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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장의 카페를 발견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서울에서 무조건 북쪽으로 골골거리며 달리던 차가 막바지 신음 소리를 내자 구는 조금 걱정이 되는 눈치였다. “야, 어디 가서 밥이라도 먹고 쉬어 가자.” 직진으로만 달리던 차를 좌회전 시켜 포천 방향 이정표를 따라 산길로 접어 들었다. 사거리를 벗어나자 곧바로 가파르게 서 있는 산등성이가 앞을 가로 막았다. 산은 수원산이라는 팻말을 달고 있었다. 수원산은 가팔랐다. 그 산을 끝까지 오르다가는 차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고 말게 분명했다. 다행히 사거리를 조금 벗어나자 언덕길에 오른쪽으로 내리막길이 있었다. 차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비탈길을 털털거리며 내려갔다. 길은 경사를 따라 굴러 내려갔다. 기어를 중립에 넣고 자동차가 중력의 힘으로 굴러 내려가게 내버려 두었다. 길 옆으로는 좁다란 도랑이 흘렀다. 도랑은 아래쪽으로 내려가며 조금씩 폭을 넓혀 가고 있었다. 커다란 입간판이 있는 곳에 차를 세웠다. 온천탕 간판이었다. ‘목욕이나 하고 갈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구동성으로 나온 말이었다. “좋지!” 구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온천탕 입구가 있는 경사로에 차를 댔다.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드넓은 주차장에 한 대의 차도 없었다. “쉣!” 민의 입에서 침방울이 섞인 욕설이 튀어 나왔다. 차를 몰아서 온천탕 건물의 입구까지 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건물은 폐허였다. 온천탕 영업을 안 한 지 꽤 시간이 흐른 듯 했다. 어두운 유리문 안에 단단한 침묵만이 실망한 손님을 맞고 있었다. 차를 돌려서 나가려다가 주차장 한 가운데 차를 세웠다. 초등학교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주차장은 비현실적으로 적막했다.
“좀 무섭다.” 눈이 커서 그런지 겁이 많은 편인 민이 말했다.
“그래, 기분이 안 좋기는 하다.” 구는 차 문을 열고 담배 한 대를 피워 물며 말했다.
“좀 걷자. 너무 오래 운전했더니 삭신이 쑤신다.”
나는 차 문을 열고 나왔다. 시원한 봄바람이 운동장에 떠다니고 있었다. 봄날의 풀냄새가 밴 상큼한 바람이었다. 바람은 아마도 수원산에서 불어 내려오는 것일 터였다. 긴 겨울을 보내고 본격적으로 생명활동을 시작한 식물들이 온 천지에 초록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그곳이 마음에 들었다. 바로 떠나고 싶지 않았다. 아스팔트 주차장은 비어 있는 동안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갈라져 있었다. 갈라진 틈으로는 부지런한 풀들이 뾰족한 손가락들을 내밀고 있었다. 샛노란 민들레 한 송이가 손짓을 하듯 피어 있었다. 민들레 꽃잎은 정교하게 다듬은 보석처럼 눈부신 모습이었다. 쭈그리고 앉아 꽃잎을 바라보고 있자니 평화로운 기운이 온 천지에 가득 찬 기분이었다. 주차장 끝 모서리 부근에 치즈 색깔 고양이 한 마리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리를 구부리고 꼬리를 감은 모습이 갑자기 나타난 우리를 경계하고 있는 것 같았다. 휘파람을 불며 다가가자 고양이는 풀숲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제법 무성한 풀숲 속에 은신처가 있는 모양이었다.
“여기 좀 있을까?”
차로 다가가자 구는 어딘가 전화를 하고 있었고 민은 어느 새 잠자는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구의 전화가 끝나기를 기다려 다시 물었다.
“형, 여기 좀 있을까? 좋은데.”
“여기? 그래? 괜찮아?”
“응. 괜찮은데. 마음에 들어.”
“그래? 근데 어떻게 있지?”
“찾아보지 뭐. 찾아보면 있을 것 같은데.”
“그래?”
구는 한 번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차에서 내려 사방을 둘러보았다. 높은 산봉우리 쪽을 먼저 보고 아래쪽을 훑어보았다.
“형, 그렇게 둘러보는 모습이 꼭 땅 사러 온 사람 같다.”
내가 하는 말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구는 산등성이와 아래쪽을 연신 둘러보았다.
“나도 여기가 마음에 든다.” 차에 돌아온 구가 말했다.
“형은 뭐가 마음에 들어?”
내 질문은 싱거웠고 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그냥” 이라고 대답했다.
“그냥 마음에 들어. 처음에 별로였는데 자꾸 보니 마음에 든다. 너는 어디가 마음에 드는데?”
“나도 그냥!” 우리는 미소를 나누었다.
주차장에서 나와 다시 중력의 힘을 빌려 아래로 달려 내려가자 마을이 나왔다. 마을은 작았다. 마을이라기보다는 집 몇 채가 듬성듬성 이어져 있는 형세였다. 실개울은 폭이 넓어져서 건너자면 이차선 도로가 깔린 다리를 지나야 할 만큼 넓었다. 다리 아래로는 맑은 시냇물이 바위 틈새로 시원한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배고프다.”
언제 잠에서 깼는지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던 민이 한 마디 했다.
“국밥 한 그릇 먹고 싶다.”
민의 투정이 아니라도 우리는 밥때를 놓치고 있었다. 수원산 계곡으로 접어든 것도 사실은 시장기를 해결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주막이라도 있다면 쉬어 가자.” 텔리비전 드라마 사극 흉내를 내면서 구가 말했다.
”그러지요. 형님.” 멀지 않은 곳에 식당이 보였다.
붉은 벽돌로 외벽을 쌓은 단출한 주택집에 '해장국'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마당에 차를 대고 안으로 들어가자 한 쪽 벽을 통유리로 댄 넓은 실내가 나왔다.
“밖에서 보기와는 딴판이네.” 적당한 자리를 잡으며 민이 말했다.
뜨거운 해장국 세 그릇이 나왔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국밥을 후후 불어가며 단숨에 비우고 나왔다. 밥값을 치르는 중에 구는 식당 주인에게 '근처에 호텔이나 펜션이 없느냐' 물었다. 식당 주인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예전에 온천탕이 영업 중일 때는 이런 저런 시설들이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사라졌다고 한다.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을 하려는데 손님이 없어서 한가했기 때문인지 주인이 우리 일행을 따라 나오며 혹시 모르니 요 아래 카페에 가보라고 했다. 그 집에서 숙박 같은 걸 했는데 지금도 영업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주인이 일러준 방향을 따라 얼마쯤 내려가자 작은 다리가 하나 나오고 다리를 건너자 과연 카페라고 간판을 단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의 모습은 기괴했다. 길 쪽으로 내달은 간판을 보면 건물이 카페인 줄 알 수 있지만 언뜻 보아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 과장되게 지은 교회나 성당을 닮아 있었다. 하늘을 향해서 뾰족하게 솟은 지붕 위에는 십자가를 세우면 어울릴 듯했다. 인적이 드문 산 중에 이런 건물을 지은 사람의 의중은 무엇일까. 궁금해지는 모습이었다. 차에서 내려 현관 쪽으로 다가가자 주인인 듯 한 사람이 건물 앞쪽으로 설치한 나무 마루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우리를 심드렁하게 대했다.
“장사 안 합니다!”
그가 내뱉은 첫 말이었다. 자다가 일어나 부스스한 얼굴의 그가 성가신 태도로 말했다. 내가 마당 귀퉁이에 묶어 놓은 개를 구경하는 동안 구가 주인을 상대했다. 개는 사납지 않았다. 구리빛깔의 털이 풍성한 리트리버 종이었다. 개는 손을 내밀자 겅중 뛰어오르며 반가운 시늉을 했다. 머리를 만지고 등을 쓰다듬어 주자 친한 태도를 보이며 사람을 따랐다. 아마도 주인은 개를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개를 묶어 놓은 줄은 충분히 길었다. 알록달록한 천으로 만든 끈은 개집 앞에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고 자세히 보니 그 줄은 다른 줄에 동그란 고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다른 줄은 가는 철사 줄이었는데 개의 목줄은 그 줄에 반지모양의 고리로 이어져 있었다. 개는 철사 줄을 따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고 철사 줄은 건물의 뒤란 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철사 줄을 따라서 가자 개의 이동 경로가 건물을 한 바퀴 돌게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개는 거의 자유롭게 집 주변을 다닐 수 있었다. 개를 위해서 긴 동선을 마련한 주인의 배려를 알 수 있었다. 철사 줄을 따라서 건물을 한 바퀴 돌아오자 명사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구가 원형 탁자에서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여기서 좀 머물 기로 했다. 옆에 보이는 건물이 펜션으로 쓰던 거래. 지금 영업을 하지는 않고, 우리 사정을 말해서 한동안 머물 기로 했다.”
나는 구가 명사장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몰랐다. 구는 사람을 설득하는 기술이 있었다. 그런 기술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빛을 발했다. 나는 차로 가서 민을 깨웠다. 민은 꿈속에 있다가 깨어났는지 귀신, 어쩌구 하는 소리를 하며 내가 이끄는 대로 따라왔다. 명사장의 안내를 따라 카페 왼쪽에 나란히 서 있는 세 건물 중 하나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눅눅한 습기의 냄새가 났지만 비교적 새 건물이었다. 스무 평 남짓한 내부는 두 개의 방과 부엌, 그리고 마루가 있었다. 방에는 각각 침대가 하나씩 있었다. 민은 방이 마음에 든다며 당장이라도 침대로 달려가 나머지 잠을 이을 태세였다. 겨울에는 난방비 때문에 사용하지 않고 여름 피서 철에만 손님을 받는다고 했다. 얼마 동안이나 머물 거냐는 명사장의 질문에 구는 천천히 생각해서 말씀드리겠다고, 아마도 금방 떠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우리 둘을 보며 말했다. 명사장은 필요한 것을 갖다 드리겠다고 말하고, 옆 건물에는 아버지가 살고 있으니 되도록 접근을 하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라고 할 때 그의 표정에는 잠깐 어두운 기운이 스쳐지나갔다. 아마도 아버지 때문에 편치 않은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