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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골소년 Jun 19. 2020

기분 좋은 하루를 위해 수시로 기분전환 하기

 어제의 못다 한 미련이 남아서 일까, 무엇을 쫓아 헤매고 다녔는지, 한바탕 싸움을 치른듯한 헝클어진 머리와 초점이 맞지 않는 눈, 흘러내린 얼굴의 주름이 지난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지난밤 꿈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이 없으니 거울에 비친 모습만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했다. 얼마나 많이 돌아다녔는지 몹시 피곤하다.

 의지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지나간 일을 잠까지 끌어들인 게 문제다. 그 상흔이 머리와 얼굴에 볼품없는 못생김으로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형광등의 미세한 잔불이 사라지는 순간, 생각의 전원도 차단되어 곧장 잠으로 이어지는 단순한 과정이 쉽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재부팅되는 순간, 엉켜있던 생각들이 정리되거나 아픈 기억은 까맣게 지워져 버리길 기대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는 무는 밤은 길다. 에너지를 소모하는 완급조절 능력이라도 있다면, 잠들기 위해 힘을 쏟는 불필요한 소모 없이 아침이 한결 가벼울 텐데, 그런 능력이 없으니,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자며 또 생각하고, 이 또한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오늘은 최대한 가벼운 것에 빠져 지내보리라 다짐해 본다.

 그런데 오늘뿐만 아니라, 이런 다짐으로 시작하는 날이 수없이 많고 너무 길게 이어지고 있는 게 문제다. 코로나로 인한 정체로 불안한 생각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달리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다. 정신이 혼미하고 멀미가 난다. 그런 생각으로 앉아있는 것은 꽤나 불편하다. 게다가 뉴스까지 불편하기 짝이 없는 퍽퍽한 것들로 가득하다.

 앞으로 이보다 더한 충격이 담긴 다양한 뉴스거리가 준비되어 있으니, 지금의 충격은 대수롭지 않게 만들어줄 요량으로 반복해서 들려주는 것 같았다. 그래도, 지금까지 인내심을 테스트 당한 게 있으니 오기가 생긴다. 하루를 시작도 하기 전, 미리 지침을 방지하기 위해 볼품없는 거울 속의 나, 의식 없이 보낸 지난밤의 자국과 퍽퍽한 뉴스로 혼탁해진 몸과 감각을 말끔히 씻어 버린다.

 요즘 같은 때는 이런 기분전환이 수시로 필요하다. 오롯이 나와 관련된 예상하지도 못하는 새로운 사건과 생각들이 두더지잡기 놀이처럼 일어날 것이고, 그것만 감당하기도 벅찰 텐데 말이다. 기억이 날 듯 말 듯 한, 꿈속에서 일어난 듯한 지난 일들을 들춰내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흥분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는 뉴스로 아침부터 참담한 심정을 만들 필요가 없다.

 아침이면 햇볕이 가장 잘 드는 거실의 전신 거울에 하나 둘 순서를 정한 것처럼 줄지어 선다. 여름의 옷차림은 다른 계절에 비해 단출해서 자신 없는 곳을 가릴 수도 없다. 어제와 별반 차이 없는 모습을 하고 거울에 자기를 비춰본다. 어깨를 펴고 머리를 꼿꼿하게 새우는 것이 강렬한 여름 패션이고 자신감이다.

 그런 점에서 여름은 참으로 솔직한 계절이다. 흘러내리는 땀방울로 얼굴과 옷이 젖는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그런 모습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감동이 될 수도 있다.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전신과 벌써부터 번들거리는 얼굴로 집을 나서기 전, 거울 속 지금의 내가 가장 좋아 보인다고 강력한 주문을 건다. 그 느낌 그대로 오늘 하루가 시작된다.

 오로지 긍정이라는 스스로를 방어할 무기를 장착하고 집을 나선다. 그런 지금의 내 모습에 반하는 것이 곧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하는 힘이 될 수 있다. 매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머리를 하고 있는 거울 속의 나에게 만족한다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 눈에도 그렇게 보인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기대를 하며 나선다.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 이도 에너지가 넘친다면 가슴 벅찬 하루가 될 것이다.

 가장 먼저 집을 나서는 딸아이에게 '오늘 참, 귀엽고 예쁘다'라고 말은 건네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의 첫 번째 기분전환용 멘트였지만, 서로가 느끼는 가슴 벅참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빠는 나를 귀엽고 예쁘게 봐주는 사람이구나', 하루를 시작하는 듣기 좋은 말들이 수없이 많았다. 잊고 있거나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아서 문제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나는 보이지 않고 다른 사람을 본다. 내가 잘 하고 있는지, 길가의 상점 유리창에 비친 나를 보거나 화장실 거울을 통해 수시로 점검을 한다. 처진 어깨를 펴고 고개를 다시 가다듬는다. 이제는 만나는 사람마다 준비된 멘트를 놓치지 않고 적절한 타이밍에 건네기만 하면 된다.

오늘 참 좋아 보여요,
오늘 참 예뻐 보여요,
오늘 참 귀여워 보여요,
오늘 참 컨디션 좋아 보여요,
오늘 참 행복해 보여요,
오늘도 힘내세요, 파이팅입니다...,

 오늘은 아니 요즘은, 이런 말을 많이 하고 싶고, 많이 듣고 싶다. 따뜻한 말 한마디는 지쳐있는 사람을 일으키는 양분이 된다. 접대성 멘트라도 상관없다. 오히려 지금은 남발해야 되는 때가 아닌가 싶다. 누가 먼저이든 간에 기분 좋게 하는 말에 서로의 기분이 요동치기를 기대한다.

#기분 #기분전환 #생각 #사람 #하루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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