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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덕천에 귀신이 산다는 소문을 처음 물어온 것은 민이었다. 그는 마을 이장에게서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귀신은 수원산에서 명덕천을 따라 나란히 달려 내려온 도로 옆 폐가에 산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소문을 믿지 않았다. ‘귀신이란 건 사람들이 만들어 낸 거다. 세상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태어나서 한 번도 귀신을 본 적이 없다 ’ 등등. 귀신을 두고 흔히 오가는 말들이 우리 사이에도 오갔다. 그런데 귀신이 산다는 소문을 물어 온 민의 전언에 얼마간 구체적인 내용이 있어서 우리의 호기심을 끌었다. 귀신은 너무 늙지도 젊지도 않은 중년의 여자고 생긴 모습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비가 오는 밤이면 나타난다는 것이다. 민의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각자 마음속에 귀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나는 긴 머리칼을 산발을 하고 빨갛게 충혈 된 눈으로 이쪽을 노려보는 중년 여자의 모습을 상상했다. 상상 하는 것만으로 기분이 오싹해지는 모습이었다.
“만약 진짜로 귀신이 산다면 그녀는 왜 거기에 있는 걸까?”
생각 속에서 만들어 낸 귀신의 모습을 지우려 애쓰며 내가 물어보았다.
“거기 살던 여자가 자살을 했다나봐. 자세한 내용은 이장도 모른데. 그 집에 살던 여자가 자살을 했고 그 이후로 귀신이 나타나기 시작했데.”
그게 귀신 출몰 소문의 전말이었다. 추정 컨데 오래 전 그 집에서 변고가 있었고 누군가 귀신 비슷한 것을 보았다. 그가 퍼트린 소문이 마을에 퍼져나갔다. 소문이 발생한 시점은 언제인지 모른다. 소문은 수원산 골짜기에서 아래를 향해 스멀스멀 내려오는 아침 안개처럼 마을에 퍼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귀신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지 몰랐다. 누군가 심심해서 지어 낸 이야기 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집은 귀신이 사는 집으로 명명되었다. 집은 소문의 후광을 입고 한적한 도로 옆에 오도카니 서 있었다. 우리는 소문의 증거를 확인하러 그 집을 보러 갈 필요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 집은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곳에서 뻔히 보이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그 곳에 자리를 잡을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명사장에게 발견되었다. 그것이 우리가 그 곳에 자리를 잡게 된 이유라면 이유였다. 양사장이 지나가는 우리를 불러 세운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길을 따라 무작정 가는 중이었다. 우리 중에 맏형인 구의 소유의 자동차는 낡고 병들어 있었다. 차는 천식을 앓는 노인네의 숨소리를 냈다. 가르릉 가르릉 가르릉.
“형, 차 좀 바꿔야 되지 않나?” 내가 물으면 구는
“아니, 더 탈 수 있어. 아직 멀쩡해.” 라고 말했다.
언덕을 오를 때면 가속기를 끝까지 밟아도 차는 가래 끓는 소리만 요란할 뿐 힘을 쓰지 못했다.
“운전이나 똑바로 해. 멀쩡한 차 타박하지 말고.” 구는 담담하게 말했다.
운전은 늘 내가 하는 편이었고 구는 조수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뒷좌석에 비스듬히 누운 민은 잠이 들어 있었다. 그는 늘 잠을 잤다. 잠을 너무 많이 자서 우리는 가끔 그의 존재를 잊어버리고는 했다.
“어디로 갈까?” 내가 말했다.
우리는 딱히 갈 곳이 없었다.
“아무데나 가지 뭐.” 구가 말했다.
어차피 행선지가 없는 주행이므로 운전은 편안했다. 시내를 벗어나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파트 빌딩숲이 끝나고 한참을 더 달리자 산과 나무가 많은 진짜 숲이 나타났다.
“여기 경치 좋다!”
나무가 울창한 산을 바라보던 구가 한 마디 했다.
잠에서 깬 민이 오줌이 마렵다고 했다.
“여기 어디야?”
“몰라.”
주차장이 넓은 편의점 앞에 차를 대고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구가 편의점에 가서 담배와 커피를 사 오는 동안 민과 나는 번갈아 화장실에 다녀왔다. 우리는 편의점 앞에 놓인 동그란 탁자에 둘러앉았다. 구가 사 온 캔 커피를 하나씩 마셨다.
“여기 포천이래.” 구가 말했다. “편의점 주인이 그러더라.”
“여기 포천이라고? 나, 포천 알아.” 민이 말했다.
“그래?”
“옛날에 와 본 적 있어.”
“언제?”
“옛날에 교도소에 있을 때 와 봤어.”
“교도소? 너 전과자야?”
“아니.”
“교도소에 있었다며?”
“간수!”
“간수? 아, 간수!”
“의정부에서 춘천으로 이송할 때 이쪽으로 지나갔어. 밤이라서 밖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운전사가 그랬어. 포천을 지나가고 있다고.”
민은 회상에 잠기는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가 긴 얘기를 늘어놓았다.
“이송하다가 한 번은 큰 일 날 뻔 한 적이 있어. 비가 오는 밤이었어. 그 날도 정기적인 이송을 하던 날이었어. 밖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깊은 산속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어. 비가 오는 밤이었는데 산골짜기 언덕을 오르다가 차가 서 버렸어. 낡은 타이어 때문인지 펑크가 나버리고 만 거야. 비스듬한 언덕길에 차를 세우고 수리차가 올 때까지 기다렸어. 죄수들 다섯 명이 타고 있었어. 호송차는 철망으로 칸막이가 되어 있어서 영화에서처럼 탈주를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나는 조수석에 타고 있었어. 뒤쪽에서 칸막이 두드리는 소리가 나 길래 돌아보니 죄수 하나가 나를 보고 웃고 있는 거야. 내가 물었어. 뭐야? 그랬더니 그 놈이 웃으면서 ‘오줌 마려 워요.’ 그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출발하기 전에 말했잖아. 충분히 비우라고. 그랬더니 그 놈이, 출발할 때 한 번 다녀왔는데 또 마려 워요, 이러는 거야. 못 참겠어? 네. 호송버스가 길에서 기다린 지도 꽤 시간이 흘러서 그럴 만도 했어. 사실은 나도 그 때 오줌이 마려웠던 참이거든. 나는 운전사에게 물었어. 다녀와도 될까? 운전수는 시큰둥하니 말했어. 글쎄. 네가 책임자니까 알아서 해. 나는 조금 망설였어. 쟤가 오줌 싸다가 도망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책임감이 투철한 간수는 아니었어. 하지만 일은 일이었어. 내 일은 죄수를 무사히 이송하는 것이었고. 책임이라기보다는 내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어. 내가 망설이며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자 그 놈이 말했어. 수갑 채우고 같이 가시면 되잖아요. 금방 끝낼게요. 나는 별일이야 있겠는가 싶었어. 이송 중 죄수를 밖에 나가게 하는 것은 규칙 위반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했어. 한 편으로 따져보면 죄수가 도망을 간다는 일이 죄수 입장에서도 간단한 일이 아니었어. 목숨 걸고 탈주를 할 만큼 절박한 일이 있어야 하지만 이송 중인 죄수들은 수감 생활이 평범한 모범수들이었어. 무엇보다 이 나라는 땅이 좁아서 도망쳐서 얻을 이득이 별로 없었어. 미국이나 중국처럼 땅이 넓으면 또 모를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나는 징계감이지만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들이 흔히 일어나는 건 아니니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 좋아. 가자. 나는 칸막이 문을 열고 놈에게 팔을 내밀라고 하고 한 쪽 팔에 수갑을 채웠어. 그리고 내 오른팔에 수갑 한 쪽을 채웠지. 사방이 어두워서 우리는 조심스럽게 차를 내려와야 했어. 발밑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서 자칫 넘어질 수도 있었어. 밖에는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어. 문에서 나와서 겨우 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서 놈은 일을 보았어. 나도 나란히 서서 일을 보았어. 놈은 과연 오래 참기라도 했는지 굵은 오줌발 뻗치며 한참을 싸더군. 감사합니다. 놈은 오줌을 싸면서 말했어. 빨리 싸기나 해. 먼저 일을 마친 내가 바지를 추스르며 말하자 놈은 네, 하고 작은 목소리로 받았어. 그런데 혹시 귀신 본 적 있어요? 뭐? 귀신? 아니. 본 적 없는데. 저는 본 적 있어요. 귀신을 봤다고? 네. 언제? 어릴 때요. 놈의 오줌발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어. 쓸데없는 소리인 줄 알았지만 나도 마침 심심하던 차여서 시답잖은 얘기에 가볍게 응대를 했어. 나는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어. 버스 안에서는 금연이라서 긴 시간 피우지 못하고 있었어.”
“민이, 너, 담배 피워?” 내가 물었다.
“그 때는 피웠어. 지금은 안 피우지만.”
우리 중에서는 구만이 담배를 피웠다. 구는 캔 커피를 단숨에 비우고 담배를 피워 물고 있었다.
“계속해봐.”
구는 빈 깡통에 담배 재를 조심스럽게 털어 넣으며 재촉했다. 우리는 가야할 곳이 없었고 시간은 무한정 남아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