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호정 Mar 16. 2024

예술이 해줄 수 있는 일, 포도뮤지엄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았지.


사실 제주미술관투어를 계획할 만 해도 예정에 없었던 곳이었는데 전날 만난 제주친구가 추천하고 싶은 전시라며 소개해줘서, 게다가 폐막이 얼마 안남은 전시이기도 하고 우리의 동선사이에 있는 곳이라서 가기로 했다.


수풍석미술관티켓이 있으면 30%할인이 가능했고, 우리가 식사했던 해밀레스토랑에서는 30걸음 컷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사랑이라니, 게다가

'그러나' 사랑이라니.

사랑이란, 톱스타 이효리도 궁금해하는 사랑,

그 사랑인데 '그러나' 사랑이라니.

입장하기도 전에 비장해진다.





어디에서 어디를 걸쳐 이 나라까지 왔는지.






난민, 혹은 디아스포라이신 분들의 말을 표현해 것 같다.

자신들과 관련된 기사의 댓글을 번역기로 봤다는 말,

건의를 했더니 더 안좋은 방으로 이동당했다는 말.


보는 나도 서글픔으로 가득했다.






추가비용이 들지 않는 해외배송규격이 60*60이라고 한다. 그 규격에 맞춰진 상자들, 짐들이다.


얼마나 고심을 하며 많은 물건들이 들락날락했을지 . 내재된 서글플 사연에 비해 색스러운 오브제가 마음을 많이 울컥하게 했다.



무슨 전시인지도 모르고 귀여운 미술관 이름에 반해 그저 가볍고 편한 마음으로 들어갔다가 별안간 여러 대 맞은 기분이었다.


말하자면 전세계에 흩어진 디아스포라에 대한 이야기다. 난민에 대한 이야기이고, 슬픈 이야기다.

귀엽고 색이 분명하고 쨍한 느낌의 이면에는 슬픔과 서글픔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하지 못하는, 어쩌면 하지 않는 나의 무능과 무의지의 직면.





이곳은 주소터널이다.

우리나라에 온 이주민들의 본국 주소가 적혀있다.



아침부터 신나게 화장하고 치장하고 맛있는 식사를 하고 발랄하게 들어갔던 전시관에서 예끼치 못했던 비비드한 색감앞에 도파민이 활짝 돌았지만 슬프고 서그른 이야기들 가운데,

그래도 여전히 외면이 편한 나는


아, 슬프다...


라는 말만 반복하다가 전시관을 나왔다.




더웠고 습했다.

제주는 그렇다.

그런데 좋다.


덥고 습하고 뜨거울 것을 알면서도 또 가고 싶어할 것이다. 예술도 그렇다. 늘 아름답고 멋진 류의 감동만을 주지 않는다. 슬픔도 아픔도 죄책감도 준다.


그래도 나는 예술을 놓지 못할 것이다.

예술은 예술의 할 일을 하고 있는 거니까.



오노 요코는 말했다.

"A dream you dream alone is only a dream. A dream you dream together is reality."

(혼자 꾸는 꿈은 꿈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우리가 사람의 길을 가려고 할 때 걸리적거리는게 있을 수 있다. 당론이나 정파에 묶여있을 때나 이해관계에 얽혀있을 때, 사람의 길이 어디인지 알지만 머뭇거릴 수 있는 거다. 당장 살 길이 걱정이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러는 사이 예술은 예술의 일을 맹렬히 해주기 바란다.


친구들 사이에도 침잠하는 우울함과 괴로움, 무력감으로 다음 장소로 가기까지 무거워진 분위기는 풀어지지 않았지만 예술은 예술의 일을 했고, 우리는 그 예술의 일에 바르게 반응한 몫이라고 본다.

 

다시는 외면하지 않겠다, 않으려고 노력하겠다는 왜소한 다짐을 하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