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점에 있는 자가 유일했다.
타인이 듣는다면 좀 민망한 이야기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꽤 우리의 결혼식이 만족스러웠다. 시간은 주말 저녁에다, 호텔의 고급진 식장도 아니었으며, 축하를 위한 하객들이 엄청 붐볐던 것 또한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법 맛있기로 알려져 있는 공간에서, 진심으로 가까운 지인들과 인생의 행사를 겪어냈음이 만족스러웠다.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 공항에서 장인어른과 통화하던 기억이 난다. "장인어른, 결혼식이 참 좋았던 것 같아요!"라는 나의 말에 장인 어르신은 이렇게 답하셨다. "나도 정말 많은 결혼식에 참석해봤지만 말이야, 우리 딸과 사위의 결혼이라 하는 말이 아니라, 오늘이 여느 결혼식보다 정말 좋더라." 두 남자의 호들갑.
나름 밴드 커뮤니티에서 만난 우리에게 있어서(같은 밴드에서 활동한 적은 없지만) 결혼식 당일의 BGM은 무엇보다 중요한 안건이기도 했다. 심지어 이 날의 선곡을 위해 밴드의 멤버 몇몇은 우리와 함께 머리를 맞대어 고민해 주었고, 결론적으로 가히 걸작이라 칭할만한 사운드 트랙이 탄생되었다. 특히 우리의 퇴장과 함께 시작을 알리기도 한 마지막 노래는 'oasis'의 'Don't look back in anger'가 되었는데, 이것은 참 성격적으로 결코 만만치 않은 우리 둘이 큰 다툼 없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작은 동인이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보기도 한다. "화가 잔뜩 나서 돌아보지는 말아요."
마침내 결혼식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라고 할까. 신랑 신부가 함께하는 행진을 하고 사진 촬영까지 마치면, 식사를 하고 계신 하객들의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인사를 하는 시간이 있다. 우리의 결혼식에는 감사하게도 많은 훌륭한 분들께서 축하를 해주셨다. 사실 이렇게 말할 정도로 그 날 전체의 기억을 되살려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마지막 인사의 순간 축하해주신 C님과의 기억은 분명하고도 더욱 특별하게 남아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테이블에 앉아 계신 모든 분들께 인사를 드렸고, 드디어 우리가 C님께서 앉아계신 테이블에 도착했을 때였다.
C님께서는 다가온 우리를 마주하시고서는 식사를 하시던 모든 하객분들 중 유일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정장 재킷의 단추를 채우시고는 웃으며 악수를 청하셨다. 혹자는 '웃으며 악수를 청한 순간'이 기억에 남은 것일까, 아니면 '자리에서 일어나신 것'이 감명 깊었던 것일까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감명받은 부분은 조금 다르다. 그러니까 사실 그 날의 모든 하객분들 중 일반적인 사회 통념으로 보았을 때 현직에서 가장 명망 높은 분이 바로 C님이었고, 그럼에도 불구 유일하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손을 내미는 그의 '기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쉽게 말해 '정점에 있는 사람이 유일했다.'라고 할까. 흔히 말하듯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인지, 사람이 그와 어울리는 자리에 가게 되는 것인지는 지금의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자그마한 성과들로 잔뜩 폼을 재는 사람들이 가득하고, 증명할 수 없는 재주로 혹세무민 하려는 사람이 넘치는 요즘 세상에서도 빛나는 사람은 여지없이 빛날 수밖에 없는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렇게 빛나는 사람들은 결국 탄탄한 기본기에서부터 타인을 매료시키는 것이 아닌 걸까 하는 생각. 그러니까 이다음에는 나도 꼭 일어나 악수를 건네어야지,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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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해두고 싶은 그날의 BGM.
0. 식전영상 - Something about us, Daft Punk
1. 화촉점화 - Closer, Travis
2. 신랑 입장 - Viva la vida, Coldplay
3. 신부 입장 - Wonderful Tonight(Live version), Eric Clapton
4. 양가 인사 - Love will set you free, Kodaline
5. 퇴장 - Don't look back in anger, Oas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