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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J May 10. 2024

무하마드 피델

시리안

2023년 2월 6일 독일에서 카톡이 왔다. 2022년 9월 튀르키예 여행 중 샨르우르파에서 우연히 만난 대학 동문이었다. 그는 지진이 발생한 우르파 유튜브 영상을 보내주었다. 규모 7.8 강진. 진원지가 우르파에서 차로 한 시간 반 걸리는 가지안테프 인근이라고 했다.


——우르파에 지진이! 우린 지진 위험지역인 줄 전혀 모르고 갔었는데요. 사상자가 엄청나겠네요! 이런 자다가 날벼락이 ㅠㅠ


——여행한 지 불과 4개월밖에 안 된 지역이 폐허가 되어 있는 걸 보며.. 안타까움을 넘어 신이 도대체 인간에게 무슨 의미인지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아내와 어디 donation을 할지 얘기 중인데.. 분쟁지역이라 도움의 손길이 재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전달될지도 의문이라고 하더군요... 시간이 조금 더 지나 어느 정도 복구되면 다시 한번 가볼 생각입니다. 그땐 무작정 가는 여행이 아니라 지역에 어떤 도움이 될지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고요..


——전쟁보다 비참한데 보고만 있는 게 무기력하죠.. 수많은 생명이 한순간이라 망연할 밖에요. 마르딘에서 시리아 난민 집에 방문했었는데 생각보다 열악해서 놀랐었죠. 그 지역이 지구촌 아픈 손가락이 됐네요.. 터키 남동부, 시리아 북서부.. 너무 안타까워요..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의미가 있을 겁니다.


현재까지 튀르키예에서 53,537명, 시리아에서 5,951–8,476명이 사망했고, 부상자는 총 121,704명으로 집계되었다. 이번 지진은 1939년 같은 규모의 에르진잔 지진 이후 터키에서 가장 큰 지진이며 1668년 북아나톨리아 지진 이후 두 번째로 큰 지진이었다. (2023 Turkey–Syria earthquakes @Wikipedia)


2024년 1월 새 학기가 시작되고 학생들을 교실에서 만났다. 무하마드 피델. 시리아인으로 튀르키예로 피난 가서 살다가 작년 말 호주에 도착했다고 한다. 작년 2월 지진이 강타했던 지역이 그의 타운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이른 새벽 도시 전체가 흔들렸고 폭격을 맞은 듯 건물들이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천만다행으로 그의 집은 무너지지 않아 살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전쟁과 천재지변을 겪은 그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 인터뷰를 요청했다.



무하마드 자기소개해 주세요.

내 이름은 무하마드. 시리아 출신이고 시리아는 중동에 있고 아랍국입니다. 터키에서 10년 동안 살았어요. 우리나라 시리아에 전쟁이 나서.


시리아 어디에 살았어요?

어.. 이들립 Idlib 지방의 이흐심 Ehsim이 고향이에요. 터키 국경과 가까워요.


내전 중인 시리아


시리아 내전은 언제 시작됐죠?

2011년에 시작됐어요. 대통령(독재자)이 내 말 안 들으면 죽을 거라고 했어요. 그 후 수백만 명이 터키로 피난 갔어요.


2011년 독재 정치에 반대한 민중 시위를 정부가 유혈 진압해 수만 명이 사망하자 아랍의 봄 일환이던 시리아 혁명이 폭동이 되고 전국적으로 저항군이 형성되며 내전으로 치닫게 되었다.


전쟁으로 위험한데 다른 나라로 피신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은 왜 그러죠?

잘 몰라요. 근데 갈 데가 없어요. 돈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사람들이 죽는군요.

네, 우리 친척만 스무 명이 죽었고 이들립에서 젤 많이 죽었어요. 정부군이 하늘에서 폭격을 해서 2년 동안 계속 타 지역으로 피난 다녔어요. 지금도 그건 악몽이에요. 지진보다 끔찍한 게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폭탄이었어요.


Syrians inspecting the damage after an air strike on Aleppo, Syria’s northwest ©New York Review 2016


독재자는 그가 좋아하는 것을 했고 그가 좋아한 것은 파괴였다. 타운을 파괴했고 사람을 파괴했고 그의 광기는 시리아를 생지옥으로 만들었다.


Syrian residents fleeing violence arrive in the Fardos neighborhood in Aleppo in 2016 ©Newsweek 2018
This family has been walking in freezing cold conditions for 7 hours. ©CNN 2020
Many refugees in Syria's Idlib province are living in tents during a cold and snowy winter ©NPR 2020
Atmeh camp for displaced Syrians close to the border with Turkey in Syria's Idlib province ©AFP 2020


이들립은 2023 지진 피해 지역으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고 12년 내전으로 이미 황폐한 지역시설에 더해 독재 정부의 UN 구호물자 차단, 부족한 의료 시설, 극심한 추위등으로 집을 잃은 시리아인들이 최악의 상황을 겪었다. 2023년 3월 The New Arab에 의하면 시리아 정부는 지진이 터진 북서부에 84회 이상 폭격을 가하는 테러를 저질렀다.


In Syria, earthquake damage widens fractures from war ©Le Monde 2023


너무 힘들었겠네요. 언제 터키에 갔나요?

전쟁이 터지고 2년 후 2013년에 터키로 떠났어요.


그때 몇 살이었어요?

10살. 처음 5년 동안 난민 캠프에서 살았어요. 그 후 시티로 이주해 살았고요. 엄마랑 누나 셋이랑 형이랑. 아빠는 2014년에 돌아가셨어요. 아빠는 터키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우리만 터키에 보냈고 시리아에서 전쟁 때문에 돌아가셨어요.


난민 캠프에서 나와 어디에서 살았죠?

마라슈 maraş에 살았어요. 학교에서 터키어를 배웠는데 어려워서 싫어했어요. 터키 가기 전 시리아에서는 3년 학교에 다녔어요.


아랍어(시리아어) 기억해요?

물론이죠. 아랍어, 터키어, 영어 조금 해요. 터키에서 고3까지.. 고3 중간까지 다녔어요. 지진 때문에 마라슈 시티가 없어져서.


새벽 네시 지진이 발생했을 때 자고 있었나요?

아뇨, 그날 밤 늦게까지 안 자고 있었어요. 조금 흔들렸는데 항상 작은 지진이 있곤 해서 지나가려니 하고 내 방에 있었어요. 근데 갈수록 크게 흔들려서 엄마방으로 가서 형이랑 셋이서 무서워서 꼭 껴안고 있었어요. 누나들은 결혼해서 따로 살고 있었어요. 일분 동안 지진이 나다 멈추자 아파트 밖으로 나왔어요. 우리는 안전한 장소로 이동해서 누나들이 안전한지 연락했는데 통신이 끊겨서 연결이 안 됐어요. 나중에야 겨우 연락이 됐고 다행히 누나들은 무사했어요.


Türkiye, Kahramanmaraş earthquake of 2023 ©Britannica


그때 심정이 어땠나요?

너무 슬펐어요. 매 시간 사람들이 죽었다는 뉴스가 들려왔어요. 친구집이 무너진 걸 보고 울었어요. 십 분마다 두세 개의 지진이 한 달 동안 계속됐어요.


마라슈가 카흐라만마라슈 Kahramanmaraş 이죠? 지진 피해가 제일 컸던 지역이라던데요.

네, 카흐라만마라슈. 지진으로 친한 친구 두 명을 잃었어요. 친척 일가족이 죽었고요. 3개월 동안 울기만 했어요. 우리 도시에서만 만오천 명이 죽었어요.


수많은 건물들이 무너졌는데 무하마드 사는 아파트는 멀쩡했다는 거죠?

우리 동네는 고지대에 있어서 괜찮았던 것 같아요.


텐트에서 지내느라 추웠을 텐데 식량 사정은 어땠나요?

괜찮았어요. 다른 나라들이 구호물자를 보내왔고 호주등 여러 나라들이 지원금을 보내왔어요.


현재 상황은 어떤가요?

지금은 괜찮아요. 여러 나라에서 구호지원이 있어서. 지금은 부서진 건물들을 청소하고 있어요. 그 안에 아직도 묻힌 사람들이 있대요..


작게 항상 흔들렸는데 큰 지진이 올 거라고 사람들이 예상 못했나요?

항상 생각했죠. 지금도 작은 지진은 일어나고 있어요.


근데 왜 거기에 계속 머물렀죠?

모르겠어요. 어디를 가겠어요. 갈 데가 없는데.


그 후 어디에 거주했나요?

우리 가족은 다른 시티로 이주해서 3개월 동안 살다가 이스탄불로 갔어요. 결혼한 누나가 이스탄불에 사는데 매형이 우리를 초대했어요.


이스탄불에서 호주로 왔나요?

네, 5개월 동안 있었는데 그때 호주 정부가 난민 자격으로 우리 가족에게 호주 입국을 허가해서 테스트도 하고 사진도 찍고 비자를 준비했어요.


호주에 언제 도착했나요?

작년 11월에 왔어요. 터키에 사는 시리아 난민들이 많이 왔어요.


세계 각지로 보낸다는데 국가는 선택할 수 있었나요?  국가를 배정해 주고 동의하면 오게 돼요.


무하마드 가족은 호주 빅토리아 주로 보냈군요.

아뇨, 첨에 뉴사우스 웨일즈의 올버리로 갔어요. 정말 아름다운 타운이었는데 무슬림 컴뮤니티가 없었어요. 그래서 멜번으로 오게 됐어요. 지금 우리 이웃이 레바논 사람이고 시리아, 터키 사람들도 많고 터키 레스토랑도 있어요. 터키 음식이 정말 맛있거든요.


호주는 어때요? 맘에 들어요?

안전하고 우리에게 많은 걸 줘요. 공부하고 일할 기회를 주니까요. 매우 만족해요.


터키나 시리아가 그립진 않아요?

솔직히 터키는 그리 그립지 않아요. 내 고향 이들립이 그리워요. 터키도 사랑하지만 시리아가 더 그립죠.


호주와 시리아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

호주나 시리아나 사람들은 좋아요. 다만 호주는 정부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해도 되지만 시리아는 정부를 비난하면 죽어요. 스파이가 항상 주위에 도사리고 있어서 걸리면 감옥가요.


지금도 시리아는 전쟁 중이죠?

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어요. 12년 동안의 전쟁으로 지금까지 백만 명? 이상이 죽었어요.


전쟁이 끝나면 시리아에 돌아가고 싶어요?

아마 여기에서 살면서 시리아를 방문할 것 같아요. 할 수 있다면 시리아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우리를 도와준 호주에도 좋은 일을 하고 싶어요.


전쟁과 지진을 겪은 후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있을까요?

모든 전쟁을 멈추고 선량한 국민들을 살리는 것이요. 전쟁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르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유 없이 죽어요. 시리아뿐 아니라 여러 나라가 전쟁 중이잖아요.


지진은 어떻게 생각해요?

지진으로 무너지지 않을 튼튼한 건물을 정부가 지어야 해요. 언제 지진이 닥칠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터키는 오래되고 부실공사한 건물들이 무너져서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새벽 네시 모두 자고 있을 때.


무하마드는 독실한 무슬림으로 금요일엔 모스크에 가기 위해 수업을 접고 일찍 교실을 나선다.


무하마드에게 신은 어떤 존재인가요?

모든 것입니다. 알라는 신이라는 뜻이고 내게 모든 것을 줍니다.


매일 신께 기도하나요?

새벽 다섯 시 첫 기도로 시작해 매일 다섯 번 해요. 매주 금요일에는 모스크에 가야 해요. 시리아와 터키에서 하던 것처럼.


자신이 운이 없다고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아뇨, 나는 행운아예요. 호주에 왔고 전쟁과 지진에서 살아남았고요. 전쟁이 끝나면 이들립에 갈 수 있을 거예요.


앞으로 계획은 뭘까요?

영어를 열심히 해서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고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어요. 저널리스트로서 호주와 시리아를 잇는 일을 하고 싶어요.  


고향 이흐심에 대해서도 듣고 싶은데요.

산이 있는 큰 마을이에요. 우리는 그린 이들립이라고 해요. 고대 올리브 나무가 많아서 올리브 오일을 많이 생산하는 고장이에요. 우리는 올리브 수확을 돕고 오일을 만들어서 여러 지역으로 보내고 팔기도 했어요. 이흐심이 있는 이들립은 고대 도시로 고대 유적도 있어요.


유서 깊은 지방이네요. 어릴 적 기억나는 추억은?

아침에 학교에 가려고 일어나면 엄마가 요리를 해줬어요. 아빠는 기다렸다가 나를 학교에 데려다줬어요. 매주 금요일 삼촌들과 사촌들과 할아버지 할머니집에 가서 함께 저녁을 먹었어요.


전쟁 전 이들립 지방의 이흐심, 사진 제공=무하마드


이흐심 열 살 동심을 잃고 열아홉 우정이 빛날 때 친구들을 잃고 다시 머나먼 이국땅에 와서 살게 되었다. 한 세기를 몽땅 거슬러 올라가 20세기 초 격동의 역사를 산다면 이 정도의 고난이 될까. AI로 변할 미래를 상상하며 비만을 걱정하고 소셜미디아에 심취해 사는 21세기생 또래들이 스펙터클한 영화에서나 경험할 법한 사건들을 겪었다. 그가 어떻게 얼마나 깊은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지는 헤아릴 수 없을 것 같다. 어른들과 세상은 그에게 너무나 큰 빚을 졌다.


다시 시작이다. 보이지 않는 고난이 찾아올 것이다. 다시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그리움과 외로움을 삼키며 홀로서기를 하는 것이다. 신이 그에게 준 의무와 축복을 안고 다시 인생에 도전하는 것이다. 나무에서 잘려 만들어진 지팡이가 뿌리로 다시 돌아갈 수 없듯이 전쟁이 끝나더라도 시리아에 돌아가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 호주는 그런 마력이 있고 우리 모두는 그렇게 떠나와 산다.


그가 다시 꿈꿀 수 있어 기쁘다. 중동 파견 저널리스트로 국경을 넘나들며 활약하는 무하마드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굿 보이 굿 보이. 그의 앞날에 알라의 축복이 함께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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