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4일. 서른네 번째 생일이 밝았다. 따스한 봄의 기운을 받아 태어난 것이 무색하게, 생일을 전후로 마음이 항상 힘들다. 다른 것보다도 몸 상태가 좋지 못하다. 따뜻해지는 날씨와 서쪽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가 눈과 코를 후벼 판다. 지난 주말부터 코피를 몇 번이나 흘렸으며, 눈은 또 얼마나 많이 빨개진 것인가. 알레르기성 비염의 항원에는 계절도 있다는 슬픈 사실을 매년 온몸으로 느낀다.
징크스 아닌 징크스도 있다. 따뜻해지는 봄날과 함께 한 기억들은 유쾌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푸른 하늘과 선선한 날씨 아래, 즐거움으로 가득했던 가을의 경험과는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나에게만큼은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T.S. 엘리엇의 시구는 비유가 아닌 현실이었다.
생일 즈음의 우울함을 지나치게 의식해서일까, 생일만 되면 예민해지고 기분이 쉽게 나빠지곤 했다. 그 속에는 '생일에는 꼭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 있었다. 몸과 마음이 힘들어도 생일이라는 이유로 인정하지 못했다. 누군가 '더 행복해 보이는' 생일을 보면 스스로에게 초라함을 느끼고, 조금이라도 나쁜 일이 생기면 다른 날보다 더욱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생일에 겪은 조그마한 부정적인 경험은 '생일에 기분이 좋지 않다'는 자기 암시를 더욱 키웠고, 그 마음이 다시 완벽한 생일에 대한 욕망으로 투영되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올해는 조금 다른 마음을 가져보기로 했다. 봄이 좋지 않은 것을, 생일에는 대체로 몸도 마음도 힘들다는 것을. 생일이라고 꼭 좋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행복에 대한 집착을 포기했을 때, 역설적으로 생일이 주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간밤에 먹은 항히스타민제의 강력함 때문에 침대에 평소보다 두어 시간 더 누워 있었다. 일어나 휴대폰을 보니, 많은 메시지와 선물이 도착해 있다. 1년간 거의 모든 왕래를 끊었지만 나를 기억하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던 것이다. 봄비 소식 덕분에 끔찍한 미세먼지도 오늘은 잠잠하다. 평소에는 검은색으로 방독면을 쓰고 있던 미세먼지 어플이, 오늘은 푸른색 미소를 지으며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셔라고 이야기한다.
다른 날과 다르지 않지만, 태어난 날이라는 이유로 감사하는 날. 평소보다 조금의 행운에 기뻐하고, 사람들의 축하에 행복해하는 날. 1년에 한 번 있는 보너스 같은 날인 오늘은 4월 4일. 생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