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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Sep 21. 2020

다시 찾은 하롱베이는

베트남, 첫 번째 이야기

무료함을 달래고자 지난달에 필리핀 클락 항공표를 예약했다. 십 수년 전에 가족과 함께 가서 호핑투어를 즐기고 귀항할 때 파도에 시달린 기억이 생생한 곳이다. 막상 시간이 다가와 혼자 가려니 호텔 예약에  관광지, 먹거리를 찾는 것이 번거롭게 느껴졌다. 다시 가는 곳이라 호기심도 일지도 않고 그냥 휴식을 취할 곳을 찾고 싶고... 그러다가  하롱베이가 떠올랐다. 하늘 아래 가장 아름다운 자연으로 손꼽히는 계림. 아기자기한 카르스트 봉우리들이 도시를 감싸고 발랄한 산들 사이를 리강이 흘러 한점 수묵 산수화 같다는 계림이 내게 그다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지형과 모양이 하롱베이와 너무도 같았기 때문이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 꿈틀거리는 형상이라는 하롱베이를 다시 찾아가 보고 싶었다. 계림보다 풍경이 뛰어나고 패키지가 주는 편리함에 푹 쉬고도 싶고, 베트남 쌀국수도 좀 먹고... 비행기 삯의 절반을 위약금으로 물리고 클락 예약을 취소했다.


5시간 비행에 늦은 수화물 전달로 새벽 2시 반에야 하노이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한국에 비해 2시간 늦다. 잠시 눈을 붙였는데 줄리안이 전화로 잠을 깨웠다. 침대에 누워 30분간 대화를 나눈 후 다시 잠들지 못하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베트남 쌀국수 국물 맛은 구수하고 산뜻했다. 예전에는 음식에 향채 한 두 잎만 들어가도 먹을 수 없었으나 이젠 익숙하다. 쌀국수는 향채와 함께 먹어야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다. 향긋하고 고소하다.


베트남 4일 연휴로 시내 교통이 복잡하게 얽혔다. 요리조리 차 틈을 빠져 달리는 버스 안에서 배우 임원희 동생이 가이드로서 베트남 관광에 대해 열을 뿜으며 설명을 했다. 지치지 않는 그의 설명을 듣는 중 버스는 하롱베이로 가는 중간 기착지인  옌뜨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고지에 위치한 옌뜨는 베트남의 대표적인 자이완 사원이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와 고승들의 사리탑 500여 개가 모셔져 있는 사원이다. 카트차를 타고 입구에 이르면 공자의 제자 안자가 공부한 곳이라 그를 모신 사당이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 중턱에 내려 한 10분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고승의 사리탑이 보이고, 마지막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700년 된 고목과 화안사가 있다. 아담한 대웅보전 안에는 천수관음보살상과 여러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베트남 속담에 '백 년 불공을 드려도 옌뜨에 가보지 않았으면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얘기가 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 장가계를 빗대어 '일백 년을 살았다 하더라도 장가계에 와 보지 않았다면 어찌 인생을 살았다 하리오'. 누가 패러디 한 거지?



경내에서 땀을 식히고 있을 때 어딘가로부터 나비? 나방? 두 마리가 날아와 살포시 내려앉았다. 앉는 모양이 다르다. 한 마리는 날개를 접고 다른 놈은 날개를 펴고 앉았다. 나비와 나방이 다른  점이다. 날개를 접고 앉은 놈이 나비다.

옌뜨 관람을 마치고 산등성이를 파헤치고 만든 언덕길을 지나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여러 언덕 비탈 절개지가 검은색을 띠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석탄이다. 산 표면까지 석탄이 즐비하다. 풍부한 천연자원이 부러웠다. 베트남에서는 누구도 손쉬운 석탄을 캐려 하지 않는 모양이다.



하롱베이는 산전벽해와 같이 변했다. 예전에는 달랑 호텔 하나와 한참을 걸어 나가야 가난한 집들 사이에 작은 가게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지금은 호텔, 가게, CGV 극장, 바닷가 섬을 잇는 케이블카... 인구 백만 명의 커다란 신도시가 만들어졌다. 여전히 개발 중이고 고급 빌리지와 호텔이 건설 중이다.

예전에는 해변이 없었다. 모래를 붓고 등대를 만들고... 아름다운 해변을 인공작으로 만들어 관광객을 불러 모았다.

하롱베이 호텔에 여장을 풀고 밖으로 나오자 수많은 베트남 시민들이 해변으로 해변으로 향하고 있었다. 예전에 없던 해변을 모래를 부어 인공적으로 비치를 조성했다. 베트남 4일 연휴를 즐기려는 시민들이 저마다 아름다운 풍치가 있는 하롱베이를 찾아와 바다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하롱베이 골목골목이 자가용 차량으로 넘쳤다. 그만치 잘 살게 되었다는 증거다. 해외여행 어디를 가든지 가득 찬 한국인을 볼 수 있는데 이번엔 이 나라 말이 들리고 한국인을 적게 볼 수 있는 관광지를 방문할 수 있어 좋다.


김치찌개로 저녁식사를 했지만 이국에서의 첫날밤을 그냥 보낼 수 없었다. 호텔 옆 골목길 Sea Food 집에 들러 살아있는 새우, 게, 한치, 조개를 주문했다. 다른 동남아 여러 도시와 달리 이곳에서는 꼬치구이를 찾아볼 수가 없다. 해산물 천지다. 우리도 활어를 튀기고 찌고 조개탕을 주문해 잔을 들었다. 골목길 가득 목욕탕 의자에 앉아 해산물을 주문해 먹는 베트남인들 사이에 섞여 하롱베이에서의 첫날밤을 그렇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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