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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탓 May 19. 2022

또 엎어지고 헤어지기

공정은 공사 후반부로 갈수록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창호공사, 내외부 조적공사, 바닥공사, 전기통신공사, 보일러 공사, 상하수도 공사가 끝나간다. 새 옷을 입은 건물에서 집집마다 인테리어 공사를 막 시작하려는 초여름, 시즌1 설계를 하며 1,2층에서 문제가 생겨난 그 때로부터 일 년이 됐다. 현장 주변에서는 공사를 방해하는 일들이 여럿 벌어졌으나, 정작 집 자체를 만드는 공사는 큰 고비없이 순탄하다.



그러다가 참여자 모임에서 K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부모협동조합의 이사장이 폭탄 발언을 했다.


"죄송한 말씀드립니다. 우리 어집은 입주를 못할 것 같습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고, 나는 언덕 위에 서 있다가 그 벼락을 제대로 맞았다. 이번 충격은 뿅망치가 아니라 쇠망치로 맞은 것 같았다.


'그게 끝난 게 아니었단 말이야?'


한 번 엎어져서 망할 지경의 사업에 K어집이 참여해서 웬만한 어려움을 하나하나 넘어왔는데, 집 짓기는 건물 완공이라는 결승선을 앞두고 다시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렸다.


그는 폭탄 발언 치고는 아주 미안하다는 태도로 차분하게 말했다. 차분한 말투라고 충격이 작아지는 건 아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K어집은 노유자 시설로 1층 내부 설계를 마치고 인테리어 공사 업체를 선정하는 중이었다. 이제 한 달 뒤에는 입주를 할 시점에서 갑자기 입주를 포기하겠단다. 전생에 큰 죄를 지은 사람이 집을 짓는다는 속담 아닌 속담이 머릿속에 다시 떠올랐다.


얼마 전에는, 자기 엄마를 위해 비어있던 5층 집을 하나 받겠다던 현장 소장이 집안 사정을 이유로 포기하겠다고 알려왔다. 소장은 여동생 부부가 엄마와 함께 지내도록 새 집을 해주려 했고, 나는 부담을 털 기회이자 그의 아름다운 사연에 기쁨은 두 배 였다. 잘 풀릴 것 같던 그 빈 집은 소장의 뜻이 아니라, 그의 다른 가족들 사이에서 발생한 갈등으로 여동생 부부가 입주를 안 하게 되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부담이 커진 나는 여간 마음이 무거운 게 아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물에서 가장 비중이 큰 1층에 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집은 멀쩡하게 지어지는데 내 마음에선 1층과 5층에 싱크홀이 뻥 뚫렸다. 공사를 진행하며 많은 보람과 감동이 다녀갔고, 그만큼 영혼이 털리고 체력이 바닥나고 있던 나는 머리가 조여들면서 쥐가 나는 것 같았다.


‘머리가 쪼그라들고 쥐가 난다는 게 이런거구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불쾌하기 그지없는 느낌이었다. 이날부터 공사가 끝나고 상당 기간 기분 나쁜 이런 증세는 몇 번을 더 찾아왔다.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이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또 한 번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잘려나간 앞산의 나무가 남은 밑동 옆으로 새 가지를 내면서 잎을 벌리려는 것처럼 살아날 방법을 찾아야 한다.


K어집은 새 건물에 어집 터전을 만들고 소유하는 것이 조합원들에게 부담이 커서, 매물로 나와있는 어집을 인수해서 리모델링하기로 결정했다. K어집 부모들은 서울시 공동체 주택 지원사업에 선정되고도 P의 민원 때문에 더 진행이 안 되는 것에 대해 실망하고 아쉬워하고 있었다. 문을 닫은 그 어집은 낡기는 했지만 3층 규모로 이곳보다 넓고, 비용과 준비기간에서 어집 부모들에게 유리했다. 그 결과를 참여자 모임에서 이사장이 전달한 것이다. 무엇하나 허투루 하지 않는 그 협동조합이기에, 참여자들은 그들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다.


먼저 작은 꼭지부터 해결했다. 소장이 포기하면서 비어있게 된 5층 한 집을 내가 맡기로 했다. 무엇이든 이렇게 내가 직접 책임지는 게 나중에 험한 꼴을 당하더라도 가장 빠르고 쉽다. 그나마 골조공사가 끝나기 전이라 다행이었다. 내가 같은 층의 내 집의 면적을 양보하면서 그 집은 커지게 됐고, 나는 넓은 집을 원하지 않았으나 생각보다 작아진 전용면적에 아쉬움을 가지고 있기는 했다. 5층 설계를 급히 변경해서 내 집을 조금 키우고 그 집을 더 작게 벽체를 세웠다. 나는 공사가 끝나면 그 옆집을 청년을 위한 셰어하우스로 만들어 보려고 단순한 구조로 설계를 변경했다.


1층은 덩치가 커서 무슨 결정을 할 수 없었다. 다른 참여자가 복합공간으로 조성해서 마감공사를 마치기로 했다. 복합공간에는 카페나 식당이 필요해서, 노유자 시설인 어린이집이 갑작스레 대중음식점이 됐다. 사람뿐 아니라 공간의 운명도 참 역동적으로 굽이쳐 간다.


공사 막바지에 벌어진 두 번째 충격파는 첫 번째보다 컸지만, 수습은 예측 가능하고 합리적으로 이루어졌다. K어집은 그동안 납부한 분담금 중 소모성 경비를 제외하고 나머지 금액을 돌려받기를 원했고, 반환 시점은 자금 수요가 몰리는 준공을 지나도 좋다고 제안해 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업 이탈로 집 짓기가 곤란한 상황을 맞이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P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는 공사를 마무리해야 하는 지점에서, 참여자가 이탈하고 예상치 않았던 추가 부담을 안게 됐다. 어집이 빠지면서 구멍나는 건축자금 이슈는 덤이었다.  만신창이가 된 집 짓기다.



#서울에서집짓기 #집짓기 #공동체주택 #건축 #건축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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