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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Feb 13. 2022

메모


#0.

일상은 고요한 물과도 같이 지루하지만 작은 파문이라도 일라치면 우리는 일상을 그리워하며 그 변화에 허덕인다. 행운과 불행은 늘 시간 속에 매복하고 있다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달려든다. 우리의 삶은 너무도 약하여서 어느 날 문득 장난감처럼 망가지기도 한다. 언젠가는 변하고 언젠가는 끝날지라도 그리하여 돌아보면 허무하다고 생각할지라도 우리는 이 시간을 진심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5.

자신이 구축한 세상에서 보는 풍경은 늘 같은 것, 같은 자리에서만 맴돌곤 한다. 그런 나의 편협한 시선을 깨부술 수 있는 건 오직 나의 궤도를 침범해버린 대상일테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는 세상은 이전과는 다르다. 이른 봄에 피어나는 꽃들이 이렇게 키가 작았었나, 여름날 밤하늘에 이토록 별이 많았었나, 떨어져 뒹구는 나뭇잎들이 이렇게 고운 빛깔이었나, 한겨울 가로등 불빛이 이렇게 따스한 주황색이었나, 익숙했던 모든 풍경들에 새삼 감탄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지. 어쩌면 사랑이란 잃어버린 시력을 찾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별이 가혹한 이유도 세상이 다시 밋밋했던 옛날로 돌아가기 때문일테지..


#6.

시간은 흐른다. 그것이 마냥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 죽을 것 같던 순간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슬며시 웃어보일 수 있는 기억이 된다는 의미도 있지만 앞으로 수많은 일들이 다시금 나를 헤집을 것이라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3.

삶은 무슨 사건이 일어나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일어난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린 것임을..


#8.

유치하게도 나는 운명을 믿는다. 평생을 다르게 살아온 두 남녀가 닮아가는 일이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고, 어떠한 관계선상에서 사이가 나빠지지 않기 위해 조율하는 일이 맞춰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른이 되고 더 이상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는 하루의 연속을 보내다 삶의 권태일지도 모르는 어느 지점에서 누군가를 만나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관계를 구축하며 또 다시 서툰 사랑을 하곤 한다. 그런 나의 서투름이 혹여나 무거움이 되진 않을까 잰걸음으로 앞서갔다가 뒤로갔다가 하길 반복한다. 마치 아이처럼. 사랑 앞에서 성숙한 어른이고 싶은데 좀처럼 잘 되지 않는 자신을 보며, 사람이 온전히 성숙해질 때는 언제일까를 생각한다. 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가 없이 완전할 수 있는가. 플라톤의 '향연'에는 '사랑의 기원'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인간의 애초의 자연 상태는 현재와 같지 않았다. 우선 애초의 인간에게는 지금과 같은 남성과 여성의 두 가지의 성 외에 제 3의 성이 있었다. 즉 지금은 남성과 여성 두 가지의 성만 있지만, 처음에는 이 둘, 즉 남성과 여성을 다 갖고 있는 제 3의 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람의 모습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고 한다. 원래 사람의 외양은 아주 둥글었는데, 지금 인간의 모습은 그 둥근 몸을 딱 반으로 잘라놓은 형태라는 것이다.

 한 몸에서 두 조각으로 나뉘어진 인간들은 그 반쪽이 다른 반쪽을 그리워하여 다시 한 몸이 되려고 하였다. 그래서 그것들은 서로 목을 꼭 끌어안고 붙어 있으려 했으며, 또 서로를 떠나서는 아무 일도 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배가 고파 죽고 만다. 두 반쪽 중 하나가 죽고 하나가 남게 되는 경우에는, 남게 된 반쪽은 다른 또 하나의 반쪽을 찾아 헤매었고, 찾으면 끌어 안았던 것이다.

 이런 경우 그는 본래 전적으로 여자였던 사람의 반쪽-이것을 우리가 지금 여자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을 만나는 수도 있었고, 혹은 본래 전적으로 남자였던 사람의 반쪽을 만나는 수도 있었다.


인간의 불완전함,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일은 먼 옛날부터 그들 속에 깃들어 있었다. 둘에서 하나가 되게 하여 인간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운명이라 믿으며, 나는 잃어버린 반쪽을 찾았을 때 나의 미숙함으로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 오늘도 바삐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여유를 가지려 나름의 애를 쓰고 있다.


#9.

언제부터인가 기억력이 점점 나빠져서 수첩이든 어디든 일기를 적어두는 게 습관이 됐다. 오랜만에 2년 전에 쓴 일기장을 펼쳐봤는데 어떤 다짐이 적혀있었다.


2020년 3월 2일

어떤 시련이 찾아와도 약해지거나 울지 않을 것.

후회없이 사랑하고 마지막까지 후회를 남기지 않을 것.

말과 사람을 조심하고 자신있게 행동할 것.


#11.

좋아서 메모해둔 어떤 영화평.


사랑에 있어 한 사람의 몫은 언제나 1/2, 한 사람만이 아무리 상대를 1만큼 사랑한다 해서 결코 1이될 수 없다. 두 사람이 함께 1/2씩의 마음으로 이룰 때에야 1로써 성립이 가능하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언제나 잊지 않고.. 나혼자만의 1/2쪽자리 사랑으로 1이라 고집하는 열정의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언제나 냉정으로 다스려야 할것이며, 현실의 장벽 앞에서 지나친 냉정함으로 소중한 것을 잃고 살아가게 되고야 말게 되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열정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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