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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골소년 Jul 11. 2020

내 말이 맞다, 근거 없는 자신감

 아내가 하는 일이 뭔가 단단히 꼬인 모양이다. 격앙된 목소리로 전화 통화를 이어간다. 중간중간 애써 감정 조절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고객의 생각이 바뀌었고, 그동안 진행되었던 일을 원점으로 되돌리자면, 손해 없이 계약을 파기해야 하는 적당한 변명거리를 찾아야 했다.

 그 변명거리로 아내의 실수와 강요를 주장했고, 그런 이유로 의사결정을 흐리게 했으니, 어쩔 수 없이 동의를 했다는 것이다. 아내의 입장은 성심성의껏 안내를 했을 뿐이고, "판단은 고객님이 전적으로 하신 거잖아요!, 이제 와서 저한테 모든 잘못이 있다고 주장하시면 제 입장이 뭐가 되나요!...", 이러했다.

 다소 흥분한 두 사람의 대화에서 귀에 거슬리는 얘기가 들렸다. "내 친구가 변호사인데 이미 다 알아봤고, 문제가 되면 당신(아내)이 불리할 겁니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고, 곧장 슬픈 감정으로 변했다. 어릴 적 친구와 다투던 장면이 떠올랐다. "우리 집엔 ○○○가 있는데, 너네 집엔 없지?', 싸우던 논쟁과 빗나가는 황당한 비교를 당하면, 좌절감이 스멀스멀..., 단지 없다는 이유로 패배감으로 변하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그 사람은,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할지라도 일방의 주장만 듣고 불리하다고 얘기할 사람이 아닐 텐데요..., 맞다고 확신한 것들이 뒤집어지는 황당함으로 다가오는 불안감 같은 건 전혀 없나요...', 아내는 전화가 끝나자마자 곧장 어디론가 향했고, 핸드폰에 녹음된 통화 내용을 들려주고서는 상대방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가족이라며 같이 온 사람의 고압적인 자세도 통화 내용을 듣고서는 금세 수그러 들었다고 한다.

 상황이 뒤집혔다. 아니..., 처음과 달라진 건 없었다. 단지 화가 난 것에 부정하고 분노하고 타협하지 않았을 뿐이다. 타협하지 않으면 절대 인정할 수 없고, 사과할 기회도 없다. '무엇때문에 화가 났던 것일까...', 화가 난 이유는 내가 잘못했다 하더라도 다른 쪽에서 찾자는 것이었는데, 반격이 만만치 않으니 더 화가 난 게 아닐까, 일단 그렇게 결심을 하면 반박하는 말들은 죄다 틀리게 들리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많은 지식과 경험이 있다고 한들 객관성이 있는 말들조차도 부당하고 부정하고 불합리한 것으로 고집한다. 거기에 주변에 백그라운드가 더해지면, 근거 없는 자신감은 강력한 무기가 된다. 그런데 그런 것이 가끔은 먹힌다는 게 문제다. 상대방을 주눅 들게 하고 규칙을 흔들어 깨고, 다른 사람을 손해 보게 한다.

 논쟁거리와 아무 상관없는, 있고 없고의 차이를 들먹이는 사람들의 화가 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주눅 들게 해서 빠져나갈 구실을 찾고 있는 노림수를..., 그런데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가능하면 빨리 깨우쳤면 좋겠다. 나쁜 습관은 빨리 고치는 것이 좋다. 아는 사람 찬스 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자신의 목소리로 진실을 증명당함에 민낯이 드러날 수 있다.

 자기의 말을 다시 듣는 소리는, 합당한 이유가 있을 때 들어야 아름답지 않을까..., 주변에 힘이 될만한 권력자도, 뒤를 봐줄 만한 게 없기 때문에..., 오히려 신중한 삶을 살게 되는 밑바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의 신념이 무언가에 흔들려, 사실은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 불안이 무서울 뿐이다.

#아내 #변명 #변명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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