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나서는 길, 강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평소 스멀스멀 올라오는 습기로 인해 땀방울이 맺히는 새벽, 유난히 강한 바람이 참 반갑습니다. 시원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동시에 ‘풍요가 고통이 된다’고 말하는 배우 문숙의 한 문장이 새벽길에 떠오릅니다.
새벽설교를 마치고 오전에 차곡차곡할 일을 점검하며 지냈습니다. 오후에는 한인교회 부목사님을 만나서 긴 시간 여름 캠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타국에서 진행하는 캠프 준비라 그런지 ‘연합’이라는 단어가 참 사람을 설레게 합니다. 학생들을 자식처럼 아끼고 섬기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후 다른 만남 가운데도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자리에 있어서 그런지 말을 많이 한 날에는 어김없이 속이 더부룩합니다. 적당히 말해도 될 것을, 적당히 만나도 될 것을 왜 욕심부렸지? 소화가 덜 된 말들 때문에 속이 아팠습니다. 이제부터 사람도 말도 해독하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위에 크기가 10인데 15를 채우면서 살고 싶진 않습니다. 새로운 사람이 내게 말을 건넬 때, 틈이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부족해서 아픈 게 아니라 과해서 아프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지혜가 있기를 두 손 모아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관계 안에서 ‘행간’을 참 잘 읽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단어보다는 ‘쉼표’를 눈여겨 읽는 분이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말보다는 ‘표정’을 읽으시려고 노력을 많이 하셨겠지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마음이 참 쾌청합니다. 사람들은 고통이 ‘침묵’으로 표현될 때가 많기에 대화 가운데 말하지 않는 것을 들을 수 있는 지혜가 목회 가운데 있기를 바라는 하루입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왕상 3:9).
#언젠가딸이볼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