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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춘 Feb 19. 2022

내가 처음 해보는 일

  어렸을 적 부모님은 자영업을 꽤나 오래 하셨다. 두 분이 함께 양복점을 하셨는데 아버지는 옷을 만드는 일을, 어머니는 아버지의 재단일을 돕는 보조 역할을 하셨다. 너무 어린 시절이라 우리 집 양복점이 장사가 잘 되고 있는지는 가늠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꽤 오래 운영하셨으니 어느 정도 밥벌이는 되신 듯하다.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 늘 할머니 할아버지와 꽤나 오랜 시간을 보냈다. 


  본격적으로 내가 부모님의 일, 곧 아버지의 일 때문에 특권을 누린 것은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다. 중학교 시절 학교에서 교복 바지를 줄이는 문화가 있었는데 다른 친구들은 학교 앞 수선집에 바지를 맡기면 며칠이 걸렸지만 나는 아버지께 바지를 드리면 다음날 바로 수선된 바지를 입을 수 있었다. 그 며칠 동안 입을 바지가 없어서 교복 바지를 줄이느냐 마느냐 고민하는 것은 나에게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덕분에 선도부의 교복 바지 검사가 두렵지 않았다는 것도 특혜라면 특혜였을까. 


  그런 시절을 지나 어엿한 성인이 되고 나의 진로를 찾아 열심히 전진할 때 나는 자영업이라는 전선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어릴 적 야구선수가 꿈이었고 20대 중반에는 신학을 하고 나서는 목사가 되는 과정을 지나왔으며 지금은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 헤아려 볼 수 있는.. 자영업이라는 넓은 시장에 어색한 발을 담그고 있다. 내가 이런 일을 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현재 나는 작은 독립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부터 이 일을 준비할 때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워낙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책 속에서 발견한 문장들을 찾는 재미가 내 삶의 큰 활력이 되었다. 신학을 전공하고 교회에서 목회 일을 할 때도 작은 나의 마음 단칸방에는 기독교 서점을 운영해보는 것을 희망했을 정도로 나는 서점을 사랑했다. 그렇게 작은 바람으로만 품고 있던 것을 현실로 이루었을 때 시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유지'한다는 것은 내 맘처럼 잘 되지 않았다. 한 가정을 이루고 생계를 이어가는 가장이 되었으니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 어떻게 부모님의 마음을 모를 수 있겠는가? 역시 사람의 공감 능력은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발생할 수 없나 보다. 


  나는 많은 일을 해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것이 성공이냐 실패의 문제를 넘어 무슨 일이든 그 일 가운데 의미를 발견하고 가치를 찾으려고 한다. 그래서 돈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한다는 정신은 나에게 큰 도전을 주지 못한다. 물론 자본주의 시대에는 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나는 언제나  그 일을 통해 '사람을 살릴 수 있는가'를 가늠해본다. 그러면 무슨 일이든 내가 그 전공이 아닐지라도 환경만 만들어진다면 도전해서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서점도 그렇게 시작했다. 당시 교회 안에서도 더 안정적이고 편안한 길로 나아갈 수 있는 환경임에도 단지 그들만의 리그가 내 철학과 너무 맞지 않아 현실적으로 고민이 많았다. 만약 가정이 없었다면 더 빨리 세상에 나와 낯선 사람들과 만나는 일을 선택했겠지만 앞서 말했듯 가장의 무게 때문에 교회를 나오는 발걸음도 무거웠다. 하지만 '사람을 살리는 일' 그것을 해야 한다는 신념이 서점을 할 수 있는 가장 큰 동력이 되었다. 


 처음 해 보는 낯선 일. 그것도 자영업을 시작할 때는 프랜차이즈가 아닌 이상 대표가 세세하게 신경 쓰고 간판까지 생각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지만 이런 일을 통해 조금이라도 인생을 배울 수 있다면 삶이 기쁘지 않겠는가? 부가세 신고, 식품 교육 이수, 등등 내가 마주했던 환경과 너무 다른 시스템이라 당황할 때도 있었지만 점점 소상공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위치가 조율이 되어가니 너무 행복했다. 


  "사람은 돈을 벌 때 행복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때 행복한 거구나.."


  한적한 골목길에서 작은 독립서점을 운영한다는 것. 속으로 '오늘 손님이 한 명도 안 오면 어떻게 하지?' 하는 고민을 매 순간 하는 일은 아직도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막연하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이 낯선 일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어떻게든 생계를 이어가야 하니 여러 다른 일을 병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딴짓'들이  '꾸준하지 않다'와 동일시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라면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뭐든 도전하는 것뿐이다. 


내가 처음 해보는 일, 낯설지만 꾸준하게.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 처음 해보는 수많은 일들과 마주하는 요즘. 불안하지만 이렇게 버틴 나날들이 쌓이고 나면 익숙한 길에서의 시간보다 훨씬 깊고 짙은 시간들로 남을 것을 안다. 서점은 코로나로 인해 매출도, 사람도 많이 만나지 못하는 환경이지만 그렇기에 인내와 기다림의 쓴맛과 단맛을 모두 맛볼 수 있는 것이리라. 바라건대 코로나는 이대로 익숙해지지 않고 사라지길 기도하며, 모두가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그날이 하루빨리 도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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