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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제가 꼭 말씀 드릴 게 있어서요.(1)

by 김모음






모든 학원이 그렇겠지만 내가 다니는 학원엔 다양한 유형의 아이들이 온다. 대부분 평범한 아이들이다. 여기서 ‘평범한’ 이란 공부를 잘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대한민국 평균 성장 발달 과정을 잘 따라가고 있고, 또래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아이들을 말한다. 요즘은 ADHD를 앓고 있는 아이들이 간혹 보이긴 하지만 약을 복용하고 잘 관리하는 경우가 많고, 또 그들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지능의 문제를 가지고 있진 않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그런데 어렸을 때 말이 늦었다거나 언어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아이들이 있다. 그들이 평범한 아이들과 똑같은 수업을 듣고 난 후 그것을 얼마나 잘 흡수했는지의 차이는 글을 통해 확인할 수가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생각을 잘 정리해서 쓰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아이들과 몇 개월씩 수업을 해도 변화가 매우 더디거나 미비할 경우엔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자책도 들면서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이 남게 된다. 나와 같이 공부했던 아이들 중에 유난히 글쓰기를 힘들어하는 한 친구가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이었는데 왜소증을 앓고 있는 아이였다. 처음 학원에 방문했을 때부터 부모님이 걱정이 많았다고 했다. 그 친구와 몇 달 수업을 한 적이 있었는데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것을 아주 힘들어했다. 6학년이다 보니 200페이지 정도 두께의 책이 대부분이고 고전 소설이 많다 보니 책 내용을 이해하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거기에다 읽고 느낀 점까지 쓰라고 하니 머리가 하얘졌을 것이다. 매 수업마다 첫 줄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몰라서 샤프만 들고 10분 이상 멍하니 앉아있었다.


“주홍글씨가 무슨 뜻이었지?”

“헤스터가 왜 아이의 아버지를 말하지 않았지?”

“그래서 그다음엔 어떻게 되었지?”

“낙인이라는 것이 뭐지?”

“현대 사회에서도 주홍글씨를 달고 다니는 사람이 있을까?”


이렇게 하나하나 물어보거나 불러주지 않으면 전혀 글을 쓸 수 없었고, 그렇게 6개월 이상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학원 원장도 다른 친구들과 함께 하는 그룹수업이 이 친구에게 맞지 않다는 것을 간파하였고 수준별 1:1 학습을 학부모님께 권유했다. 처음엔 또래들과 같이 하는 그룹수업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수준차이로 낙오된다는 느낌을 학부모도 인정하기 힘들었을 것이고 한창 사춘기인 본인에게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도움이 안 되는 수업은 더 이상 무의미 하기에 계속 권유를 했고 결국 그 친구는 3학년 수준의 책으로 1:1 학습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책을 읽고 이해하고 글도 제법 쓰고 있다고 한다.


또 한 친구는 키가 훤칠하게 큰 착한 남학생이다. 이 친구가 6학년일 때 처음 학원에서 봤고 중학교 1학년인 지금 같이 수업을 하고 있다. 마음씨도 너무 착하고 부모님 생각도 많이 하는 아이다. 이 친구는 어렸을 때 언어 치료를 받았던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말을 할 때 중간에 더듬거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조금 어려운 내용이 나오면 이해를 못 해서 딴생각을 하거나 조는 경우가 많았고, 이해를 못 해서 스스로가 답답하다고 느끼면 손가락에 피가 나도록 물어뜯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착하고 성실해서 숙제는 꼬박꼬박 잘해왔고 책도 꼼꼼히 읽는지 이해도도 좋은 편이었다. 그에 비해 글쓰기는 눈에 띄게 발전하는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머릿속에는 하고 싶은 말이 굉장히 많아 보이지만 그걸 글로 표현해내질 못하는 것 같아 항상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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