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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탓 May 06. 2022

자라나는 집

파란 가림막을 아래서부터 입어가는 건물은 자신이 커져가는 모습이 부끄러운지 보여주기 싫어하는 아이 같았다. 현장 소장은 시스템 비계를 설치하면 비용이 좀 높지만 비용의 일부를 지원받아서 기존 비계와 별로 차이가 없다면서 그걸 주저 없이 선택했다. 과거 공사판이라면 너덜너덜한 가림막과 지저분한 바닥, 안팎에 쌓여가는 쓰레기였던 시절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시스템 비계는 시각적으로 괜찮아 보였고, 작업자에게는 안전과 효율을 준다고 한다.


건물의 뼈대인 골조공사는 하체에 해당하는 지하층부터 2층까지 시간이 좀 걸렸고, 상체라고 할 수 있는 3층 벽부터는 약간 속도를 내서 아담한 덩치가 빨리 자란다고 할까, 일어선다고 할까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집은 사람의 수고와 자재를 자양분으로 자라나는 존재다. 현장은 이상 없다!



소장이 골조 공사 중에는 위험하다면서 작업자 이외에는 현장에 들어가지 말라고 안내해서, 나는 작업 시작 전이나 종료 후에 들어가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사실은 내가 들어가고 싶어도 현장 문을 잠그면 들어갈 수가 없고, 굳이 들어가려면 높은 함석판을 넘을 수 없으니 옆집으로 들어가서 다시 담을 타고 들어갈 수 있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작업자가 몇 번 가벼운 찰과상을 입은 것 이외에 다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초기에 참여자 중 한 사람이 참지 못하고 담치기를 했다가 발목이 골절되어 몇 달 목발 신세를 지는 일이 있었다.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오고, 생명과 안전은 한 사람에게 온 세상과 바꿀 수 없는 가치다.


작업이 끝난 후에는 장비나 자재가 다 정리된 상태여서 현장은 깨끗했다. 소장은 콘크리트 양생이 끝난 층에서 창호와 설비공사가 이루어질 때 당일 작업이 끝난 뒤에 비질과 진공청소기로 바닥 청소까지 했다. 나는 공사 기간 내내 다음 날 또 전쟁터가 될 곳을 매일 그렇게 관리하는 현장소장을 '저건 내 스타일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그저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깔끔한 성격의 소장은 현장의 바닥에 장비와 자재, 담배꽁초와 쓰레기가 널려 있는 걸 참지 않았다. 그는 보이는 대로 작업 통로에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을 치우고 청소하거나, 작업자에게 지시해서 정리하도록 했다. 그의 말로는 그렇게 할수록 사고가 줄어든단다. 작업 층에는 흡연구역이 지정되고 재떨이가 놓였다.






위에서 한층씩 올라가고 있을 때, 주차장인 지하층부터 전기, 통신, 방송, 수도, 소방 설비 공사가 시작됐다. 수도, 전기와 통신, 방송 라인이 지하층 계단실 옆으로 들어와서는 다시 위로 나뉘어 올라갈 준비를 하고, 엘리베이터 옆 벽 쪽에 공동 세탁실과 공동 창고 자리를 만들었다. 집집마다 확장 없이 용적률을 그대로 따라 지어서 실내 공간이 좁은 편이었고, 그걸 보완하려고 지하층에 대형 세탁기와 건조기가 들어가는 세탁실, 그리고 수납공간인 창고를 만들 계획이었다.


골조공사 중 지하층의 모습. 가운데가 계단실과 엘리베이터 공간


현장은 이상 없고 집은 잘 자라고 있다가 성장통을 만났다.


기초공사를 마치고 지하층 콘크리트 타설이 끝나가던 12월 성탄절 바로 전 날 선물이 도착했다. 설계 단계에서 헤어지기로 하고 빠져나간 교회가 '건축 금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에 제출했다. 배송이 늦어진 것은 법원이 나의 예전 주소지로 송달을 해서 내가 수령을 하지 못한 탓에 한 달 반 만에 내 손에 가처분 신청 통지서가 도착해서다. P목사는 공사 현장에서 직선거리로 50미터 정도 떨어진 다음 골목에 살고 있었는데, 전화도 문자도 없다가 법원의 통지서로 연락을 해왔다.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은 또 있었다. 해가 바뀌어 1층 벽체가 세워질 즈음 바로 아랫집도 법원에 '건축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그러니까 둘이 법원에 집짓기 공사를 중지하라는 명령을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P목사의 공사중지 신청 이유는 교회와 자신이 냈던 분담금을 돌려달라는 것이고, 아랫집 S 씨는 이 건물이 자신의 집과의 경계선까지 이격거리인 1미터를 지키지 않고 있으니 공사를 중지하고 해당 부분을 철거하라는 것이다. 공사 중지 가처분 신청 두 건을 받고 보니 구청으로 들어간 민원은 애교였다. 자잘한 민원은 있는 대로 구청에 설명하고 민원인을 아는 경우 방문해서 사과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으로 해결이 됐다.


현장소장은 주말 공사를 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가끔은 작업 일정 때문에 짧은 주말 작업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바로 앞 건물 고시원에 사는 중년의 여성이, 자신이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일을 해서 낮에 쉬어야 하는데 공사 중이라 불편하지만 참고 지내다가, 주말 낮 소음까지는 참지 못하고 '주말에는 쉬어야 한다.'며 작업 중지를 소장에게 직접 요청해 왔다. 소장은 곧바로 사과하고 그 뒤로는 주말 작업을 아예 하지 않았다.


사람은 너무도 다양해서 아무리 겪어도 알 수 없는 존재이다. 정확하게 자신이 원하는 걸 말로 따박따박 알아듣게 설명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같은 골목에 살아도 말 한마디 없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는 사람이 있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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