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시작하고 꽤나 승승장구했던 시절이 있었다. 중. 고등학교 때부터 워낙 신체조건도 좋고 운동능력도 탁월했던지라 각 스카우터들의 시선에는 언제나 주변이 아웃 포커싱되는 대상이었으리라. 하지만 나는 실전에서는 그렇게 큰 두각은 나타내지는 못했던터라 그들에게는 늘 '가능성'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서야 상품화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대학이나 프로 관계자들도 그 가능성을 보려고 늘 나를 이것저것 테스트를 해보곤 했었다. 그런 테스트조차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기에 늘 동기들과 후배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그런 시선을 의식하느라 운동장에서는 평소보다 두 배쯤 에너지를 더 사용하곤 했다.
지나온 많은 에피소드와 경기했던 추억들이 내 머릿속에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지만 오늘은 불현듯 '그때는 왜 몰랐을까'라는 문장이 나를 향한 제1의 질문이 되어 버렸다. 그 시절을 되감아보면 지금은 모르겠으나 전국대회 16강에 들어야 대학을 갈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그래서 고3 학생들은 프로에 지명을 받지 못하면 대학을 가야 하기 때문에 혼신을 다해 플레이한다. 당시 인천고 고3 야구 선수들은 첫 '대통령 배'에서 4강에 올라 이미 대학에 갈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 고3 수험생에게 봄부터 대학 합격 티켓이 쥐어졌으니 얼마나 마음이 평온했겠는가? 하지만 야구선수로 자신의 진로를 선택한 사람들이라면 대학이라는 곳은 우선순위에 없는 그런 기관이다. 바로 프로로 가야만 했기에.. 그것이 야구선수로서의 성공의 척도라도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일반 대학을 준비하는 고3 학생들은 다르지 않은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좋은 대학이 자신의 인생의 운명을 바꾸는 곳이라고 생각하기에 죽기 살기로 공부하지 않는가? 하지만 나는 달랐다. 대학으로 환승하여 프로로 가는 것도 아닌 곧 장 프로로 직행하는 것만이 '성공'이었다.
결국 나는 모든 시즌을 마치고 00구단에 입단 제의를 받았지만 형편없는 대우로 인해 실망을 하고 대학을 선택하게 되었다. 당시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홍익대, 건국대, 인하대 등 사람들이 생각하는 좋은 대학에서 많은 러브콜을 받았다. 일반 학생들이라면 얼마나 행복한 고민일까? 그러나 나는 이 모든 선택들이 '실패'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를 가야 하니까!"
그렇게 참담하고 우울했던 그 해 겨울은 너무나도 추웠다.
아마야구 고3 선수들은 수능을 보기도 전에 대학이 결정되는데 나는 러브콜을 보내온 수많은 대학중 ‘성균관대학교'를 선택했다. 당시 성균관대가 야구를 잘하는 명문이었고 윤기 나는 대학생활을 즐긴다는 분위기보다는 이 대학을 가면 프로로 갈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지도자들의 평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성균관대는 다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머리를 삭발하고 까맣게 탄 피부로 4년 동안 오로지 운동만을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대학이었다. 그렇다. 성균관대를 선택한 이유 역시 여전히 '프로행'을 목말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입학도 하기 전에 대학 훈련에 참가해 감독과 코치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열심히 뛰었다. 대학은 고등학교와 달랐다. 실력이 있고 열심히 하는 선수를 시합에 출전시키는 공정한 룰을 가지고 있었다. 운이 좋았는지 입학을 하고 1학년이 된 나는 중견수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같은 포지션이었던 4학년 선배를 제치고 그 자리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1학년들 사이에서도 부러움의 대상, 선배들에게는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대학에서도 좋은 대우를 받으며 운동을 하다가 마침내 큰 시련이 오게 되었다. 바로 '어깨 부상..' 공을 던질 때마다 어깨도 아프긴 했지만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이었다. 나 자신에 대한 속상함이 지속되어 모든 운동의 밸런스가 흩어져 버렸고 멘털이 흔들렸다. 결국 재활과 재기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자 누구보다 나를 잘 알았던 내가 스스로 야구선수의 꿈을 정지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대학 감독님은 1년까지 쉼의 기간을 갖고 다시 그라운드로 나오라고 있을 수 없는 최고의 배려를 해주셨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20살 나는 직면한 슬픈 현실의 감정을 잠재우지 못한 채 야구를 그만두는 것은 물론 대학까지 자퇴해버리는 무모한 결정을 하게 되었다.
나 스스로도 절망이 짓누르는 시간이었지만 한편 부모님의 가슴에도 쓰라린 상처를 주는 행동이었다. 당시에 감정들은 앞으로 써 내려갈 이야기들에서 종종 등장할 것 같다. 질문을 다시 해본다. "나에게 대학은 어떤 곳이었는가? 왜 멈춰야만 했을까?" 나의 모든 결정이 말해주듯 나에게 대학이란 처음부터 시종일관 내가 있어야 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렇게도 미련없이 대학교 정문을 저벅저벅 걸어 나왔으리라.
현재 바쁜 사회 속에서 가정을 지키며 살고 있는 나는 이 시절을 생각하기만 하면 "그때는 왜 몰랐을까.."라는 문장을 한숨처럼 내뱉는다. "남들은 그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는데 이렇게 포기해버리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바보 같고 미련하다고, 참 지혜가 없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좋은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철없던 나를 붙잡아주는 어른은 왜 없었을까 하는 생각으로 귀결된다. 주변에 진심 어린 조언과 청소년에서 청년으로 마주하는 과정을 삶으로 면밀하게 나눌 수 있는 어른이, 친구가 한명이라도 있었더라면 나의 선택은 다르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이야기는 나에게 그리 슬픈 이야기는 아니다. 이 생각을 떠올릴 때마다 현재 '좋은 어른'으로 되어가는 디딤돌이 되기 때문이다.
그때.. 만약에.. 시간을 되돌려 20살에 나에게로 돌아간다면 나는 다시 그런 결정과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이런 가정은 늘 무용하지만 끝에는 한 가지 깨달음을 준다.
이제는 안다. 나의 무모함으로 인해 비록 ‘좋은 학위'는 없을지라도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를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그 작은 결단과 스스로의 선택이 훗날 어른이 되어 거칠고 황량한 인생 앞에 가장 중요한 가치와 본질의 것들을 선택하는 과감한 내가 되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그리고 아마 다시 돌아가도 나는 똑같는 선택을 했을 거라고 말이다.
“그걸 그때는 왜 몰랐냐고?"
그땐, 그걸, 모르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