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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cekim Feb 13. 2022

만삭으로 가는 길(28~31주)

나의 첫 임신 이야기

짧은 가을이 금세 지나고, 코가 얼얼한 바람이 부는 계절이 찾아오고 있었다. 나는 이제 누가 봐도 임신 후기인 배를 내밀며 뒤뚱뒤뚱 걷기 시작했고, 새로 이사한 집과 옮긴 병원에 적응하는 시간을 갖고 있었다. 병원을 옮기면서 새로 예약한 산후조리원과 연계된 스튜디오에서 만삭 사진을 찍으러 오라는 연락이 왔는데, 만삭 사진은 원래 진짜 만삭인 36주가 아니라 28주~32주 사이에 찍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혹시 주수가 더 차면 몸이 더 힘들어질까 봐 28주에 예약을 한 상태였는데, 막상 사진을 찍는 날짜가 다가오자 갈수록 떨어지는 자존감에 그런 사진을 남길 필요가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침이면 얼굴이 붓고, 저녁엔 다리가 부어서 거울 보기가 이보다 싫을 수가 없었다. 이사를 하느라 지친 몸을 핑계 삼아 나는 사진 찍는 날짜를 한 주 미뤘고, 날이 더 추워지면서 29주가 되었다.


만삭 사진을 찍는 것이 고민되었던 이유는 내 몸이 예쁘지 않게 느껴져서도 있었지만, 아기 성장 앨범 계약을 강요하는 스튜디오들이 많다고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사진에 관심이 많았기도 했고, 셀프로 찍어줄 생각도 있었기 때문에 고민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아기 사진을 어떻게 찍어주고 있는지 검색을 많이 해봤다. 생각보다 내가 가기로 한 스튜디오는 무난한 것 같아 보였고, 셀프로 찍는 과정이 험난해 보였다. 아기의 성장 일정에 맞추어 촬영 세트를 빌리고, 세팅하고 찍는 것뿐 아니라 색감 보정까지 할 시간이 있을까 싶어 성장 앨범은 해야 되려나 싶으면서도, 액자나 앨범은 짐만 될 것 같기도 해서 고민이었다. 결국은 만삭 사진 찍는 날까지 어떻게 할지 결정은 하지 못했고, 크게 기대는 하지 않는 마음이 되어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임신을 한 뒤로 거의 집에서 보낸 나는 화장을 하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었다. 물론 할 일이 있었다고 해도 화장 기술이 거의 없는 나는 색깔이 밝은 선크림을 얼굴에 대충 찍어 바르는 것이 최선이었지만, 본격적으로 전문가가 내 얼굴에 손을 대기 시작하자 갑자기 세련된 도시 여자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눈도 평소의 두 배는 커진 것 같았고, 생기가 도는 얼굴이 되 머리까지 세팅해주자 어쩐지 설레는 기분이 되었다. 남편과 결혼사진 찍을 때 기억도 나고, 남이 예쁘게 찍어주는 둘의 마지막 가족사진일 거란 생각이 들자 이왕 온 거 예쁘게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 스튜디오에 있는 것 중 깔끔한 것을 빌려 입었고, 서 있는 게 힘들다고 말씀드리자 촬영에서 보정을 기다리는 것까지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빨리 찍을 수 있었다. 물론 보정의 힘이 크긴 했겠지만, 예상했던 아기 성장앨범 설명을 듣기 전에 본 만삭 사진 결과물은 놀라울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배에 손을 얹고 태어날 아기를 상상하며 지은 남편과 나의 표정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사진으로 남기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습게도 그동안 나 스스로 아름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니 아름답고 행복한 부부의 모습인 것 같아서, 만삭 사진을 통해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게 된 느낌이었다. 나중에 아기가 태어나고 나면 그 행복한 표정의 우리 사진을 보여주면서 태어나기도 전부터 우리에게 아기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였는지,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었는지 꼭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걸 보고 나니 아기 사진도 기대가 돼서 성장 앨범 계약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리원 연계 스튜디오들이 만삭촬영을 무료로 해주고, 그토록 신경 써서 친절하게 해주는 이유를 몸소 체험한 하루였다.


29주에는 한 달만의 정기 검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19주부터 진단받았던 완전 전치태반에 변화가 있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 날이기도 했다. 병원을 옮기기 전부터 위치가 변하기 어렵게 자리 잡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심 그동안 출혈이나 심각한 통증이 없었기 때문에 극적으로 태반이 위로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너무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정상 위치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분 전치태반으로라도 변화해서 출혈 위험이 조금이라도 낮아졌기를 기대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초음파와 진료를 기다렸지만, 결과는 안타깝게도 여전히 태반이 자궁 입구를 완전히 막고 있다는 기존 진단 그대로였다. 뿐만 아니라 태반이 수술 절개 부위에 걸쳐 있는지, 제왕절개 시 수혈 확률이 100%고 남들보다 출혈이 다소 많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노련한 나의 담당 교수님은 수술 동의서를 받을 때 더 무서운 설명을 듣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도, 산후 출혈이 있도 최대한 잘 잡을 수 있을 테니 너무 걱정은 말라고 하셨다. 희망 사항과는 달랐지만, 그래도 예상했던 결과여서인지 수술 날짜를 잡자는 말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보통 선택제왕절개는 38주 이후에 날을 잡만, 나는 진통이 오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일 수 있어서 만삭이 되는 37주가 되자마자 수술 날짜를 잡아야 했다. 내가 37주 0일이 되는 날이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날짜는 37주 2일이 되는 월요일뿐이었다. 그래도 교수님이 주말에 쉬고 좋은 컨디션으로 월요일 수술을 맞을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월요일 오전 수술은 상대적으로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우스갯소리로 간호사 선배와 제왕절개의 가장 좋은 시간은 교수님 컨디션이 좋은 날 점심시간 직후가 아니겠느냔 이야기도 했지만, 어쨌든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막상 수술 날짜가 정해지고 나니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4주 간격이었던 정기 검진도 2주 간격으로 줄어들었다. 날짜가 정해지고 나니까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던 출산이 너무 가깝게 느껴졌다. 29주가 금방 30주가 되었고, 만삭 사진까지 여기저기 자랑하고 나니 몸이 달라진 게 확연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몸무게가 느는 속도도 조금 빨라지고, 배가 커지는 게 느껴지면서 허리 통증이 심해졌다. 허리 통증이나 골반 균형이 맞지 않는 느낌은 임신 초기에도 있어왔지만,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통증이었다. 절대로 똑바로 누울 수 없었기 때문에 임신부 전용 바디필로우를 배와 등에 끼고 자면서도 새벽에 한 번은 무조건 허리가 아파서 눈을 떴다. 이제는 활발해진 아기의 태동도 부위별로 다르게 느껴져서 제법 존재감을 뽐냈다. 출산이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점점 몸이 불편한 곳이 늘어나니 본격적으로 필요한 물건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생각해주는 친구, 지인, 직장 동료들이 보내오는 앙증맞은 아기 선물들을 아기방에 쌓아만 두고 흐뭇하게 구경하곤 했는데 이제 실제로 필요한 물건의 리스트를 작성할 때였다. 웬만한 물건은 오늘 시켜서 내일 받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나는 출산 가방과 조리원에 필요한 물품을 중심으로 리스트를 작성했다. 처음에는 아무리 봐도 그게 무슨 물건인지, 어디에 쓰는 것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한 번 그 모든 물건들을 직접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검색을 해보니 많은 임신부들이 베이비페어라는 박람회장에서 물건을 직접 보고 산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고위험 임신부였고, 그런 박람회장을 걸어 다닐 수도 없으며 멀리 차를 타고 나가는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여러 번의 검색 끝에 집에서 차로 30분 이내 거리에 출산용품과 유아용품을 모아서 파는 작은 매장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직접 가서 봐도 필요한 물건을 골라낼 수 있는 판단력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다시 엄마 찬스를 사용해 엄마와 함께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물건을 구경했다. 문제는 엄마가 나를 기를 때는 없었던 물품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같이 설명을 들어도 이게 정말로 구매가 필요한 물건인지 엄마도 나도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국민육아템'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들만 조금 사야지, 생각했는데 매대에 있는 거의 모든 물건에 그런 별명이 붙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육아 선배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물건도 내 아기가 좋아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했다. 결국 매장을 다 돌아보고도 내가 실제로 산 것은 당장의 내 허리 통증을 경감시켜주는 산전 복대뿐이었다.


필요한 물품 리스트는 결국 가게에서 준 리스트를 육아 선배가 한 번 걸러주고, 유튜브를 찾아가며 첨삭을 해서 필요해 보이는 것만 1-2개씩 사기 시작했다. 사실 물품 리스트는 아기 물건보다는 수술을 한 뒤의 나를 위한 물건이 대다수였다. 아기 물건은 당장 필요한 배냇저고리, 속싸개, 겉싸개, 모자 같은 것을 제외하고는 급하게 살 필요가 없었고 그마저도 이미 선물이 들어온 것들이 많았다. 사용 기간이 짧을 것으로 예상되는 바구니 카시트와 디럭스 유모차 세트는 당근 마켓을 들여다보다가 집 근처에 거의 새것에 가까운 것이 있길래 얼른 구매를 했다. 물론 아기침대도 그렇게 급하게 살 필요는 없었지만, 직장의 연계 쇼핑몰에서 직원 할인가로 새 침대를 중고 가격에 살 수 있어서 얼른 사서 조립해두고는 이불까지 세팅을 해두었다. 그리고는 아기 몸이 닿는 부분의 커버를 몽땅 벗기고 선물로 들어온 아기 옷들도 차근차근 펼쳐놓고 세탁조를 청소한 뒤에 아기 빨래를 잔뜩 해봤는데, 작고 앙증맞은 옷들을 거실에 늘어놓으니 진짜 아기 엄마가 되는구나 싶어서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저 작은 옷들도 내 아기가 태어났을 땐 크게 느껴지겠지, 싶고 아기가 저 옷들을 입으면 얼마나 귀여울까 싶어 햇살이 드는 오후 내내 흐뭇한 마음으로 그 빨래들을 지켜보곤 했다.


30주가 넘어가면서부터는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쏟아졌는데, 아무래도 밤에 길게 자지 못하고 수면의 질이 떨어져서 그런 것 같았다. 허리가 아파서 깨거나 화장실이 급해서 일어나면 다시 잠들기까지 2-3시간 이상이 필요했고, 밤에 잠을 잘 못 자니까 아침에 일어나도 계속 잠이 왔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나면 또다시 잠이 쏟아져서 2시간 정도를 자고, 간식을 먹고는 멍하게 앉아있거나 책을 조금 읽고 저녁을 먹고 다시 졸다가 잠이 들었다. 하루에 절반 정도는 잠을 자고 있거나 잠을 자기 위한 준비 상태로 살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렀고, 2주 만의 정기 검진이 다가와 있었다. 31주의 정기 검진에는 꽤나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아기의 초음파를 볼 수 있었다. 빛을 감지할 수 있는 월령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초음파실의 조명이 정확히 아기 얼굴 쪽을 비추고 있자 양손으로 번갈아가며 눈을 가리고 귀찮아하는 모습이 제법 웃겼다. 초음파 기계가 닿는 자리마다 귀찮았는지 엉덩이로 발로 한껏 기계를 밀어내느라 배가 불룩불룩 솟아올랐고, 초음파를 봐주시는 선생님도 헛웃음을 지었다. 입 뻐끔뻐끔 벌려서 양수를 먹는 세모 입도 귀여웠다. 아기는 이제 1.6킬로가 되었고, 내내 얼굴은 보여주지 않았지만 건강한 것은 분명했다. 수술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아기가 건강하다는 얘기를 들으니 외래에서의 긴 기다림도 다 괜찮게 느껴지고, 두려움도 별로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진짜 출산일까지는 6주 정도가 남아있었지만, 만삭의 배를 갖사진을 찍고 수술 날짜까지 잡고 나니 이제는 다가오는 엄마로서의 삶을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신을 시도할 때부터 엄마가 되는 일에 대해 고민과 생각을 거듭했지만, 막상 아기를 만나는 날이 가까워온다고 생각하자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흘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제법 아플 정도로 태동도 강해지면서 허리와 어깨가 항상 아팠고, 걷기도 힘든 나날이 찾아왔다. 아침저녁으로 발이 너무 부어서 실내용 푹신한 실내화를 신어야만 집 안에서도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아기의 요구보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내 계획대로 시간을 쓸 수 있는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조금은 초조했다. 아기를 출산하기 전에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뜨개를 하든, 나를 위한 시간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런 의지와 생각보다 쏟아지는 잠과 피로에 맑은 정신으로 생각을 하는 것이 어려웠고, 할 수 있는 일은 전자책으로 나온 신간 소설을 맘껏 사서 잠들기 직전까지 누워서 읽는 일이었다. 날은 점점 추워지고, 몸은 점점 불편해져서 집 앞에서 차를 한 잔 마시며 그림을 그리는 일도 너무 힘겨웠다. 차근히 그러나 생각보다 빨리, 나는 만삭의 임신부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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