신을 한 시점에서 내 우선순위는 나와 아기의 건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특별한 건강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차라리 충원이 가능하고 일이 바쁜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내가 충분히 인수인계를 주고 직장을 떠나는 것이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더 나을 것 같았다. 휴직 일정을 조율하던 중 생각보다 빠르게 휴직을 하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10주 차에 찾아온 복통이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함께 일하던 파트원과 파트장님이 개인적인 일과 분만으로 휴직에 들어가면서, 팀에는 변화가 있었고 새로운 사람들과 일을 하는 것이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컸던 모양이다. 배가 당기는 느낌과 두통이 갑자기 시작되어 급하게 병가를 내고 산부인과로 택시를 타고 달려갔다. 다행히 아기에게 문제가 없어 보이며 혹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시기에, 귀하게 찾아온 아기를 생각하면 내가 이것저것 잴 때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예정보다 빠른 임신 초기를 다 지나기 전에 휴직을 결정하게 되었다. 직장에는 물론 나보다 입덧을 심하게 하면서 나보다 먼 거리에서 통근을 했던 선배도 있었다. 이제야 일을 좀 알 것도 같은데, 이제야 한 사람 몫을 제대로 해내는 것 같은데 휴직을 하는 게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 생각을 하고 집에 가는 길에 끊임없이 구역질을 하면서 다시 마음이 바뀌곤 했고, 결국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이해를 받을 수 있을 때 휴직하는 것도 복이라고 생각하며 휴직을 결정했다. 11주를 꽉 채워서 휴직을 해버렸기 때문에, 일하는 임신부로서의 기록은 여기까지다. 새삼 막달까지 출근을 하시면서 야근도 자주 하셨던 파트장님이 너무 존경스러웠고, 임신 초기에 내가 받은 배려들을 전혀 또는 거의 받지 못했던 전 직장의 동료, 선배들이 많이 생각났다. 다니던 병원도 평일 낮에 외래 진료를 잡자 주치의 선생님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일은 그만두셨냐’고 물어보셨다. 마치 그게 당연하고 정해진 순서인 것처럼 자연스러운 질문이라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임신을 한 여성이 직장에서 어떤 형태로든 배려를 받는 일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육체적인 한계가 생기는 것이 분명하기에, 월급 루팡이 될 수준으로 일이 줄어들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붐비는 출퇴근 시간을 피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주고, 집에서 추가적인 업무를 볼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은 엄청난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있는 선배가 회사에 있다는 것과 그들이 나를 이해해준다는 것이 휴직을 결정하기까지 나에게 너무 큰 응원과 힘이 되었다. 내가 겪는 입덧을 이해하고 먼저 휴직을 일찍 들어가는 것이 나와 아기를 위한 일이라고 말해준 것도 같이 일하던 동료와 파트장님이었다. 여러 가지로 좋은 조건이 갖춰졌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지만, 어쨌든 내가 경험한 입덧은 나에게 ‘휴직’이라는 신분의 변화를 가져다줄 만큼 큰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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