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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cekim Aug 16. 2022

우리 아기의 200일을 축하하며

어쩌다 주간일기


아기를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아직도 많은데, 매일매일 열심히도 자라는 아기는 어느새 6개월이 되어 혼자 앉기도 하고 발도 만지면서 까르륵 웃는다. 이번 주 목요일은 우리 아기가 200일이 되는 날이자, 남편이 미국에서 돌아오는 날이었다. 내게만 길게 느껴졌던 남편의 출장이 끝나는 것까지 더해져서, 우리 아기의 200일이 더 기분 좋은 날이었다. 비록 남편의 비행기가 연착되고, 업무 연락을 하느라 집에 조금 늦게 도착한 데다 시차 적응 문제로 그날 바로 200일을 축하하지는 못했지만, 집에서 간단하게 기념 촬영이라도 해주기로 했다.


열심히 고르고 고른 캠핑 콘셉트의 셀프 촬영 소품은 금요일에 도착했다. 물론 마음 같아서는 도착하자마자 풀어서 세팅해두고 아기가 기분 좋은 시간에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남편이 돌아왔지만 좀비나 다름없는 상태여서 원래 하던 아기 케어에 남편 케어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놀라울 정도로 자기 자신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스타일이라서, 컨디션이 조금 안 좋을 때 세심히 보지 않으면 크게 앓을 때까지 스스로 눈치를 못 채기 때문이었다. 어쩐지 아기와 둘이서만 있을 때보다도 더 바쁜 느낌이라, 저녁이 되어서야 아기 방에 촬영 소품들을 하나씩 꺼내 두었다. 토요일에는 정말 기분 좋을 때 꼭 사진을 찍어야지, 다짐했다.


아기는 200일이든 201일이든 202일이든 스스로 기념할 줄은 몰랐지만, 200일을 기념해서 새로운 장난감을 사줬다. 중고를 살까, 사지 말까 그토록 고민하던 점퍼루와 그네 세트를 사준 것이었다. 사실 이건 부피가 너무 큰 데다 사용기간이 엄청나게 긴 것은 아니라서, 당근마켓을 한 달 넘게 들여다보며 고민하던 아이템이었다. 날이 갈수록 무거워지는 아기와 내 손목의 통증이 강해져서 더 이상 몸으로 아기를 들어 올리며 놀기가 힘들어져서 고민을 길게 할 시간이 없구나 생각했다. 우리 집 인테리어를 크게 해치지 않으려면 신제품인 아이보리 톤의 세트를 꼭 사고 싶었는데, 당근에 올라오는 것은 색이 강한 옛날 제품들이라 그냥 많이 태워야겠다 생각하고 새 제품을 큰맘 먹고 주문했다.

200일에 딱 맞춰 도착한 아기 선물은 내 생각보다 거대했다. 꽤나 넓은 거실을 자랑하는 우리 집에서도 엄청난 존재감을 뽐냈다. 남편 도착이 늦는 바람에, 하루라도 빨리 아기를 태워보고 싶었던 나는 혼자 조립을 시도했다. 분명히 상품 후기에서는 여자 혼자서도 쉽게 조립한다고 쓰여있었는데, 아무래도 그분은 최소 걸스카우트 출신이셨던 것 같다. 빈약한 나의 상체 근육과 염증이 도진 손목으로는 매우 무리가 가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아기가 점프를 하는 힘을 견디고 그네의 하중도 견뎌야 해서 튼튼한 만큼 무겁고 나사도 꽉 조여야 했다.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완성한 장난감 3종 세트를 하나씩 태워줬는데, 처음인데도 신나게 웃으면서 뛰고 타는 걸 보면서 사주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우리 아기도 생일은 아니지만 200일 선물을 제대로 받은 셈이다.


그리고 토요일이 되었는데, 생각보다 촬영 타이밍을 잡기가 어려웠다. 금요일부터 오랜만에 아빠를 만난 아기는 대흥분 상태가 되어 낮잠도 자려고 하지 않았고, 자더라도 잠깐 자고 일어나 다시 아빠를 찾고 놀아달라 안아달라 보챘다. 어렸을 때 더 자주 보다가 가끔 보게 되는 할머니는 다시 만날 때마다 빤히 쳐다보면서 인지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편인데, 아빠는 역시 달랐다. 떨어져 있는 동안 매일 영상통화를 하긴 했지만, 아빠는 보자마자 웃고 신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혹시 너무 오래 못 봐서 낯가리고 울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아기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기억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잘 자고 일어나 컨디션이 좋을 때를 찾다 보니 어느새 늦은 오후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기가 방긋방긋 웃기 시작하길래 얼른 옷을 갈아입히고, 아빠에게 빌린 좋은 카메라를 꺼내고 조도를 맞춰가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내가 아기에 대해 이제 다 안다고 생각할 때 아기는 예상을 벗어나는 행동을 한다. 우리 아기는 핸드폰 카메라를 보고도 잘 웃어주던 아기인데, 큰 카메라가 낯선지 전혀 웃지를 않았다. 앉혔다가 눕혔다가, 엎드렸다가 같이 바닥을 구르고 애타게 부르며 갖은 재롱을 피워봤지만, 아기는 웃지 않았다. 그래도 열심히 세팅한 만큼 사진이 예쁘게 나오긴 했지만, 너무 아쉬웠다. 게다가 너무 오랜만에 만져보는 DSLR이 나도 너무 낯설어서 세팅이 힘들었다. 예전엔 그렇게 매뉴얼 모드도 순식간에 세팅해서 찍곤 했는데, 시간이 생명인 아기 촬영에서 세팅이 맘에 안 들어서 여러 모드로 찍다가 플래시도 터지고 난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셀프 촬영의 장점은 재촬영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토요일은 그만 찍기로 하고, 저녁을 먹으러 외출을 했다. 그럴 땐 남편을 닮았는지, 아기는 사진 찍기가 끝나자마자 다시 방긋방긋 웃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는 내내 남편이 밥 먹는 모습을 보면서 까르륵 웃고 기분이 좋아서 난리도 아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귀엽다, 예쁘다고 하기만 해도 관심을 갖거나 웃어주는 스타의 본능을 보여주기도 했다. 근데 왜 내가 사진만 찍으면 도도한 공주가 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 핸드폰 카메라까지 세팅을 완벽하게 끝내 놓고 밤새 잘 자고 일어나 기분 좋은 아기의 아침을 기다려 재촬영을 시작했다. 남편이랑은 언제 만났는지 기억도 안 나면서 아기는 100일마다 이렇게 신경 써서 사진을 찍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웃고 있는 행복한 아기 사진을 남기고 싶은 욕심이 남아서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하루 전에 한 번 봤다고 촬영 세트가 낯설지 않은지 아기는 기분이 나쁘지 않아 보였고, 얼른 셔터를 눌러가며 기분 좋게 촬영을 마쳤다. 아기는 그리웠던 아빠와 낮잠도 자지 않으며 끝내주는 주말을 보냈고, 나는 아기의 예쁜 사진을 남기는 200일이었다. 문득 돌아보니 신생아 시절에는 목이라도 가눠줬으면 싶었고, 50일쯤엔 잠을 자줬으면 했던 것 같다. 100일 무렵에는 우리 아기가 소리 내서 웃으면 얼마나 예쁠까 상상만 하곤 했다. 그리고 200일이 지난 우리 아기는 까르륵 소리를 내며 웃기도 하고,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면 노래하듯 옹알이를 하기도 한다. 놀라울 정도로 나와 비슷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대부분의 경우 점점 아빠를 닮아가는 얼굴을 발견한다.


아기와의 200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300일도, 돌도 지나고 나면 이렇게 금방 지나가버리는 느낌일까 싶다. 요즘 아기를 재우기 전에 '너무 빨리 크지는 말아줘'라고 속삭이곤 한다. 하루가 다르게 무거워지고, 하루가 다르게 힘이 세지며 활동적이 되어 가는 아기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우면서도 아깝다. 200일 동안 수고한 나와 남편, 그리고 크느라 수고한 우리 아기를 서로 다독이며 행복한 주말을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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