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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골소년 Jun 17. 2020

아이들의 핸드폰 게임 놀이

 핸드폰은 가능하면 깨끗하게 사용하는 편이다. 아내도 그렇다. 통장에서 빠져나갈 때마다 느끼는 만만치 않은 할부와 통신요금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 고사양의 게임기를 물려주기 위한 목적이기도 했다. 어릴 때는 저사양의 보급형 핸드폰을 사줘도 무리 없이 사용했고, 고사양의 게임은 엄마, 아빠의 폰을 허락받는 순간 손에 쥘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한창 게임에 집중할 때 느닷없이 걸려오는 전화에 엄마, 아빠에게 빼앗기는 실망으로 짜증 내는 모습을 보며, 집중하고 있는 일에 방해받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적응력을 키우는 경험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핸드폰 게임의 중독성 때문에 아이들과 다툼이 있었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무난하게 자라준 것이 고맙기도 하다.

 게임에 한창 빠져 있을 때,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자연이 보여주는 그림 같은 풍경을 잠시만이라도 즐겨보라며 아무리 강요를 해도 어림없는 얘기였지만, 지금은 공부와 학교생활의 스트레스 때문인지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창밖을 보다가 잠이 든다. 이제는 달리는 창밖을 보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자연이 주는 눈부신 그림에 멍 때릴 줄 아는 나이, 처지가 되었다.

 아이들이 게임을 하며 흥분하고, 가끔씩 거친 단어도 불쑥불쑥 내뱉는다. 부모의 눈에는 그런 장면이 보이면 걱정거리가 된다. 게임으로 성격이 이상해지는 건 아닌지, 차라리 밖에 나가서 놀면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으니 속이라도 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가끔씩 핸드폰을 방바닥에 내동댕이 치는 아들내미의 행동도 눈에 들어온다.

 팀을 구성하여 진행된 게임에서 졌다는 분노의 표출이다. 일대일로 하는 게임에서 지면 자기 실수에 대한 관대함 때문일까, 화를 격하게 내지 않는다. 유독 팀을 이뤄서 하는 게임에서 지면 화를 많이 낸다. 팀원 중 누군가의 실수에 대한 실망의 표출이었다. '너 때문에 열받는 친구도 있겠지?', 그러면 그런 일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너 생각이고, 상대방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걸', 그럴 때마다 아들내미는 인정하지 않는 눈빛이다. 아이들의 놀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격한 감정의 표현에 심각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무조건 참으라고도 하지 않는다. 핸드폰을 내동댕이 쳐 놓고, 감정대로 행동하고 나서, 차분히 생각해 보라고 한다.

 속은 좀 시원해졌는지, 그리고 상대방이 되었든 스스로가 되었든 정신적인 충격이 있었다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지..., 만약 핸드폰이 깨지기라도 하면 그 감당이 엄마, 아빠에게 돌아갈 텐데..., 미안함을 감당할 수 있는지..., 게임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을 엄마, 아빠의 잔소리에 의해 키웠는지 스스로 키웠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어릴 적 경험에 의하면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웠던 것 같다.

 그 당시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눈 밖에서 벗어나면 친구들과 어디서 무엇을 하며 노는지 관심을 가질만한 여유가 없었다. 지금처럼 심각한 중독 거리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단체놀이를 하며 노는 것이 당연했고, 싸우고 오더라도 부모님의 관여없이 며칠 뒤면 알아서 화해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뒤섞여서 놀았다.

 오히려 어른이 개입하면 형식적 화해는 수월했지만 정신적 화해는 더 힘들었고, 의젓해 보이던 친구도 어린아이처럼 부모님에게 의지하는 달갑지 않은 모습에, 친구의 부모에게 보이는 나의 비굴함과 친구의 찌질함이 주먹이 오고 갔던 아픔보다 더 큰 고통이었다. 그런 친구의 부모님은 늘 놀이터에 가까이 있었고, 그 친구와는 점점 멀어졌다.

 그런 기억들의 조각을 하나씩 소환해서 조합을 해보면 아무리 어리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사회성은 가지고 있었다. 굳이 어른이 개입하지 않아도 비슷한 수준의 언어와 생각으로 다툼이 생기더라도, 놀이를 위해 어울리기 위한 목적으로 타협과 분노조절 능력을 키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 식으로 서서히 언어와 생각이 원만하게 몸집과 함께 자랐다.

 그 당시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동네 어디선가 뛰어 놀든지, 친구 집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든지, 친구들도 자식처럼 성향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별 다른 걱정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단지 부모님들은 순번을 정하기라도 한 듯 어디선가 나타나 친구들과 뛰어노는 것에 정신줄을 놓아버린 아이들을 각자의 집으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하였다.

 오락실이라는 혁신적인 공간이 생기면서 게임에 점점 빠져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오락실 게임 중독보다 무서웠던 건 도벽 조절장애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할아버지의 바지 주머니를 뒤져 지갑에서 천 원짜리 한두 장을 슬쩍하고 오락실에 갔었다는 얘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아이들에게 말해줘도 될까라는 고민이 앞서는 참으로 부끄럽고 어처구니없는 위험한 경험의 추억이다. 아빠도 철없이 그릇된 행동을 했었고 실수와 반성을 반복하며 자랐다는 것으로, 이런 얘기는 아빠의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끼친 도움(?)을 주었던 경험으로, 아이들의 올바른 가치관 형성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목적으로 전해 주었다.

 한때 도벽이 있었던 아빠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눈빛으로 '왜 그랬어,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며 화들짝 놀랐다. 용돈의 부족함이라는 핑계로 그 시절의 아찔했던 행동을 아이들은 경험하지 않아도 되니,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내가 모르는 아이들의 아찔한 추억도 있을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생각도 해본다.

 친구들과 빈병이나 도토리를 주워서 용돈벌이를 했지만, 아버지의 바지 주머니에서 무단으로 용돈을 가져가는 방법이 수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친구의 맞아 죽을뻔한 엄청난 경험을 전해 들었고, 나 역시 아버지의 얼굴을 볼 때마다 몹시 불안해하며, 걸리면 맞아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도둑질은 멈췄다.

 죄짓고는 못 산다는 것을 그때 뼈져리게 느꼈다. 한 친구의 엄청난 도벽이 들통나지 않았다면 나의 도벽도 좀 더 오래갔을지도 모른다. 친구는 아버지의 주머니에서 푼돈을 몰래 훔치는 것보다 집에 있는 곡식을 방앗간에 내다 팔면 큰돈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획기적인(?) 방법을 알아냈다. 쌀독에 쌀이 주는 건 엄마가 제일 잘 아는데 너무 표나게 퍼다 달랐던 게 문제였다. 도둑질이 문제였는지 표나게 도둑질한 게 문제였는지, 뭐가 문제인지 정립이 안되었던 철없던 시절...

 결국 들통이 났고 종아리에 빨갛게 줄이 가는 고통으로 친구는 간신히 죽음은 면했다고 했다. 그렇게 끝날 것 같았던 친구의 과감한 행동은 그 후로도 몇 번씩 이어진 후 몇 번의 죄책감에 몸부림치며 스스로 끝을 냈다. 다행히 친구와 나는 도둑질을 직업으로 삼지 않았다. 그 당시 친구 녀석의 과감하고 지칠 줄 몰랐던 시도는 지금 고향에서 탄탄하게 사업장을 운영하는 사업가로서 자리를 잡게 해준 원동력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친구와 나의 놀이 경험과 성장과정을 비추어 볼 때, 지나친 호기심 또는 올바른 가치관이 자리 잡히기 전, 우발적이거나 일시 반복적으로 했던 행동들이 잘못된 행동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는 스릴감 넘치는 경험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그 당시 그런 행동에 가담했던 친구들 모두 착하게 살고 있다는 다행이라는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억해본다.

 우리 아이들은 친구들과 몸을 부대끼며 끼리끼리 즐기는 놀이문화가 거의 없다. 주말을 이용해서 친구와 단둘이 자전거를 타거나, 코인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며 노는 것이 그나마 신나는 놀이이다. 이런 놀이도 한 달에 몇 번 되지 않는다. 그래서 밤늦은 시간 친구들과 온라인게임으로 만난다. 편을 정해서 온라인 전투를 치른다. 그렇게 집에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다.

 그 놀이는 엄마, 아빠의 눈에 아주 잘 띤다. 어른이 밤늦게까지 술로 푸는 스트레스를 아이들은 게임으로 풀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친구들과 만나서 각자가 느끼는 감정대로 흥분하고, 욕도 해가며 그냥 풀게 둔다. 그것은 방치하는 것도 아니고, 무관심도 아니다. 집에서 하는 온라인게임으로 스스로를 통제하는 놀이이고 같은 언어로 소통하는 것에서 나오는 자율이 되었다.

#게임 #핸드폰 #추억 #친구 #부모 #부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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