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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미 Jan 16. 2024

獨 (독)

다정하게 한 글자로

 

        

2-3년 전부터 ‘외롭다’는 느낌이 부쩍 많이 들곤 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과장’까지는 아닌 것 같다. 틈날 때면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은데, 2-3년 전부터 틈이 자주 난달까.

 

외로운 건, 그리고 혼자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하게 맞이해야 하는 ‘인생사의 한 옵션’인지도 모르겠다. 외로움의 느낌이 들어있는 영어단어 중에 두 개가 생각난다. 그중에 내가 느끼는 외로움은 어떤 쪽인지 생각해본다. loneliness? solitary?




최근 몇 개월 동안, 생각하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 길어진다. 이젠 하다하다 외로움에 대한 생각까지 하고 있는 거다. 나쁘지 않다. 외로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그냥 외로움에 맞닥뜨리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싶다.


나한테는 생각할 주제가 많다. 혹은, 내가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길게길게 할애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모델은 남성이지만, 세상에 남성만 생각하는 사람일 리 없다. (두말하면 잔소리)



지난해 말 누군가 내게 물었다. 24년 새해에 무엇을 소망하는가? 나는 0.1초도 되지 않을 만큼 짧게 생각한 다음, 그러니까 거의 반사적으로 대꾸했다. “연애하고 싶어.” 물어본 이가 깜짝 놀랐다. 그 사람이 놀라는 걸 보며 내가 더 놀랐다. 그 사람의 다음 말이 더 나를 놀라게 했다. “연애 따위 하지 않아도 충분히 혼자서 만족스럽게 사는 것 같았는데?!”  


혼자서 만족스러운 삶과 누군가와 연애하는 (사랑을 주고받는) 삶은 ‘다른’ 삶인가? 두 가지가 공존하는 삶이란 불가능하다는 말인가? 설마.


굳이 따지지는 않았지만, 내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우수수 떠다녔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오늘도 이왕 외로운 거, 외로움을 즐겨볼까 생각하는 참이다. 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는 외로움을 즐기는, 혹은 누리는 상황을 solitary로 표현했다. 혼자 있지만 나 자신과 함께 있음. (엄밀히 말하면 외로움이라기보다는 혼자 있음.)




혼자 있음이 불러일으키는 다정함, 나는 그걸 때때로 느낀다. “孤” 아니고 “獨”? 아니 어쩌면 “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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