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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춘 Feb 11. 2022

나 때문에 이겼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나는 '우익수'라는 포지션에서 '1루수'로 이동했다. 이게 세월이 가져다주는 자리인가? 아니다. 분명 나는 유망주였고 초등학교 때 무궁무진한 야구선수가 될 떡잎을 키우고 있었다.


 1루수는 어떤 자리인가? '조해연의 우리말 야구 용어 풀이'라는 지식백과를 보니 '1루를 지키는 야수. 완성이 가장 많이 기록되는 자리로, 포지션 넘버는 3.'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1루수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기업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결재할 때 각 직위마다 승인 사인이 있지 않은가? 야구에서 내야 땅볼이 생기면 내야수는 공을 잡고 1루를 향해 공을 던지는데 1루수는 1루 베이스를 밣은채 내야수가 던지는 공을 잡아야 비로소 '아웃'이라는 결재가 승인되는 것. 어찌 보면 내야수에서 회장급이다. 제일 중요한 자리이다.


 보통 1루수는 달리기가 느린 사람, 장타를 치는 사람이 체력소모를 아끼기 위해 있는 자리, 등 ‘편한 자리’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1루수는 그 무엇보다 제일 긴장이 되고 순간 방심하여 실수를 하게 되면 경기 전반에 흐름을 넘겨줄 정도로 중요한 자리이다.  아, 그리고 1루수는 키가 커야 한다. 내야수가 1루수를 보고 공을 던질 때 키가 작으면 공을 편하게 던질 수 있는 범위가 작아지기 때문에 악송구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키가 크면 심적으로도 던지기 편한 면적과 더불어 내야수들이 안정감이 생긴다. 어쩌면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찾아온 성장통 덕분에 이 중요한 자리를 맡게 된 건지도 모른다. 내 왼쪽 무릎에 낙타 등처럼 볼록하게 나온 이상한 뼈는 37세가 된 지금도 변함없이 튀어나와있는 추억의 흔적이 되었다.


그렇게 공 던지고 받는 일이 점점 익숙해지고 편해지는 시기가 오는데 이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찾아온다. 기약이 없다. 끊임없는 연습과 땀의 결과가 자신도 모르게 내 몸에 이사를 온 것처럼 자리를 잡게 된다.  그리고 그 익숙해진 실력을 선보일 때가 드디어 왔다. 당시 인천 석천 초등학교로 기억된다. 이 학교는 우승후보였다. 선수층이 무시무시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시합도 안 해보고 잘하는 사람들이 즐비에 있다면 왜 겁부터 먹고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자. 시합이 시작이 되었다. 역시 우승후보다. 나는 5학년임에도 1루수에 출전하게 되었는데 사실 보통 초등학교 시합은 6학년이 다 뛴다. 이 사실을 보면 야구를 잘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 않은가?(믿거나 말거나)

 

시합은 우리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석천초가 이기고 있었다. 초등학교 야구는 9회 말까지 하지 않는다. 정식 규정은 6회까지 한다. 아마도 선수를 보호하고자 그렇게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프로야구 규정으로 마운드에서 홈플레이트까지 거리는 18.44m이다. 여기서 초등학생은 거의 40% 정도 빼고 앞에서 공을 던진다. 그만큼 연인과 연인이 팔짱을 끼고 있는 느낌과 같이 아주 가깝다. 계속 경기가 풀리지 않고 질질 끌려가던 찰나에 당시 8번 타자로 기억한다. 나였다..


  상대팀 투수가 어쩜 그리 공이 빠르고 힘이 좋던지, 우리 팀은 1-0으로 계속 끌려가고 있었다. 우리 팀 선배 투수도 만만치 않았다. 이 경기는 투수전이다. 양 팀 학교 모두 방망이질이 부실했다. (끝나고 단체로 빠따 맞을 분위기다. 당시에는 자연스러운 관행이었다.) 5회 말에 우리 팀이 공격할 차례, 앞선 타자들의 방망이에 신이 들렸는지 갑자기 안타 치고 2루타 치고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주자 2.3루.. 안타를 치면 2명이 홈에 들어와 역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보통 멘털이 약한 선수들은 이런 기회에 자신이 처하지 않기를 바라는 이상한 멘털을 소유하고 있는 선수들이 많다. (나는 이런 맘을 안다) 팀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 대신 누가 해결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드디어 나에게 찬스가 왔다. 5학년 이춘호가 서흥초등학교에 영웅이 되는 시간이..


 상대편 투수는 완벽에 가까웠다. 초등학교는 아무리 에이스 투수라 할지라도 3회밖에 못 던진다. 그런데 아뿔싸 석천초는 에이스가 3명이었다.. (이 사실을 추억하는데 왜 이렇게 짜증이 날까) 내 앞선 타자들이 둘 다 아웃이 되고 이제 기회는 나에게 넘어왔다. '5회 말 투아웃!' 인생은 9회 말 투아웃부터 라고 하는데 나는 5회 말이 야구 선수의 꿈을 이어갈지 여기서 삼진 아웃을 당해 야구의 흥미가 없는 것 같아 부모님에게 말하고 다른 길을 알아볼지 아주 중요한 순간이다.


 원래 자신이 없으면 초구를 노려야 한다는 말이 있다.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초구는 보통 스트라이크가 들어올 확률이 70%가 넘는다. 나는 이걸 확신했다. 드디어 투수의 손에 공이 떠났다.

 헉.. 공이 안 보인다.. 보통 타자들이 홈런을 칠 때 공이 수박만 하게 보인다는데 다 거짓말이다. 무슨 수박인가.. 코딱지도 안보이더라.. 드디어 공이 나에게 오는 순간 반사신경으로 있는 힘껏 휘둘렀다. 원래라면 내 스윙보다 공이 더 빨라서 밀렸어야 하는데 평소에 어머니가 몸보신을 위해 매일 한약을 챙겨준 정성이 이 순간 발휘가 되었나 보다. 내가 친 공은 밀렸지만 한약의 힘으로 우전 안타가 되었다. 난리가 났다. 순식간에 2점이 들어와 우리 팀이 리드하게 된 것이다.


“이춘호 선수 우전 안타로 서흥초등학교가 역전했습니다!”


  나는 1루로 뛰어가는 그 시간과 느낌과 상황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생생하게 내 기억 속에 잊지 못할 사진으로 남아있다. 너무너무 기뻤다. 안타를 치고 역전이 되니 내가 제일 먼저 바라봤던 사람은 감독님도 아니었다. 역전하게 되어 기뻐하는 서흥초등학교의 학부모들도 아니었다. 벤치에서 열심히 응원하는 후배들도 아니었다. 바로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멀리서 나를 바라보며 박수를 치고 계셨다. 늘 장사라느라 뒷바라지하느라 힘드신 아버지가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야구하길 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날 아버지는 차 안에서 많은 지인들에게 전화를 하시며 우리 아들이 안타 쳐서 이겼다고 불이 나게 연락을 하고 있는 장면도 내 기억 사진으로 남아있다.


 어렸을 때 '나 때문에'에 승리해 보았는가? 지금은 나도 예전 아버지처럼 자영업을 하고 있지만 초등학교 때 자신이 팀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을 때에 오는 자존감은 일상에서 어렵고 힘들 때마다 그때를 추억할 때, 살 힘이 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우리가 사는 일상은 운동경기와는 사뭇 다를 수 있으나 어럽고 힘든 이들에게 "당신 때문에 참 행복합니다."라는 진심의 격려가 멈추고 싶은 심장을 다시 소생하게 하는 능력일 수도 있다.


  "나 때문에 이겼다." 이 문장은 내가 숨을 거두는 날까지 잊을 수가 없는 '평생 문장'이다.


야구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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