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4시 30분, 2 교실교실
“자, 숙제해 온 것 좀 보자.”
......
“어? 너는 왜 이 것 밖에 없어?”
“... 찾아봤는데, 안보여요.”
“집에 가서 한 번 더 찾아봐. 왜 검사할 때마다 종류별로 하나씩 없어질까?”
“.......”
수업 시작 전 늘 있는 레퍼토리이다. 모든 아이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한 교실에 한 명 정도는 항상 이런 식의 대화가 이어진다.
“이런 식으로 숙제 계속 빼먹으면 안 된다. 한 번만 더 이러면 난 바로 부모님께 전화해서 이를 거야.”
아이들을 무섭게 혼내는 것에 익숙지 않은 나는 ‘부모님’ 카드로 아이들을 협박한다. 평소 어른이든 아이든 사람 면전에 대고 싫은 소리 하는 걸 껄끄러워하고, 언제 무슨 일로 학부모에게 항의전화를 받을지도 모르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무섭고 단호하게 말하지 못한다.
“자, 이제 수업 시작 한다. 어땠어, 이번 주 책은? 읽기 괜찮았니? 어렵지 않았어? 하아~딴 숙제 할 것도 많은데 이것까지 읽느라 힘들지 않았니?? 근데, 솔직히 말하면 난 이 책 좀 재미없더라.”
아이들의 공감을 얻고 자연스럽고 편한 수업 분위기를 위해 종종 이렇게 대놓고 책을 디스 하는 걸로 수업을 시작한다. 우리나라 초등학생 대부분은 학원에 다닌다. 영어와 수학 학원은 기본이다. 학원 출근길에 보면 손바닥만 한 프린트물을 쳐다보면서 걸어 다니는 아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 깨알 같은 글씨를 다 읽을 수는 없지만 그 정체는 영어 단어장이라는 것을 느낌적으로 알 수 있다. 학창 시절 나의 모습이 생각나기도 하고, 아무리 커봤자 초등학교 3~4학년 정도밖에 돼 보이지 않는 아이가 단어장을 보면서 지나가는 걸 보면 안타깝기도 하다. 이렇게 머리가 터지도록 외우고 문제를 푸는 것이 하루의 일과인 그들에게 나와 함께 하는 이 시간만큼은 덜 긴장하면서 수업을 즐겼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는 이 ‘디스’는 나의 작은 배려이다. (학구열 높은 학부모님께서는 이 말을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수요일 4시 40분, 3 교실교실
“자, 숙제해 온 것 좀 보자. 어? 여기 숙제해 오는 거였는데 안 했네?”?”
“아, 깜빡했어요. 지금이라도 할게요.”.”
“선생님, 저는 해왔어요. 여기요.”
비슷한 시간대의 교실이지만 좀 다른 분위기이다. 못 한 숙제를 빨리 해서 채점을 받으려고 열심히 문제를 푼다.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는 수업은 저 학년 수업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어떻게든 숙제를 하려고 애쓴다. 물론 숙제를 빼먹는 일도 고학년에 비해 드물다. 내가 말하는 저학년은 초등학교 1~4학년, 고학년은 5~6학년이다.
“자, 이번 책은 글자 수가 좀 많았나? 읽는데 힘들지 않았어?”
“이 정도는 저 읽을 수 있는데요? 글자 안 많았어요.”
“저도요, 괜찮았어요.”
나의 말 한마디에 대답이 여러 개가 나온다. 학원 오는 것이 놀이동산 오는 것 마냥 즐겁진 않지만 그래도 오면 열심히 대답하고 수업을 즐기려고 한다. 아이들은 나에게 하고 싶은 말도 많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그들의 집안 사정을 TMI로 듣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럴 땐 듣는 내가 당황스러워서 황급히 화제 전환을 하기도 한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고 숙제를 해 오는 아이들이 기특하다. 정말 책을 좋아해서 학원 수업을 즐기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책을 싫어해서, 너무 안 읽어서 엄마에게 등 떠밀려 오는 아이들이다. 어른은 하지 못하는 일을 아이들은 하고 있는 것이다. 어른들은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미루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엄마가 하라고 하면 처음엔 반항했다가 여러 번의 협상을 통해 엄마의 말을 들어준다. 물론, 그것도 저학년까지이다. 요즘은 5~6학년부터 사춘기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쯤 되면 자신의 주장을 엄마에게 관철시키거나 배짱으로 맞선다.
나는 학원에서 일한다. 아이들과 글을 쓰며 고군분투 중이다. 주 대상은 초등학생과 중학생이다.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다니. 이 일을 하리라고는 주변 사람들도 나 자신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평소 ‘ 나 하나도 제대로 간수 못하면서 누굴 가르쳐.’ 하며 스스로를 자조하던 나였다. 이런 내가 다른 인격체에게 어떤 지식과 기술을 가르친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른다더니, 내가 그 실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돈을 벌고 싶어서 당근 알바를 기웃거린 것이 내가 절대 발 들일 일이 없을 줄 알았던 세계로 이끌었고, 지금 나는 내일 할 수업을 위해 책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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