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통영 앞바다는

by 이재영

'출발할 때 톡 줄게. 시간'. 친구로부터 문자가 왔다. 코로나 19로 갇혀있던 사람들이 그 답답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슬슬 움직이기 시작할 때, 친구도 코로나에 대처할 자신감이 붙었는지 고향 친구들을 통영 불러 냈다. 어쩌면 바이러스가 득세하는 서울을 피해 청정지역으로 대피하는 것이 더 안전할지도 모르겠다.


집합장소는 통영 산양면 바다 앞 펜션이다. 산양면은 다리 하나로 통영과 연결된 섬이다. 다리를 건너 윤이상 기념관을 끼고 우로 돌아 좁은 해안선을 달렸다. 아기자기한 섬들이 눈에 들어왔다. 달아 공원을 가리키는 안내판이 보였다. 해안선이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곳으로 기억하고 있는 달아 공원에 조금 못 미쳐 목적지에 도착했다. 눈앞에 바다가 펼쳐진 펜션 앞에서 스쿠버 다이빙이 전문인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세월호 사고 때 인명구조원으로 봉사했던 친구이다. 작살로 78kg 문어를 잡아낸 대단한 다이버이다. 이 친구를 믿고 이 먼 곳에 모인 것이다.


다들 자연산 회에 소주 한 잔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친구는 서두르지 않았다. 조바심 내는 우리들에게 사량도에 가서 참돔 한 마리 찍어 오겠노라고 느린 말을 할 뿐이었다. 친구는 사량도로 실어 줄 배를 기다리다가 펜션 앞 20미터 지점에 있는 뗏목을 향해 오리발을 차고 나갔다. 뗏목 주위에서 몇 번 물에 잠기더니 되돌아왔다. 작살에 감성돔 한 마리 찍어서. 그의 다이빙 실력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날씨가 흐려 수영을 즐기기엔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한 친구가 바다를 한 바퀴 산책하듯 돌아보자고 제안했다. 우르르 배를 탔다. 배는 잔잔한 바다 위를 헤쳐 나갔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코로나로 답답해진 심신의 달래 주었다. 상쾌했다. 나들이 나온 관광객들을 실은 현대식 돛단배들이 바다를 가르고 있었다. 황색 안전조끼를 입은 관광객 몇 명이 손을 흔들었다. 차 창가에서 그러하듯. 마주해서 손을 들었다.


배는 한산섬 앞에 잠시 머물렀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으로 왜군을 물리쳤던 바로 그 바다다. 해안선이 오밀조밀하고 크고 작은 만입부가 발달해서 우리 병선이 깊숙이 숨어있기엔 최적의 장소였던 곳으로 보였다. 해마다 이순신 장군께 제를 드리는 제승당을 먼발치로 보고, 그 앞바다에 설치한 거북등대와 산봉우리에 우뚝 솟은 한산대첩 기념비를 눈에 담았다.

친구는 사량도 가서 돔을 찍어 오기로 하고, 친구 둘과 나는 배를 타고 나가 뗏목 위에 내려 낚시를 하기로 했다. 고기가 없는 모양이다. 한두 차례 가벼운 입질만 있었을 뿐 무소식이다. 민물낚시에 익숙한 친구는 수시로 자리를 옮겨 다니며 낚싯대를 던졌지만, 미끼가 그대로 달려있다. 윤달이 들어서 바닷물 흐름이 이상하다. 올해 여러 차례 낚시를 갔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한 마리 잡을 때까지 기다리겠노라고 다짐할 때 한 친구가 동영상을 받았다. 사량도로 간 친구가 보낸 참돔. 와우~ 대단하다.

낚시를 한 시간도 못하고 배를 불러 돌아왔다. 친구가 찍어 온 고기는 이미 해체되어 뼈와 머리가 물에 담겨 있었다. 머리 크기가 보통이 아니다. 참돔 6자 짜리 두 마리를 불과 몇십 분 만에 잡아 온 것이다. 그곳에 가면 고기가 있다. 잡아내고 다시 가도 그 자리에 고기가 있다는 말이 빈말이 이니었다. 산소 탱크를 짊어진 것도 아니고, 가볍게 스킨 스쿠버로 참돔 6자 두 마리를 찍어 낸 것이다. 전날 장대비가 쏟아져 시야도 나오지 않을 텐데 말이다. 바다 위에 떠다니며 바다 밑을 바라보다 돔이 보이면, 숨을 참고 8미터 아래로 잠수해 들어가서 작살을 날린다. 작살이 참돔의 몸통을 관통하고, 돔이 부르르 떨어도 미늘이 돔을 창살 안에 가두어 둔다.

회를 떴다. 두 개의 큰 접시가 가득했다. 뱃살의 고소한 기름기가 입안을 감돌았다. 준비한 회초장에 오이 냉이를 섞어 맛을 냈다. 깻잎 한 장과 상추 한 장을 포갠 후 크게 쓴 회 두 조각 얹고 마늘 한 조각 넣어 쌈을 쌓다. 그 맛이 일품이다. 6자짜리 자연산 참돔은 이곳, 친구 덕이 아니면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드물다. 어쩜 평생 먹어보지 못할 맛일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양이 줄어들지 않았다. 너무 푸짐했다. 친구가 사량도로 떠날 때, 큰 놈 한 마리 찍어 오겠다고 했다. 나는 사람이 몇 명인데, 두세 마리는 잡아와야 된다고 했다. 괜히 고집부렸나 보다. 다 먹지도 못 할 것을. 자연산 회가 귀한지도 모르고 남길 것을.


식사 후 포만감을 삭히려 노래방 시설을 작동시켰다. 한번 마이크 잡으면 네댓 곡은 불러야 직성이 풀리는 친구, 노래 가락에 맞혀 춤을 추는 친구, 옛날 친구들 간 데이트했을 때 어느 선까지 갔냐며 짓궂은 질문을 하는 친구...


그렇게 밤이 짙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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