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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Jan 20. 2024

나의 2023년에게

환희로 시작해서 위로로 마무리한


성격이 초파워J라서 지금보다 젊었을 때는 매달을 결산하고 다음달을 준비하는 유난을 떨었었는데 지금은 살아있는 자체가 유난이라서 결산이고 뭐고, 2023년은 어쨌든 조금은 특별했기 때문에 정리를 해보고 싶다(브런치도 오랜만이다) 


2022년12월에 퇴직하고 한 3개월놀면 돈 없으니 다시 일해야겠지, 일하고 싶어지겠지, 했는데 여직 안하고 이러고 있는 2023년.




1월 세부

행복만했던 한 달이었다. 걱정 염려 1도 없었다. 코로나로 3년 꿇으면서 친구들과 돈모아 떠난 세부한달(정도)살기는 너무 좋았다. 한국에서 영감님들은 너무 춥다, 차에 탔는데 -15도다, 이런 말을 전혀 상상을 할 수 없었지. 그렇게 추운지, 추운 게 어떤 느낌인지도 모르겠던 하루하루들.

내가 세부에서 포스팅올릴 때마다 이렇게 추운 날에 벗은 모습(?)보니 이빨이 시리다고 하는 친구도 있었고. 완벽했던 한 달이었다.



특히, 이때 자랑삼아 올린 #세부악동호핑 의 후기포스팅을 사장님이 보시고 초대해주셔서 호화로운 #요트호핑 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인플에 대한 욕심이 스물스물 차올랐다.


2월 현실적응

넘치는 모성애로 세부다녀왔더니 방학인데 지들은 학원다녀서 억울하다, 왜 눈이 안오냐, 세부가느라 눈사람 눈싸움 다 못했다며 징징. 뭔소린지.
그냥 일상에 적응하는 게 힘들었던 것 같고. 뭐 그랬다.


3월 학교

아이들은 학교에 가기 시작했다. 아직 육휴가 끝나지 않은 친구와 열심히 전시를 보러 다니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신나는 인생을 살았다. 본격적인 전업주부의 날들이 시작되었고 딸은 4학년 여자아이답게 아이돌과 아이돌댄스에 빠져가지고 걱정이 되기 시작.


4월 문화생활, 피부과도 다니고

시간있는 김에 #피코토닝 도 하고 #편평사마귀제거 도 하면서 얼굴을 튜닝했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지만 그래도 내눈에 심히 거슬리던 잡티가 사라져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때쯤 #으네 브랜드에서 #럭키으네 를 시작하며 으네 옷을 몇 벌 받았다. 열심히 사진도 찍어올리며 나름 인스타도 활발하게 하게 되었고 브랜드에 대한 이해와 충성도가 쌓여서 결국 5월 신강팝업에서 알바도 했다.

1월 세부가기전에 12월엔 문학기행도 갔었는데 문학기행으로 내 인생이 바뀐 건 아니었지만 이전과는 다른, 뭔가 접점이 없는 새로운 일이 열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그게 출판이나 교정 같은 쪽에 관련된 일일 줄 알았는데 지금 되돌아보면 그쪽 방향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인생의 길.




5월 알바, 아빠발병
 
날씨 좋던 5월에 캠핑 간 엄마아빠가 돌아오기로 한 날짜보다 빨리 오셔서 갑자기 집에 들르라며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 있구나.


연말에 요로결석으로 한 차례 고생을 하셨던 아빠는 요로결석이 해결되어 다시 생기를 찾으셨었는데 이후로 나타난 혈뇨로 병원에 갔더니 신우요관암 이라는 희귀암 진단을 받으셨고 후에 조직검사로 이미 폐와 임파선에 전이된 상태로 4기라는 설명을 들었다. 뼈전이가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아, 그렇구나.
아빠가 암이구나.
내 기억에 친할머니도 신장암으로 60살에 돌아가셨는데.
나도 신장이 안좋을 수 있겠구나.
근데 아빠가 아프구나.
암이구나.

그 와중에 5월말에 신세계강남점에서 열렸던 #으네팝업 에서 알바도 했다. 돈도 벌었고 돈도 썼고 기가막히게 랜덤도 잡아서 옷장퀄리 만족스러웠다.


내 자식 또래나 내 또래만 만나다가 MZ세대와 함께 하니 기분이 좋았고, 장사와 사업 사이에서 고민아닌 고민도 해보았다. 젊은 대표님의 생각과 비전이 존경스러웠다. 계속 브랜드와 대표님을 추적할 예정. 후훗.


6월 제주도

사실 조직검사결과는 6월에야 나왔기 때문에 아빠가 암인 걸 알았어도 바로바로 사람들에게 알리기가 어려웠다. 뭐라고 전해야할 지도 모르겠고.


아빠의 상황을 전하는 내 말을 내 귀로 듣고 있는 게 너무 괴로웠다. 진전된 기수에 비해 아빠의 안색은 좋은 편이었고, 아이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할아버지를 봤다며 늘 반가워하고 좋아했다. 항암도 잘 받으셨기 때문에 나는 나대로 친구들과 제주도로 미술관여행을 다녀왔다.


이때 묵었던 #신창여관 의 후기가  효도를 하여 겨울여행을 준비하게 만들었다. 책까지는 아니지만 내 일상을 돕는 글쓰기는 하고 있구나 싶은 생각. 꿈은 작가지만 일단 나불나불부터.




7월 방학, 무더위, 친구복직

애들 방학하기전에 맨날 나갔다. 진짜 더위 못이기는 성격인데. 근데 방학은 더 못이길거이므로. 게다가 7월중순에 친구도 복직예정이라 하루하루를 아껴 놀아야했다. 전시를 보러 가고 맛있는 걸 먹으러 다녔다.


8월 부탁, 자연치유, 레뷰시작

이때부터 용기를 내어 교회분들에게도 아빠의 상황을 말씀드리고 기도부탁을 드렸다.


나의 #네이버블로그 는 #애드포스트이용제한 에 걸려 광고를 게재할 수 없게 되어 내 깜찍했던 수익에 금이 갔다. 그래서 체험단 후기를 작성하는 #레뷰 를 시작했고 레뷰덕분에 피부관리, 운동, 맛집, 미용실 등을 다니기 시작했다.
현금을 버는 것은 아니지만 늘 쓰던 돈을 안써도 됐기에 나름의 수익을 내는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생각일 뿐이고 남편은 왜 맨날 나가냐고 했다.
안통하는구나.

아빠는 의사와 계획했던 4회기의 항암을 마치고 #자연치유 방법을 쓰시겠다고 했다. 맨발걷기, 식이요법 등으로 암이 좋아하는 것을 끊자는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이 방법은 아빠에게 좋은 결과를 주진 않았다.


9월 아들생일, 경주여행, 10년위기

아들의 생일이 있는 달이다. 자기의 생일 다음 날부터 다시 1년을 기다리는. 갖고 싶은 목록을 정해 할머니와 부모인 우리 부부에게 들이댄다.부담스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9월말엔 추석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아빠의 건강을 장담할 수 없으니 좀 크게 할까 싶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곧 갈 것 같으니 모이시오'하는 모양일 것도 같아 고민이 되었는데, 엄마는 10월 할머니할아버지 기일에 아마도 장지에서 아빠형제들 모일 것 같다, 아빠가 뭐 드실 수 있는 것도 없는데 굳이 모이자고 하면 더 힘들 것 같다, 등의 이유로 엄마가 추석은 너 하고싶은거 하고 보내라 했다.

가장 후회하는 일이다. 10월에 삼촌들밖에 오시지 못했고, 고모들은 2-3년만에 만난 것이 아빠의 장례식장이었다.

추석을 휴가삼아 떠났던 경주여행에서 나는 이 생활의 끝을 보았고, 보았기 때문에, 그래서.

아빠보다 내가 먼저 가면 안되지 하는 생각으로 나는 목숨걸어 내 목숨을 붙들고 귀경했었다.

가사도우미가 와주신다면 나보다 집안일을 더 잘해주실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집안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굳이 지켜내야 할 가정의 가치는.

일단 아이사춘기때는 그러지 말라더라.

내 목숨도 버티고 사춘기도 버티고 갱년기도 버텨보자.

그렇게 힘들게 시작하는 10월.
  
10월 아빠항암 재시작

아빠의 통증이 너무 심해 약속되어있던 진료날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응급실을 통해 의사를 만났다. 아빠의 암은 더 커져있었고 다른 항암제로 항암을 시작했다.
진통제만 단계별로, 마약성진통제까지 한 보따리를 받아오셨다고 했다.
결국 암튼 통증과의 전쟁이구나.

11월 아빠

몇 회차로 항암계획을 짤 순 없고(아마도 말기라 그랬던 것 같다), 1회 투여 하고 2주 후 경과를 보고 유지되고 있거나 암세포가 줄면 다음 투여가 가능하고 그게 아니라면 다른 방법은 없다고 했다.
결국 다른 방법은 없는 채 아빠의 심장은 멈췄다, 갑자기.

투병소식도 전하지 못한 채 임종소식을 전하게 된 지인들이 많았다. 그 와중에 전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고.

12월 여전히, 그리고 딸의 생일과 제주여행

몇 주가 지나서야 사망신고를 했고, 아빠는 떠난 자리만큼 남겨둔 것도 없었다. 투병부터 임종과 장례식까지 모든 것이 비현실처럼 지나가서 장례식 마치고 2주정도는 잘 지냈던 것 같다. 아빠랑 같이 살지도 않았고 연락이 빈번했던 것도 아니라서.



그 와중에 성탄시즌에 딸 생일이 있다. 코로나시기에 초등 입학을 하는 바람에 친구들과 여럿이 모인 추억이 드문 아이에게 친구들을 초대해 집에서 파티를 해주었다.

힘들긴 했지만 뿌듯했다.  


이런 저런 감정을 이고지고 제주여행에 다녀왔다. 1박여행의 탄탄한 짜릿함을 느꼈고 예술을 통해 받는 위로는 경이롭고 감사했다. 우리의 일상엔 예술이 필요해.





아이들의 하교인사에서 더 이상 할아버지를 봤다는 얘기를 들을 수 없고, 지나치게 단촐해진 엄마의 냉장고, 동네와 마트를 지나다가 "사장님(아빠)은 잘 계시죠?"라는 뻔한 인사에, 운동장을 맨발로 걷는 남자분이 아빠인가 하다가 현실자각에 갑자기 슬픔이 쏟아진다. 밀려오면 도망갈텐데 쏟아지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일상의 대부분은 웃고 떠들며 지낸다. 모순으로 가득한 인생과 일상, 그렇게 하루를 버티거나 즐기며 살았고, 살고 있다.




새해복많이받으세요

올해는 브런치활동을 열심히 성실하게 해보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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