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위험한 동조(1) - C등급의 무게
C등급 기억 처리와 한계 초월의 시작
7화. 위험한 동조(1)
C등급의 무게
특별 교육실의 문이 열리자 순간 멈칫한다.
평소와는 다른 긴장감이 감돈다.
벽면의 모니터들이 평소보다 더 붉은빛을 띠고 있고,
[위험등급 처리실] 문구가 평소보다 더 선명하게 빛난다.
공기 중에는 기억 공명제 특유의 달콤한 향이 묵직하게 내려앉아 있다.
[기억 위험도 측정 시스템 가동]
[담당 관리사: 강민준]
[대상자: 서하린]
[현재 정신력: 100/100]
[공명 피로도: 5% (양호)]
[기억 안정도: 95/100]
[주의: C등급 처리 시작]
"오늘은 C등급입니다."
민준이 기억 카드를 조심스럽게 꺼낸다.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보인다.
"심각한 정신적 손상이 담긴 기억이에요.
실제 폭력이나 사고의 직접적 경험이 담겨있죠.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위험도를 가진..."
카드를 받아든다.
차가운 금속 표면 위로 [위험등급 C] 스티커가 붙어있다.
D등급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강한 진동이 느껴진다.
마치 누군가의 고통이 실체가 되어 울리는 것처럼.
손바닥을 타고 미세한 전류가 흐르는 듯하다.
[기억 카드 분석]
등급: C (위험도 ★★★★)
유형: 교통사고 트라우마
예상 정신력 소모: 50
권장 처리 시간: 15-20분
주의: 감정 전이 위험 매우 높음
경고: 2차 트라우마 가능성
"어제의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세요."
민준이 기억 공명기를 세팅하며 말한다.
평소보다 더 꼼꼼하게 각도를 조절하고 출력을 확인한다.
"하지만 더 조심해야 합니다.
C등급은 감정 전이가 매우 강렬해요.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오기 힘들고...
때로는 영구적인 상처를 남길 수도 있습니다."
민준의 말에는 어딘가 개인적인 경험이 묻어있는 것 같다.
그의 왼손이 무의식적으로 주머니 속 무언가를 만지작거린다.
비상 정지 장치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
고개를 끄덕인다.
어제 발견한 새로운 접근법.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거리를 두면서도, 동시에 대화하듯 안정화시키는 방식.
마치 상담사가 환자를 대하듯, 깊이 공감하면서도 객관성을 잃지 않는 그 미묘한 균형.
하지만 과연 C등급에서도 통할까?
[안전 프로토콜 가동]
이중 안전장치 활성화
비상 전원 대기
강제 차단 시스템 준비
의료진 대기: 3층 의무실
예상 부작용: 두통, 현기증, 일시적 기억 혼란
"시작하겠습니다."
민준이 기억 공명기의 마지막 점검을 마쳤다.
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다.
"준비되셨나요?"
심호흡을 한다.
이상하게도 긴장감 속에 기대감도 섞여 있다.
어제의 성공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내 능력이 정말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기억 공명 시작]
대상: 42세 남성
시점: 1년 전
유형: 교통사고 직접 경험
주의: 강한 트라우마
진행률: 10%...25%...38%
순간 강렬한 충격이 밀려든다.
귀를 찢는 듯한 브레이크 소리, 유리가 깨지는 소리, 그리고 누군가의 비명.
모든 감각이 너무나 선명하다.
지금까지 경험한 어떤 기억보다도 실제처럼 느껴진다.
타는 듯한 가솔린 냄새, 쇳내 나는 피 냄새,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차가운 공기.
[생체 신호 변화]
심박수: 72 → 95 → 118
혈압: 143/92 (급격한 상승)
호흡: 불규칙 (과호흡 위험)
피부 전도도: 비정상 상승
동공 반응: 이상 징후
공명도: 75% 상승 중
경고: 감정 전이 위험
특이 현상: 비정상적 동조 현상
"집중하세요!"
민준의 경고가 들린다.
마치 멀리서 들리는 것처럼 희미하다.
"거리를 유지하세요. 기억에 휩쓸리면..."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내가 그 남자가 되어있다.
핸들을 잡은 손이 떨린다.
손마디가 하얗게 변할 정도로 핸들을 움켜쥐고 있다.
백미러에 비친 얼굴은 공포로 일그러져 있다.
앞좌석에는 중학생 딸아이가 있다.
교복 차림으로 곤히 잠들어 있다.
뒷좌석에는 아내가.
밤샘 근무를 마치고 지쳐 잠든 아내의 얼굴이 차창에 비친 달빛에 창백하게 빛난다.
그리고 저 멀리서 다가오는 트럭의 불빛.
너무 늦게 발견한 그 강렬한 빛줄기.
'안돼... 제발 안돼...'
"서하린 씨!"
민준의 목소리가 점점 더 멀어진다.
내 의식은 완전히 그 순간에 빠져들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뛴다.
아드레날린이 폭주한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흐른다.
그리고...
[위험 수준 경고]
공명도: 89% → 92% → 95%
정신력 급감: 100 → 67 → 45
뇌파 패턴: 심각한 교란
자율신경계: 과활성화
경고: 즉각 중단 필요
긴급: 강제 차단 권장
"제발... 하나님, 제발 살려주세요..."
내 목소리가 떨린다.
하지만 이건 내 목소리가 아니다.
기억 속 그 남자의 목소리다.
박하게 기도하는 목소리.
살려달라고, 가족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목소리.
마지막 순간의 모든 감정이 응축된 절규.
트럭의 불빛이 점점 커진다.
시간이 느려지는 것 같다.
1초가 1시간처럼 느껴진다.
핸들을 돌리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브레이크를 밟지만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순간, 뒷좌석에서 아내가 깨어난다.
그녀의 마지막 외침이 귓가를 파고든다.
"하린 씨, 이건 당신의 기억이 아닙니다!"
민준이 다급하게 외친다.
그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진짜 두려움이 실렸다.
"현실로 돌아오세요. 지금 이 순간으로! 제발!"
그때였다.
내 의식 한켠에서 무언가가 깨어난다.
마치 어둠 속에서 작은 빛이 피어오르듯.
그래, 이건 내 기억이 아니야.
이건 과거야.
이미 지나간 순간.
나는...
나는...
"들리시나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이번에는 내 목소리다.
"당신의 고통이 느껴져요. 그 순간의 모든 것이 보여요.
하지만 이제... 이제는 안전합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살아있어요.
그리고 그들도..."
놀랍게도 기억이 흔들린다.
충돌 직전의 순간이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마치 필름이 되감기듯 시간이 뒤로 흘렀다.
공포와 절망 대신, 작은 희망의 빛이 스며든다.
천천히 그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다.
병실에서 눈을 뜬 순간으로.
기적적으로 모두가 살아남았다는 소식을 들은 그 순간으로.
[예상치 못한 변화]
기억 안정도: 35% → 58% → 76%
공명도: 95% → 87% → 82%
기억 구조: 재구성 진행 중
트라우마 강도: 현저히 감소
특이사항: 새로운 안정화 패턴
주목: 전례 없는 접근법 확인
"어떻게..."
민준의 목소리가 떨린다.
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C등급에서 이런 안정화는... 불가능한데..."
천천히 눈을 뜬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있다.
손끝이 여전히 떨리고 있다.
하지만 기억은 안정화되어 있다.
아니, 어쩌면 치유되었다고 해야 할까.
트라우마의 순간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제 그것은 단순한 기억이 되어있다.
더 이상 영혼을 옥죄는 족쇄가 아닌.
[안정화 완료]
성공률: 92% (최상위 1% 기록)
소요 시간: 18분
정신력 소모: 55
트라우마 감소율: 67%
특이사항: 새로운 치유 패턴 발견
권장: 패턴 분석 및 기록
비고: S급 수준의 처리 능력
"이건..."
민준이 모니터를 확인하며 중얼거린다.
그의 목소리에서 경외감이 묻어난다.
"단순한 안정화가 아닙니다.
마치... 치유에 가까워요.
S급 관리사도 쉽게 하지 못하는..."
희미하게 미소 짓는다.
어제의 발견이 우연이 아니었다.
내 능력은 단순히 기억을 읽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상처받은 기억을 치유하는 것.
아픔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그리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
하지만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다.
모니터에 갑자기 붉은 경고등이 켜진다.
마치 내 깨달음을 방해하려는 듯한 날카로운 경보음이 울린다.
[긴급 경보]
위치: 지하 3층 A구역
상황: 비인가 접근 시도
대응 레벨: 5 (최고 등급)
위험도: CRITICAL
즉시 조치 요망
주의: 기억 오염 위험
"이건..."
민준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지하 A구역... 절대로 들어가선 안 되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모든 조명이 깜빡인다.
특별 교육실의 모니터들이 하나둘씩 푸른 화면으로 변하더니,
마지막엔 모두 [SYSTEM ERROR]라는 붉은 글자만 남긴다.
[시스템 이상]
- 출입 통제: 해제
- 보안 장치: 무력화
- 통신: 교란
- 카메라: 오프라인
- 비상 전원: 64%
경고: 전면적 시스템 장애
대응: 즉시 봉쇄 필요
누군가가 보안 시스템을 무력화한 것이다.
하지만 왜?
그리고 누가?
A구역이라는 건...
머릿속에 어제 들었던 임지현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간다.
'제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주실 수 있나요?'
심장이 요동친다.
그녀가 정말로...
그 금지된 영역에 접근하려는 걸까?
민준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며,
오늘이 평범한 교육 이상의 일이 벌어질 것임을 직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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