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시스 에피소드 1
1904년 6월 16일 오전 8시
마텔로 타워, 샌디코브, 더블린
율리시스 첫 에피소드에는 세 남자가 나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년이 되어가는 스티븐. 집을 나와 샌디코브 해변가의 마텔로 타워 안에 방을 얻어 살던 참이다. 그에게 얹혀 사는 의대생 친구 벅 멀리건. 멀리건의 영국친구 방문객인 옥스퍼드 대학생 헤인즈이다.
세 명 다 문학과 인문학에 심취한 엘리트이지만 두 친구는 스티븐의 수준과는 비교할 수 없어 보인다. 멀리건은 스티븐을 킨치라 부르며 조롱과 무시로 질투를 대신하는 것 같고 헤인즈는 부러움과 존경을 드러내놓고 질문 세례를 한다. 스티븐은 속으로 그 둘을 경멸한다.
스티븐은 스스로를 하인이라고 한다. 영국, 가톨릭 교회, 아일랜드가 그의 주인들이다. (나중에 그는 이들에 얽매여 살지 않기로 작정하고 아일랜드를 떠난다.) 헤인즈는 아일랜드가 당한 부당한 역사를 인정하며 동정 반 무기력 반으로 역사 탓을 한다. 멀리건은 가톨릭 신부 흉내를 내며 전통 가톨릭 의식을 조롱하지만 현실에의 타협과 비겁함을 스티븐에게 강요하는 점에서 영국에 빌붙는 아일랜드의 하인으로 인식된다. 가톨릭 의식을 따르지 않으려고 죽어가는 어머니를 비참하게 보냈다는 멀리건의 비난은 종교와 모성 사이에서 힘들게 고뇌하는 스티븐의 내면에 상처를 더하고 (대학시절, 어머니와 종교를 놓치말라고 충고했던 크랜리와 멀어졌던 것처럼) 돈 많은 헤인즈(영국)에 지식 몇 푼 떠주고 돈을 받아내자는 멀리건의 속내에 분노를 느낀다.
스티븐은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에머럴드빛 돌이 박힌 헤인즈의 담배 케이스를 주시하며 한 개비 받아 핀다. 아일랜드를 장식품으로 끼고 있는 영국은 부정하지만 눈 앞에서 호의를 베푸는 한 개인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 헤인즈의 반유대주의 정서에 흠짓할 뿐. 저변에 깔린 스티븐의 치명적인 콤플렉스는 경제적인 가난이고 멀리건은 그 점을 계속해서 교묘히 조롱한다. (스티븐이 눈칫밥을 먹는다는 표현으로 보아 부유한 멀리건이 옷과 음식등 다른 경제적인 도움을 제공한 듯하다.) 마텔로 타워 열쇠와 맥주 사 마실 2펜스를 요구하는 멀리건에 스티븐은 순순히 응하고 직장으로 향한다. 스티븐의 월급날인 이 날 진탕 취해보자던 멀리건은 샌디코브 바다에 뛰어들며 외친다. The Ship, Half twelve! 12시 반, 더 십에서 보자!
스티븐은 오디세이의 텔레마코스인 셈이다. 마텔로타워의 열쇠를 빼앗긴 스티븐을 텔레머코스가 아버지 오디세우스가 부재한 상황에서 어머니의 구혼자들에 의해 소유권을 박탈당한 상황에 비유한 것이다. 스티븐에게 박탈자는 타워의 열쇠를 가져간 멀리건과 그의 친구 헤인즈이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지만 일단 타워를 떠나기로 그는 작정한다. (그는 곧 아일랜드를 떠날 것이다.)
함께 살 정도로 한때는 맘에 맞는 친구였지만 멀리건은 자기도 모르게 손절당하고 있다. 상처는 주는 게 아니라 받는 것이라고 그는 변명할지 모르겠다. 밝고 활기차지만 무례한 친구와 예민하고 말수 적은 친구의 관계에 금이 가는 시점이다. 실제로 그들의 우정은 회복되지 않았고 제임스 조이스(스티븐)의 펜의 힘이 두려웠던 올리버 고가티(멀리건의 실제 모델, 그 자신 저명한 시인이자 의사로 살다 갔다.)는 수년 간 화해의 손길을 결실 없이 내밀었다고 한다. 그래도 한때 의지했던 친구에 대한 애정은 있었던지 율리시스의 첫 장을 친구의 유머로 장식하며 꽤 비중 있는 역할을 선사한 셈이다. 이로써 친구는 악역이지만 문학사에 불멸하게 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