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혹은 그 이전에 이 책을 접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작년에 책을 읽었다면, 피보다 진하지 못했던 스스로를 타박하였을 것이고, 그 이전에 읽었다면 자신에게 더욱 채찍질을 가했을 것이다. 지금이 달라진 것은 세이노가 독설과 냉소로 가르치려는 내용 중에 새겨들을 만한 것만 적당히 취사선택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700p가 넘는 책이 채 만원이 되지 않고, 심지어 ebook으로는 무료로 볼 수 있다는 점은 최소한 '돈 버는 법으로 돈 버는 놈들'을 비난하는 그의 태도와 일치한다는 점에서 신뢰감을 준다. 실제 소득을 검증을 했는지 따위로 돈 버는 인증 같은 게 없어도 그가 부자라는 것이 거짓으로 보이진 않다. 자신의 삶과 신념에 충실했고, 그 결과 자타가 공인하는 성공한 사람의 모습이 책의 거의 모든 챕터에서 느껴진다. 책을 팔 목적이 아니라 세련되게 목차나 흐름이 정리되지 않아 중구난방인 부분은 있었으나, 대신 글 하나하나마다 진정성이 느껴졌다는 건 여타 독자들에게 참 교육을 시전 하는 자기 개발서들과는 결이 다른 부분이었다.
안타깝게도 세이노가 열변을 토하는 내용을 보면서, 그가 독자들에게 바랐을 이성적인 울림보다는 다른 것들을 많이 느꼈다. 그의 글을 보며 열심히 동의하지도, 그렇다고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저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던 그의 삶에 연민을 가졌다. 물론 그는 돈도 적고, 사회적 위치도 높다 할 수 없는 사람이 감히 자신의 삶을 동정한다는 것에 불쾌함을 느끼리라 확신하지만, 안타깝게도 독후감이라는 글의 영역에서 절대 갑은 독자이니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믿지 않는 삶의 태도였다. 공무원은 자신의 영달 혹은 일의 편의를 위해 어지간하면 민원인의 요청을 '묻어두는'사람들이고, 은행원은 '정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값싼 서비스를 대가로 비싼 예대마진을 가져가는 사람들이다. 병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의사는 어떻게든 환자들에게 이윤이 남는 시술을 권할 것이고, 변호사 역시 마찬가지다. 하다못해 집안 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할 일을 대행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는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의 말을 전부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거창한 사회과학 이론 (예를 들면 주인-대리인 이론)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내가 모르면 속기 쉽다는 사실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그런데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속아서는 안된다'의 개념보다는 '믿을 수 없다'라는 인상을 더 많이 받았다. 말장난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꽤나 다른 생각이다. 믿을 수 없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타인을 불신으로 대한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럴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는 교환으로 이루어진다. 그가 법률 지식을 공부하고, 의학지식을 배워서 설사 변호사나 의사보다 더 뛰어난 지식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한계가 있어 그가 모든 걸 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동시에 자기 사업에 대한 재판 변론을 하면서 동시에 수술을 하는 상황이다. 우리는 결국 남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그들을 100% 믿는 것도 문제겠지만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면 불안해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단적으로, 그에게 책 출판을 의뢰한 출판사는 세이노가 약속한 사항을 100% 지킨다고 믿을 수 있을까? 그도 결국 그 약속을 믿었기에 신념을 바꿔 책을 낸 것은 아닌가? 이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기도 한데, 가끔 자신에게 유리한 규정 몇 개만 가지고 끝까지 자기주장만 펼치는 사람을 보기 때문이다. 그 완고한 모습이 자꾸만 겹쳐 보이니 세이노라는 사람은 혹시나 마음의 장벽을 빙 둘러치고 사람들을 절대로 오르게 하지 못하게 막는, 그런 타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믿지 못하고 홀로 자신의 성을 지키는 그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외로움'이다.
작가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며 비판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닌가 보다. 세이노는 책 한 챕터를 빌려 자신은 '너희들이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는' 행복한 사람임을 보여준다. 아내와 자식과 함께 맛있는 것도 먹고 여행도 다니는 삶. 평범한 사람이 누리고 싶어 하는, 돈에 구에 받지 않고 원하는 것을 하는 삶. 요즘 유행하는 말로 소위 '경제적 이유'를 이룬 자기가 무엇이 불행하냐는 것이다. 오히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세이노에게는 무언가 결여되어 있다는 강한 의심이 들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행복한 사람은 그렇게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
자기 아버지를 언급하는 대목을 보며 확신을 가지는 동시에 세이노라는 사람에 대한 측은함이 들었다. 의사였던 아버지는 어린 세이노에게는 보여주어선 안될 병원에서의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노출시켰다. 수술실에서 피투성이로 누워 있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숨 쉬는 고깃덩어리와 같은 모습들을 계속해서 보며 자라는데 인간의 존엄성을 느낀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다. 그래서일까, 책 전반에 걸쳐 인간에 대한 냉소주의가 넘쳐난다. 책에서 의문이 들었던 모든 퍼즐이 풀리는 느낌이다. 자신부터 사랑하지 않았기에 결코 남들을 사랑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맛있는 것도 먹고 여행도 다니는 그의 내면에는 여전히 가난이 주었던, 누군가의 죽음이 주었던 공포가 더 크게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부정적인 입장에서 글을 썼지만, 하나하나씩 살펴보면 배울 점도 꽤나 많은 책이다. 자신이 맡은 일을 단순하게 생각하지 말고, 항상 어떻게 발전시킬지 고민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꽤나 중요하면서도 자주 잊어먹는 일이다. 특히 '미국에서 말하는 길거리 지식'이라고 표시된, 사소해 보이지만 어떤 직업을 가져도 사람인 이상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것들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도 굉장히 새겨들을만한 내용이다. 문제는 책의 그 어디에도 '정도'를 나타내는 말이 없다는 것이다. 책에 표지에 있는 '피보다 진하게 살아라'는 말이 문자 그대로 '삶'의 전체에 녹아 있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인생의 한 번은 피보다 진하게 살 필요가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나도 그렇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성공과 실패를 떠나 적어도 한 번은 피보다 진하게 살아보았다고 확신한다. 실제로 특히 우리나라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압박감을 여기저기서 굉장히 많이 받으니 말이다. 다만 문제는 때와 정도다.
인생의 모든 순간을 그렇게 살 수도 없고, 살 필요도 없다. 그렇게 스스로를 채찍질해 가며, 오직 이기기 위해 살아온 그에게 무엇이 남았을까. 같이 책을 읽고 토론했던 친구의 말처럼, 이제야 그 '무엇'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책으로 영향력이라는 걸 만들려는 건 아닐까. 그렇게까지 이 악물며 누군가를 의심하고, 경제적 자유를 위해 모든 걸 대가로 바치지 않았어도 되었는데 말이다. 정도도 마찬가지다. 모든 삶을 진하게 산다는 건 너무나 피곤하지 않을까. 아니 그전에, 그게 가능할까?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번아웃 신드롬을 생각하면 충분히 대답이 될 듯하다.
피보다 진하게 살라고 하니, 피가 진하면 생기는 문제를 언급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신체를 갑자기 격렬하게 써야 할 때가 있다. 산소 공급도, 노폐물 제거도 빨리 되어야 하니 호흡이 가빠지고 심박수가 올라간다. 피 속에 녹아있는 영양분이 늘어난다. 그런 상태가 항상 지속될 때, 우리가 붙이는 병명이 있다. 당이 많으면 당뇨병, 지방이 많으면 고지혈증이다. 혈관이 막히고 몸이 기능을 잃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가 계속해서 진하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뇌졸중, 암과 같은 사실상의 사형선고다. 삶을 사는 것이 크게 다르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