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는 놈에게 담배를 권했어. 죄수가 담배를 피우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지만 몰래 피우는 것까지 심하게 단속하지는 않았어. 지나친 규율보다는 느슨한 억압이 통제에 이로울 때가 많다는 것이 묵시적으로 통하고 있었어. 놈은 황송해하며 허리를 굽실거리며 담배를 받았어. 그리고는 차 안에 있는 동료들 쪽을 흘깃 거리며 조심스럽게 담배를 피워 물었어. 놈의 입에서 달고 맛있는 담배 연기가 부슬비 속으로 천천히 날아올랐어. 놈의 얼굴은 평화로운 만족감으로 충만해 있었어. 어둠 속이었지만 슬며시 미소를 띠운 놈의 얼굴을 버스 안에서 흘러나오는 나오는 불빛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 귀신이 어떻게 생겼어? 나는 시큰둥하게 물었어. 귀신 얘기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딱히 대화거리가 없어서 물었어. 놈은 담배 선물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건지 열심히 자신이 본 귀신 사연을 털어 놓았어. 밖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으므로 놈은 조급하게 빠른 말투로 말을 했어. 귀신은 아는 사람이었어요. 우리 삼촌이요. 삼촌? 네. 삼촌이 일찍 죽었거든요. 그런데 귀신이 돼서 나타난 거예요. 어릴 때 시골에 살았어요. 여기처럼 첩첩산중 강원도 산골마을이었어요. 폐결핵을 앓던 삼촌은 장가도 못 가보고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죽었데요. 저는 삼촌의 얼굴을 기억하지는 못해요. 그런데 이웃마을에 처녀가 살고 있었어요. 삼촌과 그 여자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인데 삼촌이 죽고 몇 년 후 여자가 저수지에 빠져 죽었데요. 아마 무슨 사연인지 자살한 거 같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여자의 죽음을 안타까워 한 가족들이 사후 혼례라는 걸 치러주기로 했어요. 미신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영혼을 달래지 않으면 집안에 우환이 생긴다는 무당의 말 때문이었대요. 혼례는 모든 절차를 진짜 혼례에 맞추어 했어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한밤중에 마당에 불을 환하게 켜 놓고 혼례를 치르던 장면들이요. 신랑과 신부는 짚으로 만든 인형이었어요. 죽은 사람이 결혼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되기는 했지만 지푸라기 인형을 가지고 어른들이 진지하게 혼례를 진행하는 모습이 좀 무섭기도 했어요. 나는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혼례를 구경했어요. 신랑과 신부가 맞절을 하는 장면에서는 두 사람의 부모들이 혼수를 입혀 놓은 지푸라기 인형을 움직여 예를 갖추었어요. 신부 일 배! 라고 외치는 동네 할아버지의 음성이 집안에 우렁우렁 울렸어요. 신랑과 신부는 절차에 따라 혼례를 모두 마쳤어요. 아주머니들은 쯔쯔 혀를 차며 이른 나이에 하늘나라로 가버린 두 사람을 가여워 했어요. 담배 한 개비가 다 없어져 가고 있었으므로 우리는 얘기를 마쳐야 했어. 놈의 얘기는 아직 본론을 꺼내 놓지도 못했지만 우리는 호송 버스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어. 허접한 귀신 얘기를 듣자고 비를 맞으며 한데서 서 있을 수는 없었어. 얼른 해. 나는 말을 끊기는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어. 알겠습니다. 그럼 여기서 말고 들어가서 마저 해 드릴게요. 그럴까. 나는 그게 좋겠다고 생각했어. 우리는 담배꽁초를 빗속에 버리고 버스 안으로 들어왔어. 놈은 칸막이 너머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이중 잠금장치를 채웠어. 놈은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어. 얘기를 마저 하려는 것일까. 대화를 하려면 문을 열어두어야 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어. 호송중인 죄수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거든. 밖에서는 둘이만 있으니까 그럴 수 있었지만 안에서는 운전수가 있어서 문을 열어놓고 대화를 할 수 없었어. 나는 조금 미안하다는 뜻을 담아서 희미하게 웃어보였어. 놈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원래 앉았던 자리로 돌아가 앉았어. 귀신 얘기가 궁금하기는 했지만 직업적인 의무감이 호기심을 쉽게 눌러 버렸어. 그런데 놈이 자리로 돌아가서 앉는 것을 확인하고 나도 앞 유리를 향해 똑바로 돌아앉는 순간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어. 수갑. 수갑이 없어진 거야. 놈과 오줌을 싸러 버스 문을 열고 밖으로 내려서는 순간까지 우리는 수갑 하나를 나누어 차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놈도 나도 자유로운 몸이 되어 볼일을 보고 버스 안으로 돌아온 거야. 나는 등골이 오싹해서 놈을 돌아보았어. 놈은 태평하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비오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어. 나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어. 일단 놈이 안에 있는 것을 확인했으니 사고가 난 것은 아니므로 비상사태가 벌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납득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나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어. 나는 운전수에게도 묻지 못했어. 너무 황당한 일이고 그에게 내 업무 태만을 고백하는 것만 같아서 일단 입을 다물고 사태의 추이를 침착하게 돌아보기로 했어. 그 때 백미러에서 불빛을 쏘며 달려오는 트럭이 보였어. 버스의 펑크를 수리하러 온 차였어. 버스 후미에 다가온 차가 경적을 짧게 울리자 운전수는 이내 알아보고 문을 열고 나갔어. 작업을 도우려는 것 같았어. 운전수가 나가자마자 나는 죄수들이 있는 칸막이 문의 잠금장치를 풀었어. 무얼 어떻게 하겠다는 작정도 없었지만 놈에게 무언가를 물어야 할 것 같았어. 나는 놈에게 다가가서 다짜고짜 물었어. 어떻게 된 거야? 놈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어. 신랑, 신부는 그날 합방을 했어요. 당연한 일이지만. 놈은 내가 귀신 얘기의 결말을 듣고 싶어 한다고 여기는 것 같았어. 그 외에는 내가 문을 열고 들어올 이유가 없다는 확신에 찬 표정이었어. 마치 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놈은 귀신 얘기를 이어 갔어. 나는 좀 더 들어보기로 했어.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어. 수갑 사태는 확실히 놈이 꾸민 수작이고 나는 어처구니없이 당하고 만 것이니 일단은 놈의 정체를 좀 파악하고 싶었어. 펑크 수리는 얼마쯤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 동안이면 놈과 충분히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어. 신방에는 촛불을 켜 놓았어요. 짚으로 만든 신혼부부는 비단 이불을 덮고 나란히 누워 있었어요. 일렁거리는 촛불의 움직임이 창호지에 비춰 방안의 모습을 그림자로 알 수 있었어요. 그런데 방안에 누군가 있는 거예요. 신혼부부가 누워 있는 방안에 누군가 왔다 갔다 하며 움직이고 있는 거예요. 마을 어른 중 누군가 말했어요. 어이, 거기 방안에 누가 있어? 얼른 나오지 않고 뭐해? 신혼 부부 방에서 같이 동침이라도 할 셈인가, 얼른 나오게. 방에서는 대답이 없었어요. 앉았다가 일어서고 왔다 갔다 하는 움직임만 있는 거예요. 어른이 재차 소리쳤어요. 어이, 얼른 나와! 부정 탄다니까! 소리를 질러도 방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참다못한 어른이 달려가서 방문을 열고 소리 질렀어요. 뭐 하는 사람이야, 얼른 나오지 않고. 방문을 연 어른은 질겁하게 놀랐어요. 방안에는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짚으로 만든 신랑 신부만이 나란히 얌전하게 누워 있는 거였어요. 사람들은 놀라서 소리쳤어요. 귀신이다! 귀신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달아나기 시작했어요. 심지어 무당조차도 소리를 지르며 다 집어던지고 달아나 버렸어요. 나는 너무 무서웠어요. 신랑 신부가 신방을 차린 그 방은 사실 내 공부방이었거든요. 시골집에 방이 두 개 밖에 없어서 내 방이 임시 신혼 방이 된 거였어요. 나는 달아날 수도 없었어요. 무서워서 촛불이 일렁거리는 문을 뚫어져라 바라보고만 있었어요.”
민의 얼굴은 귀신을 본 어린아이의 표정이 되었다. 그는 얼굴 표정이 풍부하다. 잘 생긴 얼굴은 아니었지만 감정을 표현할 때의 그의 얼굴 근육은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현란함이 있다. 커다란 눈, 두툼한 입술이 그의 표정을 풍부하게 하는 요소였다. ‘야, 너 연극한 번 해봐라.’ 구는 가끔 그런 소리를 했다. 민은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 했다기보다 자신의 능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지 못했다. 우리가 그의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에 압도되어 정신을 놓고 있는 동안 민은 자기 이야기에 도취되어 우리를 놓아주지 않았다. 민은 마시던 캔 커피를 천천히 비우며 마무리를 했다.
“그 때 놈이 그러는 거예요. 근데 담당관님, 혹시 이거 잃어버리지 않으셨어요? 하면서 놈이 주먹을 내밀더라고. 주먹 쥔 손안에는 무언가가 쥐어 있는 것 같았어. 나는 무심코 손바닥을 내밀었어. 그 순간 수갑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놈이 주려는 것이 무언지 궁금했어. 놈은 주먹 쥔 손을 서서히 펴서 쥐고 있던 것을 내 손 위에 놓았어. 거기에는 하얗게 빛나는 이빨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어.”
나는 웃음이 나왔지만 구는 웃지 않았다.
“이빨 두 개? 그게 뭐야?”
민은 ‘그만 가지’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에 올라서 한참을 달린 후에야 농담의 의미를 깨달은 구는
“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구라고 어디까지가 진실이야?” 라고 물었다.
민은 다시 잠에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