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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골소년 Jun 25. 2020

농사꾼 아버지의 저금통

씨앗을 어루만지는 얼굴에서
기다림과 땀으로 주고받을
새까만 주름 띤 하얀 미소
하루하루 모종을 저축하고
희망이 자라나길
정성을 넣어 모으는 데 쓰였던
느린 채워짐의 조그마한 땅

내 기억의 아버지는
그런 저금통을 밭에다 두셨고
손바닥만 한 땅을 일구며
뿌린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아버지의 희망을 옮겨 심은
땅에서 어린 자식들이 자랐지

그랬던, 그때 기억의 나는
그런 아버지의 직업을 철없이
부끄러워하며, 흰 종이에 드러내기를
연필심 색깔처럼 까맣게 망설였지

그런데, 지금의 나는
풋내기처럼 품었던 몸서리치던 기억을
이제는 조금은 참뜻을 알아가듯, 농부인
아버지를 쓰내려가며 골 깊은 주름의
의미를 대하는 법을 알아가지

철없던 아들의 실수에
'너무 걱정하지 마라,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니다'
상처를 희망으로 바꾸던 말
평생 땅에서 삶을 바치는 정도는
되어야 감히 존엄을 논할 수 있지

그렇게 아버지는
희망을 넣는 작은 구멍만 있고
꺼내는 구멍이 없다며
마음의 저금통을 깨지 말아야 되는
이유를 알려주셨지
희망은 계속 저금통에 넣어두며
쌓아가는 것이라고

#아버지 #희망 #저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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