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 그런 곳이 생긴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요즘은 글을 쓰기가 어렵다. 다른 곳에 에너지를 써야하기 때문이다. 나는 글쓰기 라는 행위가 운동과 비슷한 일이라고 누누이 이야기해왔는데, 이건 정말 그렇다. 다른 곳에 에너지를 쓰며 글쓸 에너지가 줄어들었으니까.
그냥 글을 쓰기 어렵기도 하지만, 교육적인 글쓰기는 더욱 그렇다. 교육에 대한 생각을 글로 쓸때면 늘 공력이 많이 들어가기도 했지만, 요즘은 교육에 대한 글을 쓰기엔 입안이 조금 텁텁하다. 글쎄. 요즈음 교육에 대한 나의 고민은 주제가 많이 무겁다. 그래서 글을 쉬이 쓰기가 어렵다.
아무튼 여기까지는 내 변명이었고, '영감을 얻는 행위'와 관련해 일상적인 나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고민을 하는 에너지가 떨어진 것도 사실이겠지만, 고민 자체가 좀 얕아졌다. 요즘 교육에 대한 나의 고민은 전에 비해 그렇게까지는 치열하지 않다. 여전히 깊이 고민하고 실천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기는 하나, 내 역할 자체가 줄어들었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 자체가 줄다보니 이전보다는 고민이 얕아질 수 밖에는 없는 듯 하다.
다만, 그러한 나 자신을 쇄신하고 새로운 생각들을 할만한 에너지를 얻고자 엊그제 늦은 밤 혼자 남한산에 올라갔다왔다. 차를 타고 드라이브 겸 해서 정말 늦은 밤 홀로 남한산으로 향했다. 스윽 창문을 내리니 밤 공기가 시원했다. 남한산 정상은 밑에 비해서 기온이 3도 정도 낮은데 요즘같은 불볕더위에는 그 차이가 정말 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열대야에도 이렇게 시원하다니! 밤바람이 차가울 정도였다. 이 곳에 머무르는 동안에도 그 차이를 느꼈지만 요즘 같은 더위에는 차이를 더 크게 느낀다.
밤이라 아무도 없고 차도 없는 터라 스산했지만 산을 오르는 길, 그리고 항상 내가 돌아다녔던 이 길이 얼마나 익숙한지 새삼스러웠다. 몇달만의 공백이 무색하게 너무 익숙한 느낌이라 그저 집 같았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여러 가지 생각이 다시 떠오르고 에너지가 다시 채워지는 듯 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같은 곳을 둘러보고 숨 한번 들이쉰 것이 다인데도 올라오기 전과는 내 생각과 느낌이 아예 다르다. '이곳은 여전히 나에게 영감을 주는구나' 싶다.
차를 돌려 내려가며 다시 한번 참 다행스럽기도, 고맙기도 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언제나 내 삶에 영감을 주는 곳이 평생의 그런 곳이 생겼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변함 없는 장소가 주는 그 힘. 누군가를 만나지 않더라도, 그냥 그 장소에 가는 것 만으로도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 이 곳에서 내가 정말 힘들여 살았구나 하고 되짚을 수 있는 것. 평생 언제든 찾을만한 곳이 내 삶에 생겼다는 것. 참으로 소중하고 기쁘다. 새삼스런 기쁨이다. 내려와보니 이 곳이 얼마나 소중한 곳이었는지 다시 한번 절절하게 느끼게 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