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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 May 27. 2023

마음이 생기는 방향

-취향이 있는 삶


"엄마는 무슨 꽃이 제일 좋아?"

"귀 대봐."

"왜?"

"그게..., 좀 그래..."


호기심 어린 얼굴로 귀를 내준 아이에게 내가 좋아하는 두 가지 꽃 이름을 속삭였다. 아이는 무슨 큰 봉변이라도 당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킥킥거렸다. 혹시 엄마의 속삭임이 밖으로 새어 나가진 않았을까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진짜'냐고 물었다. 쉰 소리를 잘하는 엄마를 가진 아이의 자연스러운 경계성 반응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꽃마리 그리고 아이를 당황하게 한 장본인, 큰개불알풀이다. 이름을 들으면 사람을 잠시 주춤하게 하는 식물들이 꽤 있다. 특히 아이들에게 반응이 좋은 이름은 개쉽싸리, 조팝나무, 쥐오줌풀, 미치광이풀, 개시닥나무, 거지딸기, 도둑놈의갈고리 같은 것들이다. 금기의 언어들을 당당하게 이름으로 품었으니, 아이들은 이것을 듣고 부르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모양이다.  


내가 좋아하는 두 식물은 모두 들이나 길가에서 아무렇게나 자라 꽃을 피운다. 곱게 부르면 들꽃, 험하게 부르면 잡초들이다. 길이가 한 뼘이 될까 말까 하고 꽃도 손톱만큼 작아, 그 꽃을 감상하기 위해선 몸을 낮추거나 쪼그려 앉아야 한다. 의도적인 동작에 시선을 더해야만 보이는 가련하리만큼 작은 존재들이다.  


식물과 가까운 일을 하면서 이 꽃 저 꽃 참 많이 보고 만졌다. 그 수많은 꽃의 향연에도 나의 기호는 게 바뀌지 않았다. 다른 꽃들이 예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감탄하며 찾아보게 되는 꽃은 늘 이 두 꽃이었다. 나의 취향일 것이다.  


취향 중에는 외부 자극이나 나의 노력과 상관없이 그것을 향한 기호가 내 안에 이미 자리 잡고 있는 것들이 있다. 작은 들꽃을 향한 나의 취향은 그런 종류인 것 같다.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 거리의 여인 비비안(줄리아 로버츠 분)은 난생처음 보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 몰입해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나는 그 장면이 참 좋았다. 고등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문화적 경험치가 없는 그녀가 작품이 주는 울림에 공명한 것은 그녀 안에 내재된 취향이 반응한 것이라 생각한다.  


취향의 사전적 의미는,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이다. '마음의 방향'이라니 참으로 로맨틱한 정의다. 그런데 취향을 만드는 과정은 그 로맨틱함과는 달리 꽤 품이 드는 일이다.  


취향은 선천적일 수도 있고 후천적일 수도 있는데 어느 쪽이든 그렇다. 선천적일 경우,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후천적일 경우, 그것이 나의 취향으로 자리 잡기까지 지속적인 경험과 노력이 요구된다. 두 가지 모두 '호'와 '불호' 사이를 넘나들며 마음의 방향을 견고히 하는 일이니,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겐 자신만의 이유와 역사가 있다.  


내가 만난 사람 중 자신의 취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제대로 경험한 사람은 타인의 취향에도 관대했다. 그들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만났을 때의 끌림을 반겼고, 자신과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궁금해했다. 그래서 나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자신만의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멋져 보인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된 나의 아이는 재작년 가을부터 어깨 길이 정도의 긴 머리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미용실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나는 그러면 조금 더 길러 파마하는 선택지도 있다고 조언했다. 그렇게 시작된 머리카락 기르기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별다른 것은 없다. 아이가 남자라는 사실 빼곤.


긴 머리를 한 남자아이가 많지 않기도 하고, 아이의 눈매가 예쁘장한 편이어서 사람들은 종종 아이를 여자아이로 오해했다. 이로 인해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생기기도 했는데, 그런 일들은 성별이 명하게 구분되어야 하는 공간에서 주로 발생했다. 예를 들어 화장실, 수영장 같은 곳들 말이다. 아이는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저 남자예요."라며 유쾌하게 웃어넘겼다. 아이의 대답을 들은 상대방은 미안해하며 사과할 때가 많았는데, 아이는 자주 있는 일이라며 괜찮다고 대답했다.  


아이가 5학년이 되던 3월에 나는 약간 걱정했다. 이제 마냥 어린이가 아닌데..., 새로 만난 학급 아이들이 아이의 긴 머리를 놀리진 않을지, 악의 없이 던진 말에 아이가 상처받는 일이 생기진 않을까 하고. 아이의 친구들은 남자면서 왜 머리를 길렀는지 물었다고 했다. 아이는 그냥 한번 길러보고 싶었다는 담백한 대답을 했고, 다행히 내가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는 긴 머리가 점점 더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렇게 긴 머리는 무럭무럭 자라 아이의 취향으로 자리 잡았다.  


나는 아이가 취향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 반갑다. 꽤 긴 시간 동안의 경험을 통해 '머리카락은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는데 나는 긴 게 더 마음에 들어.'라고 자신의 기호를 발견한 것이 기특하다. 그렇게 '나'라는 사람이 가진 고유한 특성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표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다. 취향이 있는 삶은 더 즐거운 것이 분명하므로.


오늘도 나는 담장에 핀 화려한 오월의 장미를 뒤로하고, 길바닥에 쪼그려 앉는다. 애를 써가며 작은 꽃을 사진에 담아도 본다. 집중하지 않으면 알아보기 힘든 초록의 사진 속 주인공이 마음에 든다.


꽃마리
큰개불알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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