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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수현 Jul 27. 2022

2-2. #의사표시 #법률행위 #채권채무



1. #의사표시


        A는 2022. 1. 1. B로부터 X 아파트를 10억 원에 매수하였습니다. 앞서 A와 B의 이 거래는 의사표시의 합치이자, 법률행위이자, 채권·채무관계이자, 계약이자, 쌍무계약이자, 매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씩 살펴봅시다. 가장 먼저 살펴볼 것은 #의사표시입니다. 부동산 거래 현장은 언제나 시끌벅적합니다. 아파트의 가격은 얼마인지, 더 싸게 팔 수는 없는지, 내부 수리를 요하지는 않는지, 주변 환경은 어떠한지 등 수많은 의사표시가 오고 가죠.



[그림 2-2]



        만화책에서는 의사표시를 말풍선으로 그려 표현합니다. 등장인물이 내뱉은 말을 말풍선 안에 적어 그가 말하는 내용을 적는 식입니다. 그런데 민법의 의사표시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말풍선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민법에서는 입 밖으로 내뱉은 표시(表示)만큼이나 그러한 표시를 하게 된 '마음속 생각'(意思)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마음속 생각을 어려운 표현으로 효과의사라고 합니다. 법률효과에 대한 의욕이라서 효과의사입니다.  



  ① A: 나는 지금 X 아파트를 매수한다. 왜냐하면 B에게 10억 원의 채무를 지고 대신에 X 아파트의 소유권을 B로부터 취득할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② A: 나는 지금 X 아파트를 매수한다. 왜냐하면 X 아파트의 가격이 오를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매수를 앞둔 A의 머릿속에는 실제 온갖 생각이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효과의사는 법률효과에 대한 의욕만을 가리킵니다. ①은 전형적인 효과의사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효과의사는 A와 B가 계약서에 서명한 후에는 누구에게나 객관적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이후엔 누구라도 다음과 같이 A의 계약 당시 효과의사를 읽어낼 수 있겠죠. ‘음, A가 B에게 10억 원을 줄 채무가 있고 대신 B로부터 X 아파트를 이전받을 권리가 있겠군!’  


        그러나 ②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효과의사라 하지 않습니다. 설령 A의 머릿속에 저러한 의욕이 있었더라도, 더 나아가 그러한 생각이 X 아파트 매수의 가장 주된 원인이더라도 민법에서 말하는 효과의사는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시세 상승에 대한 기대는 어떤 법적 효과에 대한 의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경제적(?) 효과에 대한 의욕이라 하면 될까요.


        A와 B의 매매계약이 의사표시의 합치라는 사실을 우리는 왜 알아야 할까요? 그 이유는 의사표시에 하자가 있으면 이를 다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표의자는 하자 있는 의사표시에 대해 무효나 취소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제107조~제110조). 예를 들어 A가 주변의 유명한 조폭인데 B에게 아파트를 팔지 않으면 그의 가족을 해치겠다고 겁을 주었다고 해봅시다. 이에 겁을 먹은 B가 강압에 못 이겨 계약서에 서명을 해줍니다. 이 경우 B의 의사표시('좋습니다. 계약서에 도장 찍읍시다.')에는 하자가 있습니다. 그의 온전한 자유로 효과의사를 구성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때 B는 자신의 의사표시를 취소하여서 계약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제110조 (사기,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 ① 사기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 ...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는 것은 하나의 예입니다. 제110조에 따라 사기에 의한 의사표시도 취소할 수 있습니다. 한편 제107조는 진의로 하지 않은 의사표시에 대해, 제108조는 통정 허위의 의사표시에 대해, 제109조는 착오로 인한 의사표시에 대해 무효 또는 취소를 주장할 수 있음을 규정해두었습니다.







2. #법률행위


[그림 2-3]



        법률행위란 효과의사를 가지고 한 어떤 행위입니다. 법률행위는 법률효과를 발생시킵니다. [그림 2-3]을 봅시다. 비유컨대 마음속의 효과의사가 뿌리라면, 법률효과는 꽃입니다. 뿌리에 꽃의 형상이 잠재되어 있듯이 마음속 효과의사에는 이후 발현될 법률효과에 대한 형상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이후 의욕한 대로 실제 행위를 하면 법률효과라는 꽃이 핍니다.


        법률효과가 효과의사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법률행위에는 구속력이 있습니다. ‘네가 원해서 한 것 아니냐’라고 당당하게 따질 수 있는 것이죠.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나중에 함부로 무를 수 없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누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게 마땅합니다. 그래서 사적자치의 원칙은 자유만큼이나 책임입니다. 법률행위로 법률효과가 발생하고 나면 행위자는 그 효과가 좋든 싫든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법률행위에 구속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자 있는 의사표시에 대해 무효나 취소를 주장할 수 있었던 것처럼, 하자 있는 법률행위에 대해서도 무효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제103조, 제104조). 예를 들어 A와 B의 거래가 이중매매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해봅시다. 사실 B는 이미 한 달 전에 X 아파트를 D에게 8억 원에 팔기로 약속을 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X 아파트가 너무나 탐났던 A가 이 사실을 알고 B에게 접근합니다. 그리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 X 아파트를 자신에게 팔라고 이야기합니다. B는 탐탁지 않았으나 A가 너무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데다가, 무려 2억 원이나 웃돈을 얹어준다는 말에 넘어가 결국 계약을 맺습니다.

  


제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



        위와 같은 상황을 민법에선 이중매매라 합니다. 일반적으로 이중매매는 불법도 아니며, 반사회적 행위도 아닙니다. 그냥 약속을 어긴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만약 실제 B가 A에게 X 아파트를 넘겨준다면 B는 더 이상 D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될 뿐입니다. 하지만 이중매매가 반사회적 행위로 인정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위 예시처럼 후발주자로 등장한 A가 B의 배임 행위에 적극 가담한 경우에는 이중매매를 반사회적 법률행위로 봅니다 [93다 55289]. 이중매매가 일반적으로는 용인될 수 있으나 사안에 따라 너무 심한 경우에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한다는 것이죠(제103조). 제103조에 반하는 법률행위는 무효이므로 D는 A와 B 사이의 법률행위가 무효임을 주장하여 X 아파트를 다시 B 앞으로 돌려놓을 수 있습니다.






 

3. #채권채무


        채권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시킬 수 있는 권리입니다. A는 2022. 1. 1. B로부터 X 아파트를 매수했습니다. 따라서 매수인 A는 B로 하여금 X 아파트를 건네도록 시킬 권리가 있습니다. 이처럼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시킬 수 있는 권리를 채권이라고 합니다. 이때 채권을 가진 사람을 뒤에 사람 자(者) 자를 붙여 "채권자"라고 부릅니다.


        채무는 채권의 반대 개념입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해주어야 하는 의무를 채무라고 합니다. 채권과 채무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A가 B에 대해 어떤 채권을 가진다면 B는 A에 대해 채무를 집니다. 그러니까 위 사안에서 X 아파트 소유권 이전에 관하여 A가 B에 대해 채권자라면, 자동적으로 B는 A에 대해 채무자가 됩니다.


  

[그림 2-4]


 

        [그림 2-4]를 봅시다. A가 B에게 손을 뻗고 있습니다. 손을 뻗어 무언가를 달라고 할 수 있는 권리, 손을 뻗어 상대에게 무언가를 시킬 수 있는 권리가 채권입니다. 이때 약속의 내용이 되는 둘 사이의 말풍선도 그림의 일부분이 됩니다. 왜냐하면 A가 아무렇게나 B에게 이것저것 시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풍선을 어려운 표현으로 채권의 목적 또는 채권의 내용이라고도 합니다. 채권자에게 채권의 내용은 권리의 근거이면서 동시에 한계입니다. 채권자는 채권의 내용이 정하고 있는 만큼, 그리고 딱 그만큼만 상대방에게 요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채무자에게 채권의 내용은 곧 채무의 내용입니다. 채무자는 채무 내용에 따라야만 채무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채권관계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채무불이행이라고 합니다. 이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바로 다음 장에서 자세하게 다룰 것입니다. 여기서는 간략하게만 알아보겠습니다. 채무불이행이란 쉽게 말해 약속을 어기는 것입니다. A는 B로부터 그의 X 아파트를 10억 원에 사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A와 B는 아파트 매매에 대해 약속을 맺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B가 A에게 아파트를 넘겨주기 일주일 전에 C라는 새로운 사람이 B에게 접근합니다. C는 B에게 12억 원을 줄 테니 X 아파트를 자기에게 팔라고 제안합니다. (C는 B가 A와 계약을 맺은 상태였는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B는 C의 제안을 받아들여 계약을 맺고 X 아파트의 소유권을 C에게 넘겨주고 맙니다. 이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A는 B에게 다음과 같이 소리칩니다. “당신 나한테 아파트 팔기로 해놓고 약속 어겼어! 손해배상해!”   



제390조 (채무불이행과 손해배상) 채무자가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아니한 때에는 채권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자의 고의나 과실없이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채무자가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아니하면, 그러니까 채무자가 약속을 어기면 채권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선 채무자가 약속을 어긴 데에 고의 또는 과실이 있어야 하는데(제390조 단서) 위 사례에서 B는 모든 상황을 다 알면서도 C에게 아파트를 넘겨주었으므로 고의도 인정됩니다. 따라서 A는 B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 이 사안도 이중매매입니다. 그러나 반사회적 법률행위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제2매수인이 매도인의 배임 행위에 적극 가담한 정황이 있어야지만 민법 제103조 위반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중매매 사실만으로 반사회적 법률행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4. 보론: 채권 더 알아보기


1) 채권(債權) v. 채권(債券)


        채권(債權)과 채권(債券)은 다른 개념입니다. 둘 다 자주 쓰는 단어라서 종종 헷갈립니다. 채권(權)은 앞서 배웠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시킬 수 있는 권리가 채권입니다. "권리"라서 권리 권(權) 자를 씁니다.


        그런데 권리 권 자 말고 문서 권(券) 자를 사용하는 채권이 있습니다. 채권(券)은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되는 차용증서’를 일컫습니다. 쉽게 말해 돈을 빌려주고 그 사실에 대한 증서로 받는 문서를 채권(券)이라고 합니다. 다만 돈을 빌려주는 모든 경우에 대해 채권(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①국가나 공공기관, 회사처럼 규모가 있는 기관에서 ②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발행하고, ③투자자가 수익률 등을 고려하여 돈을 빌려주는 경우에 발행하는 증서를 채권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채권을 추심한다”라고 말할 때에는 권리 권 자를 쓰는 채권(權)을 의미하고, ‘회사채’, ‘국채’ 같은 말을 할 때에는 문서 권 자를 사용하는 채권(券)의 의미입니다. 앞으로 이 책에서는 유가증권으로서의 채권이 다시 등장하지 않습니다. 별다른 말이 없다면 권리로서의 채권(債權)을 전제하고 읽어 나갑시다.





2) 약정채권 v. 법정채권


        채권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약정채권과 법정채권이 그 둘입니다. 약정채권은 말 그대로 약정에 의해 발생한 채권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우리 사례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A가 채권자인 이유는 A가 2022. 1. 1. B로부터 X 아파트를 샀기 때문입니다. 부동산 매매라는 약정에 의해 채권이 발생한 것이죠.


        반면 법정채권은 법에 정한 요건을 갖추었을 때 발생하는 채권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봅시다. C는 2023. 1. 1. D의 운전 과실로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당시 C는 초록색 보행자 신호에 맞추어 횡단보도를 걷고 있었는데 D가 전방주시를 소홀히 하여 C를 친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C는 치료비 500만 원이 들었고 입원해 있는 2주 동안 일도 못했습니다.



  제750조 (불법행위의 내용)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이러한 교통사고를 민법에서는 불법행위라고 합니다. 누군가 고의 또는 과실로 위법한 행위를 하고 이로써 손해가 발생하면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습니다. 따라서 D는 C에게 치료비, 일실손해 등을 배상할 책임이 있습니다. 반대로 C 입장에서는 D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 즉 채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채권은 약정에 근거하고 있지 않습니다. 법이 그렇게 정했기 때문에("法定") C는 D에 대해 채권자입니다.  



[그림 2-5]

 


        [그림 2-5]를 봅시다. 앞서 본 #채권 그림과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상대방을 향해 뻗어 있는 손은 비슷하나 손을 내미는 명분이 다릅니다. 이번에는 권리의 명분이 약정이 아니라 사건입니다. 하지만 두 그림 모두 채권임은 확실합니다. 채권의 본질은 '누군가 다른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시킬 수 있는 권리', 즉 뻗은 손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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