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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Dec 04. 2023

돌고 도는 인생, 다시 호이안으로

다낭. 일곱 번째 이야기

돌고 도는 것이 인생이라 했던가?


과거를 바꾸어 놓고 싶을 때가 있다.

후회와 미련이 남았다면 반복되는 삶이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과거를 바꾸면 현재와 미래도 바뀐다.

Time line이 혼재되어 현재의 상황보다 더 좋아질 수도, 더 나빠질 수도 있을 텐데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선택할 수 있을까?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전에 선택했던 그대로 할 것이라고 장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때 좀 더 섬세하게 대처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교훈 삼아 현재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얼마나 바르게 살아가고 있을까?

혹은 지금도 비뚤비뚤한 삶의 흔적을 남기고는 있지 않는지?

그렇다고 너무 조심하면서 살 수는 없다.

내 주변과 가족이 무탈하고 자신에게나 이웃들로부터 욕먹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러면 되겠지. 뭐.


어쨌든 돌고 돈다.

같은 상황, 같은 일과 선택이 반복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짧은 기간 다낭에 체류하면서 호이안을 다시 방문할 줄이야!

말레시아에 살고 있는 딸이 아빠를 만나러 온다고 해서

며칠이라도 빨리 온 내가 가이드를 자칭하고 가본 곳을 다시 갈 수밖에.


지난번에는 시간이 너무 늦어 오르지 못한 오행산을 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다낭의 평지 위에 우뚝 선 돌산들과 미케 비치가 한눈에 들어왔다.

대형탑, 여러 신과 부처를 모신 사찰이 견고하게 서 있고

기와지붕 용마루 끝은 용과 치마마루 끝은 주작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본당으로 이어지는 계단 옆에서 여덟 마리의 용들이 뒤엉켜서 꿈틀거렸다.

우리의 개념은 한 두 마리 용이 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인데

베트남은 집단적인 용을 상상한다니! 동양에서는 용이 착하고 복의 상징이니

이곳 사람들은 좋은 것은 많을수록 좋다고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서양인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제외하고는 미케 비치보다 못한 안방 비치를 다시 갔다.

딸이 다낭을 갔는데 유명명소를 안 갔다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하기 위해.

호이안 야경 구경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시간을 때워야 한다.

딸의 인터넷 검색으로 해변가에 앉자 한가로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카페를  찾았다.

리조트를 겸한 분위기 좋은 카페다.

며칠 머물면서 해변이 바라보이는 의자에 앉아 멍 때리기에 좋은 것이다.

망고 주스나 코코넛 커피를 마시면서.


야경은 예뻤다.

호이안 구도시를 밝히는 연등들.

투본강에 배를 띄워 소원을 빈다.

강폭은 좁고 수심도 얕아 보인다.

바지를 걷어 도로까지 넘친 강물을 헤쳐 나가서 소원배를 탔다.

왜 매번 홍수가 나고, 특히 올해는 큰 홍수로 호이안의 상가와 건물이 다 잠겼다는 소식이

국제뉴스로까지 보도되게 했을까?

홍수를 피하기 위해 강바닥을 긁어내면 해결된다.

단순한 해결 방법인데 안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강바닥을 깊게 파낸다면 평상시 수량으로는 수면이 낮아져

강아래에서 연등으로 밝힌 상가건물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어야 하고

사람들은 소원배를 내려 보아야 하니 상호 동료감을 잃게 되고

그러면 지금의 운치는 없어지겠지.

강수면이 도로와 비슷해서 강과 도로가 구분되지 않는 상태로

랑거리는 수면 위에 소원배를 띄워야 제 맛이 나겠지.

그래서 방법은 있으되 침수를 불구하고 멋을 위해 현재처럼 유지하는 것이리라.


다시 봐도 장인의 손길에 탄복한다.

바늘과 실로 펼쳐 놓은 사진 한 장을 한 땀 한 땀 작품으로 옮겨 놓는다.

섬세하게 공들이는 사실적 표현은 예술 단계에 이르렀다.

완성되어 전시된 작품들은 내 어릴 적 기억을 불러 냈다.

그때는  벽에 못을 박고 그 위에 옷을 걸어두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옷에 먼지가 앉는  것을 막기 위해 어머니는 당신이 시집올 때 가져온,

혼숫감으로 몇 년 동안 손소나무와 학을 자수로 놓은 하얀 백양목 천을 덮어 두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거칠고 성긴 자수였지만 무척이나 예뻤다.

소중한 내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들에 친근감이 들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니 자연스럽게 그림에 눈길이 갔다.

베트남의 복잡한 시장풍경과 건물 구조,

아오자이를 입은 여인네,

그리고 호이안의 강과 쪽배,...

상상력을 더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 그림이 실물 사진보다 더 흥겹고 반갑다.

호이안에서 처음 본 것.

나무둥치의 뿌리를 이용해 익살스러운 어르신의 얼굴을 표현했다.

나무뿌리는 자연스럽게 어르신의 수염이 되고.


풀잎이나 대나무 잎으로 곤충이나 새를 만드는 것은 흔하다.

그래도 메뚜기와 매미의 표현이 정교해서 카메라에 담았다.


낮보다 밤이 예쁘다.

보고 느끼고, 직접 호이안 야경의 일부가 되고,

좁은 골목길을 지나 맛집으로 등록된  식당을 찾아가 쌀국수 한 그릇 먹고

다낭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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