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움에 지친 사람들에게
글을 쓰기 시작하고 삶이 많이 나아졌습니다.
우울증은 아니었지만 글쓰기는
제 마음을 많이 달래주었습니다.
글쓰기, 특히 감정을 기록하는 것은
우울한 마음을 달래는 데에 퍽 좋다고 들었습니다.
그림을 위한 글은 특히나 곱씹을 감정들이 많아
더욱이 위로를 받습니다.
안타깝게도
직장에서의 바쁜 하루하루는
너무나도 피곤합니다.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직장에서의 시간은
뇌를 꽉 붙잡고 살아가야 하는 시간입니다.
그 번뇌의 시간 동안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재능중
가장 조그마한 것부터
바람에 휴지 조각 날리듯
바로 놓아주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가벼운 것은
영감을 발견하고 활용하는 재능입니다.
바로 우리가 '창의력'이라고 부르는 부분입니다.
놀랍게도 창의력은 어린아이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뿐더러
어른에게 훨씬 많을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지요.
하지만 아이와 다르게
어른은 시간이 없다는 점이 다릅니다.
어른의 시간은 아무것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자기 계발에 관심 없는 분은 모르겠지만
자기 계발 예찬론자들은
20대를 위한 10대
30대를 위한 20대를 준비하라고 합니다.
선행학습을 하듯, 앞을 미리 예견하고
눈을 저 너머에 두는 것입니다.
물론 맞는 말이지요. 편안한 삶을 위해서,
혹은 리스크 적은 삶을 위해서
그건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 불안 심지어는
건전한 자기 계발 까지도
'영감'을 위한 자리를 내주진 않습니다.
가계나 정부의 모든 예산의 우선순위에서
'문화, 예술'이 저 끝까지 밀려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겠지요.
바쁜 현대사회에서 많은 이들에게
'문화, 예술'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되는 것이 되어갑니다.
비율을 따질 수 있다면
여러분의 삶에 '영감'은 몇 프로나 중요한가요?
중요도와 상관없이
그런 것들은 온갖 천지에서
우리에게 발견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림, 시와 홈메이드 음식,
결론이 나지 않는 토론과 어설픈 영화
집에서 치는 피아노와
베란다의 작은 식물원
그런 것들은 달리고 또 달려야
겨우 생존하는 각박한 세상 속에서
우리를 잠시 멈춰 세우고 날카로왔던 일상을
둥글둥글하게 만들어줍니다.
사람들은 약해지는 걸 두려워합니다.
둥글둥글해지면,
아무런 무기도 없이 전장에 나간 사람처럼
삶에서 고배를 마실 거라 생각하지만
진짜 강인한사람은
전장에서 무기 없이 춤을 추는 사람이 아닐까요?
옆사람 손을 붙잡고
강강수월래라도 시작하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요?
piano man이 들려오는 카페에 앉아
케이크를 주문하고 라테를 마시는 일은
제게 주말에나 일어납니다.
멜로디 대신 가사의 의미를 생각하며 듣는
piano man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작은 종이에
살가운 것들을 조금 그려봅니다.
완벽을 요구하고 완벽하게 이겨내야 하는
그런 사회에서 조금 떨어져
살갑고 친절하게 날 반기는 약간은 어설픈
나의 오랜 친구 같은 드로잉북을 꺼내봅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여유를 불어넣고 선을 그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