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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골소년 Jun 15. 2020

할머니의 부드러운 파

 마트에 가면 언제든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야채지만, 시골의 모친이 보내주시는 파와 양파, 감자, 마늘 등의 야채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야채 고유의 향과 맛이 그대로 느껴지고 특히 부드러운 식감이 아주 좋습니다. 이맘때면 제철 야채를 차에 가득 싣고 오는 재미로 가족들과 고향집을 향해 여행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가정 체험학습'과 연차를 이용해서 고향집에 갔습니다. 주말에 하루를 더하니 고향집으로 향하는 여유로움이 있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을 태운 차 안에서 아내와 '고향에 계신 부모님은 자식과 손주 중 누구를 더 반가워할까'라는 대화에서,

 아내는 '당연히 자식을 더 반가워하시지'라며 대답을 했습니다. '귀여운 손주들이 더 반갑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살갑지 않은 자식의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아내의 말처럼 강아지처럼 뛰어노는 손주를 보시며, 기억에서 가물거리는 어린 시절 자식의 모습을 그리워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아내의 결론은 부모님은 다 큰 자식과 꼬맹이인 자식의 모습을 한 화면에서 보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정 체험학습'이라는 금요일의 달콤한 혜택을 누릴 수 없게 되고 나서 고향집에서 머무름은 도시의 시간처럼 급작스럽게 어두워지고 순식간에 밝아버린 채 그저 야속하게 지나가 버렸습니다.

 '뭐 필요한 거 없냐'라며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모친의 목소리에, 마치 준비라도 한 것처럼 줄지어 익숙한 단어들이 입에서 쏟아냅니다. '파'를 시작으로 해서 고향집 텃밭에 있을만한 야채를 모조리 읊어 보다가, '그냥 있는 데로 다 보내 줘'라는 말로 주문을 마무리했습니다. 실시간 계좌이체가 아닌 '나중에 내키면 정산'이라는 결제방법이 가능한 고향집 마트..., 자식에게 늘 행복한 사기를 당하고 계시는 부모님...

 시골 출신 아빠의 입맛을 닮은 것도 있고, 간헐적 방문이라도 나름의 할머니의 야채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듯, 아들내미는 할머니의 야채를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할머니가 보내 주신 야채를 보면 코를 벌렁거리며 좋아하는 각별함이 느껴집니다. 특히 양파는 먹기 좋게 담긴 전용 그릇이 있을 정도로 좋아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과 정성으로 자란 야채는 도시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럽고 향과 맛이 강합니다. 그중에서 파와 양파를 좋아하고 비빔라면에 넣어서 먹으면 그렇게 맛이 좋다고 합니다. 나 역시 서른이 넘어 시작된 도시생활에서 수시로 고향 생각에 빠져들게 하는 것 중 하나가 파입니다.

 제철 텃밭에서 손만 뻗치면 얻을 수 있는 그야말로 흔해빠진 채소였습니다. 라면에 '파 없이 계란 탁'은 감히 상상도 못할 정도로 파는 웬만한 우리 집 음식에 필요한, 흔하지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야채가 되었습니다. 마트에서 파는 파를 어쩔 수 없음으로 먹고 있지만, 아들내미의 촉각과 미각은 시골에서 자란 파와 기막히게 차이점을 비교해 냅니다.

도시에서 파는 것을 만지면
나무처럼 딱딱하고
시골에서 키운 것을 만지면
젤리처럼 말랑하고 미끄덩해

도시에서 파는 것을 먹으면
입이 거칠어는 것 같고
시골에서 키운 것을 먹으면
입에서 녹는 것 같아

점점 더 파나무처럼 되는 것 같은데
머지않아 파도 배추처럼 소금에
절여서 먹어야 되는 거 아냐...

 무슨 차이일까..., 할머니의 텃밭에서 때론 무관심한듯한 정성으로 자기의 속도로 자라는 것과, 대량으로 다그친 듯 성장촉진제를 먹여가며 키우는 방법의 차이라는 것을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자연친화적인 아들내미는 대량으로 부드럽게, 한번 키워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 지나친 생각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해야 할까..., '그래 기회가 되면 키워보는 것도 괜찮아'라고 해야 할지..., 하지만 지금은... 좋아하는 일을 본업으로 하고 주말농장의 텃밭에 야채를 키우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할머니 #파 #자식 #손주 #부모님 #고향 #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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