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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수현 Jul 27. 2022

2-3. #계약 #쌍무계약 #매매계약



1. #계약


        A는 2022. 1. 1. B로부터 X 아파트를 10억 원에 샀습니다. 우리가 이 거래에 붙일 네 번째 이름표는 #계약입니다. 계약은 쉽게 말해, 법적 효력을 가진 약속입니다. 평소에도 자주 사용하는 단어라 그다지 낯설지 않습니다. 부동산을 거래하며 맺는 계약, 알바를 시작하며 맺는 계약, 월세방을 구하면서 맺는 계약 등 예는 많습니다.



[그림 2-6]



        교과서에서는 계약(契約)을 ‘청약과 승낙이 일치하여 성립하는 법률행위’라고 적습니다. [그림 2-6]을 봅시다. 계약은 기본적으로 의사표시입니다. 매수인 A는 아파트를 조금이라도 싸게 사기 위해 의사표시를 내보고, 매도인 B는 조금이라도 비싸게 팔기 위해 의사표시를 내죠. 하지만 서로 의사표시만 던지는 단계에서는 아직 계약이 아닙니다. 계약은 청약의 의사표시와 승낙의 의사표시가 일치해야만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례에서는 다행히 10억 원에서 의사표시 합치가 이루어진 것 같군요. 둘이 합의에 도달하였으므로 말풍선은 하나면 족합니다. 말풍선 안에는 서로 합의를 본 내용, 즉 계약의 내용(혹은 '계약의 목적'이라고도 합니다)을 적습니다.       


        앞서 의사표시나, 법률행위, 채권 관계에 문제가 발생하면 당사자는 무언가를 주장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계약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약에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는 해제라는 걸 주장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B가 중도금 5억 원까지만 받고서 A에게 X아파트 소유권 이전을 해주었다고 해봅시다. A가 하도 부탁을 하길래 마음 착한 B가 그렇게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A가 약속한 잔금 날짜가 지나도 계속 돈을 안 주고 있습니다. B는 초조한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아파트는 이미 넘겨주었는데 이대로 잔금을 받지 못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때 B는 A에게 잔금을 달라고 요구를 하다가, 그래도 A가 돈을 주지 않는다면 계약을 해제(解除)할 수 있습니다. 계약이 해제되면 B는 A에게 받은 돈을, A는 B에게 아파트를 돌려주어야 합니다.



제544조 (이행지체와 해제) 당사자 일방이 그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상대방은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그 이행을 최고하고 그 기간내에 이행하지 아니한 때에는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

제548조(해제의 효과, 원상회복의무) ① 당사자 일방이 계약을 해제한 때에는 각 당사자는 그 상대방에 대하여 원상회복의 의무가 있다. 그러나 제삼자의 권리를 해하지 못한다. …



        한편 B는 계약 위반을 이유로 A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본래 약속은 A가 2022. 3. 1. B에게 잔금 5억 원을 주면서 X 아파트를 가져가는 것이었다고 해봅시다. B는 돈을 주지 않는 A에게 5억 원은 물론, 손해배상 명목으로 3. 1. 이후부터 발생한 지연이자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계약 내용을 위반하면 상대방은 계약을 해제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둘 다 가능한 이유는 모든 계약은 본질상 약정채권이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해제는 #계약에서의 논의이고, 손해배상은 #채권에서의 논의입니다.* 하지만 계약 곧 약정채권이기 때문에 계약 위반은 해제도, 제390조 손해배상청구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제3장에서 더 살펴봅시다.



(* 조문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채권은 민법 제373조부터 제526조까지 규정되어 있고, 계약은 민법 제527조부터 제733조까지 규정되어 있습니다.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는? 채권 규정 숲 한복판인 제390조에 딱 하니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반면 해제는 제543조부터 제553조까지 규정되어 있습니다.)






계약의 종류


        공부하는 사람에게 유형 나누기는 숙명과도 같습니다. 학자들이 유형 나누기를 너무 좋아하는 탓입니다. 계약도 여러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몇 가지만 간단히 살펴봅시다. 계약을 유형화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계약의 성질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형계약 여부에 따라 분류하는 겁니다.



1) 계약의 성질에 따른 분류


        어떤 계약은 상대에게 대가를 요구하고, 어떤 계약은 대가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전자를 유상계약, 후자를 무상계약이라고 합니다. 유상계약(有償)은 한자 뜻 그대로 대가를 요구하는 계약입니다. 매매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A는 2022. 1. 1. B로부터 X 아파트를 10억 원에 샀습니다. 이 부동산 거래는 유상계약입니다. A는 B에게 X 아파트라는 대가를 요구하고, B는 A에게 10억 원이라는 대가(대금)을 요구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반면 상대에게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계약은 무상계약(無償)이라고 합니다. 증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증여자는 상대에게 대가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어떤 계약은 당사자 쌍방이 서로 의무를 부담하고, 어떤 계약은 당사자 한쪽만 의무를 부담합니다. 전자를 쌍무계약, 후자를 편무계약이라고 합니다. 쌍무계약(雙務)은 한자 뜻 그대로 서로가 서로에게 의무를 지는 계약입니다. 매매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A가 2022. 1. 1. B로부터 X 아파트를 10억 원에 샀다고 해봅시다. A는 B에게 10억 원을 지급할 의무를 부담하고, B는 A에게 X 아파트를 건네줄 의무를 부담하므로 서로가 서로에게 의무를 부담하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이 거래는 쌍무계약입니다. 반면 편무계약(片務)은 계약 당사자 중 한쪽만 의무를 부담하는 계약입니다. 증여가 대표적인 예이고, 무이자 소비대차도 편무계약에 해당합니다.

 

        사실 계약을 성질에 따라 분류하는 방법은 이외에도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낙성계약과 요물계약으로도 나눌 수 있습니다. 전자는 당사자의 합의만으로 성립하는 계약을, 후자는 합의 외에 별도 행위를 요하는 계약을 말합니다.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 계약을 분류하는 다양한 기준을 수집하는 건 낭비입니다. 유상계약과 쌍무계약에 대해서만 정확히 이해하고 넘어갑시다. 특히 쌍무계약이 중요합니다. 쌍무계약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제4장에서 합니다.




   

2) 전형계약과 비전형계약


        계약을 전형계약 여부에 따라 분류할 수도 있습니다. 전형계약이란 민법에 규정된 열다섯 가지 계약을 말합니다. 우리가 평소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계약이라서 "전형"계약입니다. 반면 민법에 규정되지 않은 계약은 비전형계약이라고 합니다. 민법이 정하고 있는 전형계약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증여, ② 매매, ③ 교환, ④ 소비대차, ⑤ 사용대차, ⑥ 임대차, ⑦ 고용, ⑧ 도급, ⑨ 여행계약, ⑩ 현상광고, ⑪ 위임, ⑫ 임치, ⑬ 조합, ⑭ 종신정기금, ⑮ 화해, 이렇게 열다섯입니다. 여기서 매매, 임대차, 소비대차, 도급에 대해 간단히 더 알아봅시다. 위 네 계약은 앞으로도 이 책에서 종종 등장할 것입니다.



(1) 매매


제563조(매매의 의의) 매매는 당사자 일방이 재산권을 상대방에게 이전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그 대금을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


        매매란 당사자 중 어느 한쪽은 재산권을, 다른 한쪽은 그 대가로 대금 지급을 약정하는 계약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본 A와 B의 아파트 거래가 매매입니다. B는 A에게 X 아파트의 소유권이라는 재산권을 이전하기로 약정하였고, A는 B에게 그 대가로 10억 원을 주기로 약정하였기 때문입니다.  




(2) 임대차


제618조(임대차의 의의) 임대차는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게 목적물을 사용, 수익하게 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이에 대하여 차임을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


        임대차란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게 목적물을 사용, 수익하게 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이에 대하여 차임을 지급할 것을 약정하는 계약입니다. 쉽게 말해 무언가를 빌리고 그에 대해 대가(차임)을 지급하는 계약이 임대차입니다. 예를 들어 월세방을 구하는 겁니다.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월세방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고,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매달 월세(차임)을 지급합니다.    




(3) 소비대차


제598조(소비대차의 의의) 소비대차는 당사자 일방이 금전 기타 대체물의 소유권을 상대방에게 이전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은 그와 같은 종류, 품질 및 수량으로 반환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


        소비대차란 당사자 일방이 금전 등 대체물을 상대방에게 주고, 상대방은 훗날 이를 반환하기로 약정하는 계약입니다. 임대차와 소비대차 모두 무언가를 빌리는 계약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임대차는 월세방처럼 특정된 목적물이고, 소비대차는 "금전 기타 대체물"이죠. 쉽게 말해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고 갚는 계약이 소비대차입니다. 참고로 제598조에는 '이자'의 지급이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차임' 지급이 명시적으로 등장한 임대차 조문과는 대조적입니다.    





(4) 도급


제664조(도급의 의의) 도급은 당사자 일방이 어느 일을 완성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그 일의 결과에 대하여 보수를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


        도급은 당사자 중 한쪽은 어느 일을 완성하기로 약속하고, 다른 한쪽은 그 일의 결과에 대해 보수를 지급하기로 약속하는 계약입니다. 건축 의뢰나, 디자인 제작을 맡기는 경우를 떠올리면 됩니다. 매매와 다르게 도급에서는 일을 시키는 사람의 지시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사는 게 아니라, 일을 새롭게 완성시키는 게 계약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2. #쌍무계약


        A는 2021. 1. 1. B로부터 X 아파트를 10억 원에 샀습니다. A는 B에게 아파트를 내놓으라고 요구할 수 있으므로 채권자입니다. B는 자연스레 A의 채무자가 되겠군요. 그러나 이 사건에서 A만이 채권자일까요? 이번에는 아파트가 아닌 돈의 흐름에 주목해봅시다. A는 X 아파트를 B로부터 건네받는 대가로 10억 원을 주어야 합니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B가 A에게 10억 원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B 역시 채권자입니다. 이번에는 오히려 A가 B의 채무자로 되겠군요.



[그림 2-7]



        이처럼 계약 당사자 일방이 채권자이면서 동시에 채무자가 되는 계약을 쌍무계약이라고 합니다. 쌍무(雙務)라는 한자어 뜻 그대로 '서로가 서로에게 의무를 지는 계약'이지요. 쌍무계약에서는 공평의 원칙이 지켜지는 게 특히 중요합니다. 서로가 의무를 부담하고 있으므로, 자기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만 이행을 요구하는 건 타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제4장에서 보도록 하고 여기서는 간단한 예를 하나만 보겠습니다.

  

        쌍무계약에서는 특별하게 정해진 것이 없으면 채무의 이행을 서로 동시에 해야 합니다. 그것이 일반적으로 공평하기 때문입니다. A와 B의 매매 계약을 봅시다. 특별하게 정해진 것이 없다면 A는 B에게 10억 원을 먼저 주고 싶어 하지 않을 겁니다.  B 역시 돈을 받기 전에 A에게 소유권 이전을 해주고 싶지 않을 겁니다. 내가 준 것만 받고 상대방이 도망치는 것은 아닌지 도통 믿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536조 (동시이행의 항변권) ① 쌍무계약의 당사자 일방은 상대방이 그 채무이행을 변제할 때까지 자기의 채무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의 채무가 변제기에 있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



        민법 제536조에 따라 특별히 정해진 것이 없으면 쌍무계약에서 당사자 일방은 상대방이 채무이행을 제공할 때까지 자기의 채무이행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A는 B가 X 아파트의 소유권을 넘겨줄 때까지, B는 A가 10억 원을 줄 때까지 채무를 이행하지 않고 버틸 수 있습니다. 이러한 권리를 동시이행의 항변권이라고 합니다. 동시이행의 항변은 아무 계약에서나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무를 지는 계약, 즉 #쌍무계약에서만 가능합니다.







3. #매매계약


[그림 2-8]



        매매(賣買)란 당사자 일방은 재산권 이전을 약속하고, 상대방은 그 대가로 대금 지급을 약속하는 계약입니다. 특별히 어려운 개념도 아니고, 이미 평상시에도 자주 사용하는 용어이니 단어 자체에 대한 설명은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대신 여기서는 매매가 전형계약으로서 갖는 의미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봅시다.   





1) 계약총칙과 계약각칙, 그리고 판덱텐체계


        전형계약은 서로 다른 모습만큼이나 공통적인 모습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계약의 성립과 해제는 어느 계약에서나 비슷합니다. 민법은 이러한 공통점을 묶어서 계약법 맨 앞에 두었습니다. 규정을 피하기 위함입니다. (만약 각 전형계약마다 공통 내용 일일이 규정했다면 민법전은 지금보다 훨씬 더 두꺼웠을 겁니다.) 이 공통 요소를 계약총칙이라고 합니다(제527조 ~ 제553조). 각 전형계약의 고유 내용은 그 뒤를 이어 규정되어 있는데, 이 계약각칙이라고 합니다.


        공통 내용을 총칙으로 묶고 각칙을 따로 두는 구성을 판덱텐체계라고 합니다. 앞으로 법 공부를 더 하고자 한다면 이 판덱텐체계(Pandekten)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민법전 전체가 판덱텐체계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민법전은 총 5편(총칙, 물권, 채권, 친족, 상속)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서도 공통 내용은 총칙으로 뽑아 맨 앞에 규정한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앞서 본 계약총칙과 계약각칙도 이런 원칙에 따라 규정된 셈입니다.   


        판덱텐체계는 장단점이 매우 뚜렷한 시스템입니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이며, 무엇보다 동일한 내용을 반복하여 규정할 필요가 없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하지만 단점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총칙 내용이 너무 추상적이고,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법전을 왔다 갔다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학자에게 판덱텐체계는 오히려 장애물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진입장벽이 높을수록 도달했을 때의 성취감이 더 큰 법이죠. 멀리 가고자 하는 독자라면 판덱텐체계에 익숙해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시다.





2) "약정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


        어느 전형계약이든 첫 번째 조문은 모두 정의 규정으로 시작합니다. 매매란 무엇인가, 임대차란 무엇인가, 소비대차란 무엇인가 등 단어 정의부터 하는 겁니다. 우리는 앞서 그러한 예를 넷 보았습니다(매매, 임대차, 소비대차, 도급). 앞에서는 각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서만 설명하였는데, 이번에는 문장 자체에 주목을 해봅시다.  



제563조(매매의 의의) 매매는 당사자 일방이 재산권을 상대방에게 이전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그 대금을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

제618조(임대차의 의의) 임대차는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게 목적물을 사용, 수익하게 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이에 대하여 차임을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

제598조(소비대차의 의의) 소비대차는 당사자 일방이 금전 기타 대체물의 소유권을 상대방에게 이전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은 그와 같은 종류, 품질 및 수량으로 반환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

제664조(도급의 의의) 도급은 당사자 일방이 어느 일을 완성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그 일의 결과에 대하여 보수를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



        모든 정의 규정이 동일한 문장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같이 "...약정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라고 적고 있죠. 찬찬히 음미해봅시다. 매매는 재산권을 이전하고, 상대방은 그 대금을 지급하는 게 아닙니다. 재산권 이전을 "약정"하고, 상대방은 그 대금 지급을 "약정"하는 겁니다. 임대차는 목적물을 사용, 수익하고, 상대방은 이에 대해 차임을 지급하는 게 아닙니다. 목적물의 사용, 수익을 "약정"하고, 상대방은 이에 대해 차임 지급을 "약정"하는 겁니다. 소비대차도, 도급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계약의 본질은 약정입니다. 그래서 굳이 "약정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라고 적었습니다. 계약은 약속으로 성립하고, 그로써 효력이 생깁니다.


        계약이 약속이란 사실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이렇게 단까지 나누어가며 설명한 것일까요? 약속과 처분을 구분하기 위함입니다. 약속과 처분은 다릅니다. 민법에서는 이 둘을 구분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제5장에서 다룰 것이니 지금은 앞으로의 논의를 위해 필요한 정도만 간단히 알아봅시다. 법적으로 볼 때 매매는 약속만 한 단계입니다. 약속은 말에 불과합니다. 신은 말로써 세상을 창조하였으나 인간의 말에는 그만한 권능이 없습니다. 약속이 실제 이행까지 나아가야만 처분이 됩니다.  


        처분 방법은 처분의 대상에 따라 다릅니다. 그중 아파트의 소유권을 처분하는 경우에는 소유권이전등기라는 공시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제186조). 즉 B가 X 아파트에 대해 소유권이전 등기까지 해주어야만 A는 아파트의 소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매매 계약만 맺은 단계에서는 A는 아직 소유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평소에 “A가 (언제) B로부터 (무엇)을 (얼마)에 매수했다”라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여기서 '매수했다'라 함은, 물건을 사서 소유권까지 취득한 의미를 대부분 내포하죠.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매수(매매)는 약속에 불과한 행위입니다. 아직 처분까지는 아닙니다. 따라서 만약 아파트를 매수를 하여 소유권까지 취득한 상황을 표현하고 싶다면 '... 매수했고, (언제) 소유권이전등기까지 마쳤다.'라고 적어야 합니다. 앞으로 이 책뿐만 아니라 법학 서적을 읽을 때 '매수했다'라고만 쓰여있으면 약속만 맺은 상태임을 늘 염두에 두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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