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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초코숲 Sep 24. 2022

16. 이제 우리 곁에 없을 할머니를 떠올리며

우울한 상태에서 느낀 상실의 경험

시끄럽게 울어대던 매미소리가 점점 사그라질 무렵, 휴직 후 처음으로 고향 본가에 방문했다. 동생이 결혼하고 나서 처음으로 나와 동생 부부를 포함한 모든 가족이 모이는 날이다. 그러나, 또 다른 중요한 일이 있었다. 어느새 치매 증상이 악화되어 요양병원에 계시다는 할머니 면회를 가는 것이다.


할머니의 병환은 한 달 사이에 급격하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구순이 넘으신 할머니는 몇 년 전부터 치매가 진행 중이셨지만, 그동안에는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현재의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고 계셨지만, 손주를 항상 아끼고 걱정하던 기억은 계속 가지고 계셨다. 가끔씩 안부차 전화를 드리면, 아직 대학생이라고 생각하는 손주의 용돈을 챙겨주신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휴직을 하기 전에는 적어도 2주에 한 번씩은 할머니를 포함한 친척 어른들과 전화로 안부를 전했다. 이는 아버지가 나에게 요구한 거의 유일한 부탁이기도 했다. 그러나 휴직을 하면서부터는 전화기를 들지 않았다. 잘 지내냐는 가벼운 물음에 대해 잘 지낸다는 거짓말을 하기도 싫었고, 조금은 옛날 사고방식을 가진 분들에게 굳이 정신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나를 돌보느라 바빠 다른 사람들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면회를 하기 위해 간이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감염의 우려 때문에 직접 만나 뵐 수 없었기에,  요양병원 한편에 있는 면회실로 들어가 유리창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박박 깎은 머리로 작게 신음 소리를 연신 내시는 할머니가 나타나셨다. 이전에 건강하시던 모습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들도, 손자도 기억 못 하시는 당신께서는 그저 어린아이처럼 요양사분에게 칭얼거리기만 하셨다.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다. 특히 어머니는 불과 한 달 전에 요양병원에 들어가시기 전, 정정하신 할머니를 뵈었다고 한다. 말을 잊지 못하신 어머니는 끝내 눈물을 보이셨다. 아버지와 삼촌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어머니를 위로했지만, 역시 충격을 받으신 듯 말수가 부쩍 줄어드셨다. 나에게는 슬픔과 함께 죄책감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안 좋아지실 줄 알았으면, 전화 한 통 하나 미리 할 걸' 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내 잘못이 아니다. 어쩔 수 없었다고 마음속으로 외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충격을 뒤로한 채 짧은 면회가 끝났다. 마지막으로 건강하시라는 말을 전하고 본가로 돌아가면서, 지금까지 느꼈던 우울함과는 다른 슬픈 감정을 느꼈다. 이 감각은,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것에서 오는 '상실감'이라다. 이제 우리와의 추억을 간직한 할머니는 세상에 더 이상 없고, 머지않은 미래에 마지막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본가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날은 정신과 진료일이었다.  공교롭게도 진료를 기다리는 중,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시는 할머니 한 분과 중년 여성이 급하게 병원으로 들어왔다. 질병관리공단, 소견서 같은 단어가 드문 드문 들렸다. 정황상 치매와 관련하여 전문의의 소견서가 필요해 보였다. 할머니 생각에 다시금 마음속에 공허함을 느끼며 진료실로 들어갔다.  


처음 정신과에 방문한 날을 제외하면 가장 진료받기가 힘든 컨디션이었다. 본가 방문으로 진료일을 하루 늦췄기에 평소 먹던 항우울제와 불면증 약을 먹지 못한 상태였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몽롱한 상태로 할머니와 관련된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선생님께서는, 오히려 본인에게는 잘된 일일 수도 있다며 생각하지 못했던 말로 위로를 해주셨다.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나는 데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의 불안과 고통에는 지성이 작용한다. 그렇기에 치매가 진행되며 기억이 사라지고 점점 비이성적으로 변하는 것은, 본인에게는 오히려 불안과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 될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울증이 생긴 이유가 바로 생각이 감정을 지배해버렸기 때문이다. 후회한다고 해서 할머니의 병환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할머니를 늘 기억하는 것이 할머니를 위한 마지막 일이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90세가 넘는 나이신데도 얼마 전까지 비교적 정신이 또렷하셨다. 치매 증상으로 크게 가족들을 힘들게 하지도 않으셨다. 마지막까지 좋은 기억만 남는다는 점에서 이는 우리 모두에게 축복이었다


진료를 마치고 마침, 필즈상 수상자인 허준이 교수의 서울대 졸업식 축사를 보았다. 할머니를 뵙고 나니 유달리 인상 깊게 여겨지는 대목을 인용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취업 준비, 결혼 주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일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기 않기를 바랍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어려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 허준이 교수, 제79회 서울대학교 학위수여식 축사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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