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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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종관

저녁에 양사장은 우리를 밖으로 불렀다. 낮에 이불 등을 갖다 주며 저녁에 카페 앞에서 조촐한 파티를 하자고 제안을 받은 터였다. 전깃줄을 감아서 보관하는 전선 드럼을 옆으로 뉘여서 만든 원형 탁자에 맥주와 안주가 차려졌다. 민은 어느 새 카페 안 출입을 자유롭게 하고 있었다. 카페는 영업을 안 하고 있어서 주방은 양사장의 식사 용도로만 쓰이고 있었다. 우리는 둥그렇게 둘러 앉아 맥주를 마셨다. 앞마당 앞에는 작은 밤나무 숲이 있었다. 나무는 수령이 꽤 되는 듯 허리가 굵었다. 그 너머는 찻길이었는데 밤이 되자 지나다니는 자동차가 드물어서 꽤나 깊은 산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훤한 보름달이 밤나무 잎사귀를 윤기 나게 비추고 있었다. 밤나무 아래 숲에는 가는 풀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서늘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양사장은 두서없이 자신의 얘기를 했다. 온갖 풍상을 다 겪고 지금은 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다고 했다. 물려받은 부동산이 있어서 이런 저런 사업을 해보았지만 죄다 실패하고 마지막으로 카페를 열었는데 장소가 너무 외진 탓인지 장사가 안돼서 개점휴업 상태라고 했다. 펜션사업 또한 주변 경관이 그럴싸해서 시작했는데 영업이 쉽지 않아 카페와 마찬가지 상태라고 했다. 아들이 하나 있는데 이혼한 후로는 거의 볼 수 없고 지금은 혼자 몸으로 아버지와 비어 있는 펜션 한 동 씩을 거처 삼아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치매가 와서 거동이 편치 않아 낮에 요양사가 와서 식사와 간병을 챙기고 있었다. 아버지가 이따금 산책 삼아 나올 수 있으니 만나면 알아서들 하라고 했다. 그는 남의 말을 하듯 자신의 얘기를 했다. 그것은 기억도 희미한 영화나 소설을 남에게 전하는 말투였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남의 일을 전하듯 그는 자신의 인생사를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민은 명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대신 밤나무 숲을 보며 낮은 소리로 흥얼거리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양사장의 말에 관심이 생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간혹 밤나무 숲 사이에 반짝이는 동물의 눈빛이 보였다. 진녹색의 구슬 같은 눈빛이 고양이 같았다. 소리도 내지 않는 고양이가 지나갈 때마다 마당의 개는 컹컹 소리를 내며 크게 짖었다. 명의 대화 상대는 주로 구였다. 둘은 비슷한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비슷한 인생 경력(이혼!) 때문인지 잘 통하는 사이가 되었다. 빈 맥주병이 늘어가자 둘은 더욱 수다스러워졌다.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 소리가 카페 마당에 울려 퍼졌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했다.

“별이다!”

민은 하늘을 보고 소리쳤다. 어두운 밤하늘에 북두칠성이 선명하게 떠 있었다. 술이 조금 들어가자 기분이 밤하늘의 별처럼 공중을 떠돌았다. 양사장이 모닥불을 피우겠다고 했다.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자갈이 깔린 마당에 동그란 모닥불이 금세 피워졌다. 이미 여러 번 해 본 솜씨인 듯 모닥불을 준비하는 양사장의 움직임은 민첩하고 빈틈이 없었다. 우리는 파라솔 의자를 들고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았다. 각자의 손에는 맥주가 한 병 씩 들려 있었다.

“당신들이 카페 한 번 해 보지 않을래요?”

잠깐의 정적을 틈타서 양사장이 내뱉듯이 던졌다. 그는 이미 우리의 정체에 대해서 충분히 파악하고 있는 듯 했다. 구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또는 얼마나 멋있는 사람들인지 술기운을 빌어서 충분히 설명해 놓은 터였다. 구의 말은 크게 믿을만한 구석이 없었으나 양사장의 관심을 끈 것은 우리가 시간이 많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할일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양사장의 제안이 있은 후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나는 상체를 흔들어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맏형인 구의 의사가 중요했으나 나에게 의견을 묻는다면 아니올시다, 쪽에 기울고 있었다.

‘망한 카페 인수라!’

나는 말도 안 되는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일들은 술자리에서 가볍게 결정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또한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무언가 사업 비슷한 일을 하게 된다면 우리 중에 가장 고생할 사람은 내가 될 게 뻔했다. 나머지 둘은 그럴만한 사회 경험도 없었고 평소의 스타일상 사업 따위를 할 만한 그릇들이 아니었다. 단적으로 말하면 민은 잠보였고 구는 모든 일을 입으로만 하는 타입이었다. 두 사람은 선량하고 의리 있고 정직하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사업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민은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이글거리는 장작불빛이 그의 커다란 두 눈을 비추고 있었다.

“여자가 보고 싶네. 불꽃처럼 뜨거운 여자.”

술에 취하면 상황과 상관없이 뜬금없는 소리를 잘하는 구가 양사장의 제안엔 아랑곳없이 연극 대사 같은 말을 내뱉었다.

“형, 형수 만난 지 꽤 오래 됐네.” 내가 말했다.

“응. 지난 가을에 보고 못 봤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네.”

길고 무거운 한숨이 구의 입에서 나왔다. 피우던 담배를 장작불에 던져 넣고 구가 말했다.

“그래요. 우리가 해 볼게요. 까짓것 한 번 해보지 뭐. 송아, 너 할 수 있지?”

나는 구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형, 생각 좀 해봐야 하지 않아?”

“그래? 그런가?”

“응. 생각 좀 해보는 게 좋을 거 같애. 할 때 하더라도. 우리 여기 잠시 머물 거잖아.”

“참, 그렇지. 넌 역시 똑똑하구나. 그래 생각을 해보자.”

“그래요. 셋이서 한 번 의논을 해보세요. 급하지 않으니까. 며칠 내로만 답을 주세요.”

“네. 답을 드릴게요. 아직은 긍정도 부정도 아닙니다. 며칠 내 답을 드릴게요.”

구는 좋은 아이디어라도 떠올랐다는 듯이 술에 취한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펜션에서의 잠은 달콤했다. 우리는 떠도는 생활에 지쳐 있었다. 구는 헤어진 여자와 마무리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중이었다. 달리는 짬짬이 차를 세우고 멀리 떨어져서 전화 통화를 하던 것은 모두 여자 때문이었다. 나는 둘 사이가 잘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요원한 일이었다. 남녀 사이의 일이란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복잡한 사정이 있는 것이다. 펜션에서 첫 날 밤을 보내고 난 후 구는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고 말했다. 구와 내가 방 하나 씩을 차지해서 침대에서 자고 민은 마루에 있는 소파에 이불을 덮고 잤다. 민에게 잠이란 양식과도 같은 것이어서 장소 불문하고 깊은 잠에 곯아떨어지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간밤에 마신 술 때문에 숙취가 있어서 주방에 있는 믹스커피를 잔에 털어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서 마당으로 나왔다. 산골의 아침은 신선했다. 차갑고 맑은 공기가 폐 속 깊이 파고 들었다. 어제 보았던 리트리버 강아지가 반가운 시늉을 했다. 개는 낯선 사람을 보고 짖을 줄도 모르는 놈처럼 보였다. 개의 곱슬거리는 털에 이슬이 묻어 있었다. 커피 잔을 들고 밤나무 숲을 걸었다. 선득한 공기는 더욱 맑고 차가운 느낌으로 머리를 씻겨 주었다. 숲 속에 작은 오솔길이 나 있었다. 멀리서는 보이지 않았는데 누군가 다닌 흔적이 작은 오솔길을 이루고 있었다. 풀잎들은 이슬을 머금고 젖어 있었다. 나무들은 수령이 꽤 된 듯 제멋대로 휘어져 자라며 작고 울창한 숲을 채우고 있었다. 나무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음껏 성장했다. 그것은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자유분방한 삶이었다. 나는 등허리가 S자로 휘어진 나무에 기대어 등성이 너머로 떠오르는 아침햇살을 눈을 감고 느껴 보았다. 늦잠을 잔 민이 어슬렁거리며 카페의 주방으로 들어가 무언가 먹을거리를 찾는 동안 옷차림을 갖추고 나온 구는 외출을 했다. 어딘가 다녀올 곳이 있다고 했지만 묻지 않았다.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주차장을 벗어나는 그를 원탁에 앉아 눈으로 배웅했다. 과일 접시를 들고 나온 민과 탁자에 마주 앉았다.

“먹을 걸 좀 사와야 되겠는데. 형더러 오는 길에 사오라고 할까.”

민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깎아 놓은 과일을 포크로 찍어 먹었다. 해는 벌써 중천에 떠오르고 있었다. 정수리를 쏘는 해가 뜨거워 접어놓았던 파라솔을 펼쳐야만 했다. 식은 커피를 버리고 새 커피를 만들기 위해서 카페 주방 안으로 들어가다가 구석에 서가를 발견했다. 카페 건물 내부는 황량하리만큼 크고 넓었다. 뾰죽하게 솟은 지붕 부분은 건물의 이층 높이를 넘었으나 실내는 오직 하나의 공간일 뿐이었다. 큰 파티를 열기 위한 거대한 거실을 연상하게 하는 샹델리가가 공간의 중간에 매달려 있고 사각형의 대형 유리가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구석 모서리에 작은 책꽂이가 있었다. 고추 농사짓는 법이나 미꾸라지 양식 법등 도무지 카페와 연관을 찾을 수 없는 책들이 꽂혀 있었다. 책들은 낡고 윗부분이 먼지에 덮여 있었다. ‘원예의 기초’라는 제목의 책을 뽑아 들고 주방으로 가서 전기주전자에 물을 받아서 받침 위에 올려놓고 스위치를 눌렀다. 주방에는 카페를 위한 식기들이 선반에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주방에 들어서는 사람에게 인사라도 하려는 듯 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하는 냉장고를 열어보니 어제 마시고 남은 맥주가 두 병 남아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물이 끓기를 기다려 여과지에 받쳐 놓은 커피에 뜨거운 물을 부으려는 순간, 주차장에 자동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구가 벌써 돌아왔을 리는 없을 것 같고, 누군가 하고 쪽문으로 내다보니 낯선 자동차 한 대가 정차하는 것이 보였다. 내리는 사람의 모습은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고 누군가 차문을 열고 닫은 후 카페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혼자가 아닌 것 같았다. 서둘러 나가봐야 할 이유는 없어서 커피가 다 내리길 기다려 잔을 들고 밖으로 나가자 민은 보이지 않고 젊은 남녀 두 사람이 우리가 앉았던 원탁에 앉아 있었다.

“커피 두 잔 주세요.”

짙은 색 선글라스를 벗자 말끔한 정장 차림에 어울리게 반듯한 중년의 남자 얼굴이 드러났다. 남자의 목소리는 적당히 붙임성이 있었다. 낯선 사람과도 쉽게 잘 어울리는 사교성 있는 인상이었다.

“장사 안 하는데요.”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천천히 대답했다.

“그래요?” 남자가 말했다.

“네. 지금 장사 안합니다.”

“저희가 너무 일찍 왔나요?”

“아니요. 지금 카페 안합니다.”

나는 그들을 지나 비어 있는 또 하나의 원탁 위에 잔을 내려놓고 앉았다.

“아저씨 드시던 거라도 한 잔 더 뽑아 주시면 안 돼요? 지금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은데… 돈은 드릴게요.”

나는 잔에서 맑은 김을 피워 올리고 있는 커피를 바라보았다. 마시고 싶다는 커피를 옆에서 혼자 홀짝거리는 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주방에 끓여놓은 물이 있는 게 생각이 났다.

“기다려 보세요.”

“감사합니다.”

주로 남자가 말을 하고 여자는 다소곳이 앉아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 옆을 지나갈 때 희미한 향수 냄새가 났다. 남자들 틈에서만 지내기 때문인지 여자에게서 나는 향기가 잠깐 아찔한 자극을 주었다. 주방으로 가서 물을 조금 더 끓여서 커피를 만들어 내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혼자서 마시려고 하던 때와 달리 누군가에게 대접을 한다고 생각하니 좀 더 신경이 쓰였다. 선반에 줄지어 서 있는 머그잔 두 개를 내려 커피를 가득 부어서 쟁반에 받쳐 들고 나가자 남자가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여자가 후아, 소리를 내며 커피 맛있다,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야외 마루에 머무는 손님들을 위해 기둥에 설치해 놓은 스피커에서 나지막한 피아노 음악이 흘러 나왔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 계산대에 설치되어 있는 노트북에 음악 파일이 있어서 그 중 마음에 드는 음악을 틀어 놓은 것이다. 적당한 냉기를 머금은 바람이 밤나무 숲을 가로 질러 우리가 있는 곳까지 불어 왔다.

“여기 좋다!”

여자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에게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자리를 떠서 펜션으로 가자 민은 내가 자던 침대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그가 자던 소파에 누워서 텔레비전을 켰다. 민의 코고는 소리 때문인지 예기치 않은 선잠이 밀려왔다. 깜빡 잠이 들었다고 느꼈는데 눈을 떠보니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밖으로 나가 카페 마루를 보니 커피를 마시던 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있던 자리에 가보니 비어 있는 커피 잔이 나란히 있고 하나의 잔 아래 만 원짜리 지폐가 잔 받침처럼 얌전히 누워 있었다. 주방에서 수돗물 소리가 나서 들어가 보니 양사장이 무언가를 만드는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손님이 왔었나봐?”

그는 어젯밤 술자리 이후로 우리에게 말을 놓고 있었다.

“그런가 봐요.”

“뭐야? 송형이 받은 거 아니었어?”

“제가 주긴 했는데 손님으로 받은 건 아니고 커피를 달라 길래 갖다 줬어요. 돈을 놓고 갔네요.”

그들이 놓고 간 만 원짜리 지폐를 흔들어보이자 명은 웃으며 말했다.

“오! 장사에 소질 있네. 잘 할 거 같은데, 손님을 끄는 재주가 있어.”

“소질은 무슨.”

지폐를 처치 곤란하다는 듯이 테이블 위에 놓자 명은 지폐를 집어 핀으로 나무 벽에 꽂으며 말했다.

“이건 그대들이 받은 첫 수입이니 기념으로 보관하자구. 예감이 좋은데. 흐흐.”

나는 우리가 아직 장사를 하겠다고 답을 한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명사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커피 잔을 들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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