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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골소년 Jun 30. 2020

아빠는 왜 맨날 같은 라면만 사와

 날씨가 더워지면 즐겨마시던 보리차와 잠시 이별을 해야 한다. 시골에 계신 모친의 '보리 볶은 건 아직 있냐'라는 확인은 떨어지면 큰일 날것 같은 쌀처럼, 물은 꼭 끓여 먹어야 된다는 강박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일년에 한 번 정도, 모친의 볶은 보리가 떨어지는 날이면, 동네 슈퍼에서 티백을 사서 물을 끓여 먹었지만 시골의 맛과는 거리가 있었다.

 어릴 적 학교 운동장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벌컥벌컥 마시던 수돗물에 비하면, 집에 있는 보리차의 고소함이 훨씬 좋았던 강렬한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물은 꼭 끓여야 된다는 집착으로 30도가 넘는 한여름 무더위에도 주전자에 물을 끓였고, 싱크대에 수돗물을 가득 담아서 식힌 다음 페트병으로 옮긴 후 냉장고에 넣는 수고를 당연한 것처럼 여겼다.

 아내는 그런 수고와 번거로움으로 점점 지쳤고, 나만의 고집으로 나 스스로 보리차 끓이기를 오랫동안 강행했다. 한번 몸에 배면 무섭게 자리 잡고 버리지 못하는 여러 가지 습관 중 하나였다. 더운 날씨에 주전자에 가득한 물이 끓는 동안 가족들의 속도 부글부글 끓었나 보다. 결국 참다못한 아이들도 '여름엔 보리차 먹지말자'라는 의사 표현을 하게 되었고,

 휴대폰으로 몇 번의 클릭과 함께 물이 현관 앞까지 배달되는 편리성을 따지는 가족들의 이구동성에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다. 문득 나의 이런 습관처럼 자리 잡은 고집이 집안의 분위기를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운 날에 보리차를 끓여야 했던, 나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옳다고 강요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에서 드러나고 그대로 입으로 표현되는 것이 얼마나 더 있을까.

 며칠 전 아들이 신라면을 끓이며, '아빠는 왜 맨날 같은 라면만 사 와'라며 볼멘소리를 냈다.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아빠가 지금까지 먹어보니까, 신라면과 안성탕면이 제일 맛있어'라고 답했다. 철저하게 나의 입맛에 맞춰진 선택의 기준이었다. 아빠의 입맛에 아무 말 없이 따라오는 듯했던 아들의 갑작스러운 반기였다.

 다음날, 퇴근 후 냉장고 옆 수납장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여러 종류의 라면이 보였다. 발 빠르게 아들의 불만에 대응한 아내의 얼굴엔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평화 유지군이라도 되는 것처럼 얼굴엔 만족스러운 웃음기가 가득했다. 여러 종류의 화려한 봉지 속에서 지금껏 먹어보지 못한 것도 눈에 띄었다.

 마트에 가면 익숙함에 밀려 조금은 구석진 곳에서 손님의 손길을 기다리던 라면이, 그날은 우리 집에서, 그것도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서, 신분 상승이라도 된 것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동안 다양성의 인정은 사소한 먹거리에서부터 조금씩 엇갈렸나 보다.

 카드를 쥐고 있는 아빠는 줄곧 같은 라면을 대량으로 사다 날랐고, 아이들은 아빠의 입맛을 강요하는 행위가 불편하기라도 하듯, 편의점에서 다양한 라면을 낱개로 사서 입맛을 테스트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눈에 띄면 눈치 없이 한 젓가락 찬스를 무단으로 사용했고, 역시 맛은 종류를 불문하고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며,

 "과자든, 아이스크림이든, 음료수든, 오랜 기간을 거쳐 사람들의 입맛 테스트를 거쳐 확실하게 자리 잡은 것들을 손에 잡는 순간, 선택의 장애 없이 쉽게 마트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인데...", 그렇게 말을 건네며,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익숙하고 잘 알려진 라면이 그래도 제일 맛있지 않니",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한데..., 다른 라면도 어떤 맛일까 궁금하니까..., 그리고, 그날의 기분에 따라 왠지 당기는 게 있거든...", 아이들에겐 미각을 테스트하고 있는 중요한 순간이라는 생각에 잠시 멍해지는 것으로, 이미 정해 놓은 것이 아니라 다양함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것으로, 내가 즐겨먹던 라면이 모두의 기준이었다는 환상에서 깨었다.

 앞으로 아이들이 사회라는 곳에서, 왜 아빠처럼 맨날 같은 라면을 고집하는지 모르겠다며, 어른들의 익숙한 입맛에 길들여지지 않게 다른 라면도 한번 먹어보자며, 소리 내어 말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가는 것으로, 나의 경험과 입맛의 습관에 빠진 라면 인생에서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라면의 종류만큼 다양한 다름의 경험으로 아이들의 선택을 진전시키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아이들의 입맛에 맞는 것을 먹든, 엄마, 아빠의 익숙한 것을 먹든,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매일 먹는 것이 아니니까, 한 끼 정도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같이 먹어줄 수 있는 배려, 경험자의 기다릴 줄 아는 여유...,

 언제부터인가 엄마, 아빠의 익숙한 것을 흔들어 주는 아이들이 기특하다. 사소한 먹거리에서 다름의 인정은 나의 오래된 습관과 입맛을 일시 포기해야 되는 불편함이 동반되는 조금은 거북한 일이었다. 그래도 라면은 냄비 하나를 두고 같이 먹어야 더욱 맛있는 음식이기에, 행복한 젓가락질을 위해서 익숙하지 않은 맛도 맛있게 먹어 준다.

 그리고 한번 몸에 배면 무섭게 자리 잡고 버리지 못하는 분위기를 갉아먹는 또 다른 습관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가족들에게, 집에서 아빠가 기준이라는 생각으로 이기적으로 살아갈 필요가 없다. 배려하는 마음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다. 아이들의 눈에 해묵은 또 다른 것이 불쑥 튀어나와 우두커니 서있는 생각을 흔들어 주기를 기대해 본다.

#익숙함 #보리차 #보리 #라면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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