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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검 Aug 28. 2024

더리 더라 더리 더라 더루~

율리시스 에피소드 6


1904년 6월 16일 오전 11시

샌디마운트 -> 글라스네븐 묘지, 더블린



마차씬

마차에 탄 네 남자. 마틴 커닝햄, 잭 파워, 사이몬 데덜러스, 리오폴드 블룸은 갑자기 죽은 친구 패디(패트릭) 디그남의 장례 행렬에 참석한다. 패디의 집이 있는 샌디마운트에서 글라스네븐 묘지까지 더블린 시티를 가로질러 마차로 다각다각. 장례차를 본 창밖의 행인들은 모자를 들어 경의를 표한다.

Image from JoyceImages


검은 옷에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지나가는 호리호리한 청년이 블룸의 눈에 들어온다.

—저기 자네 친구, 데덜러스

—누구?

—자네 아들이자 상속자

—어디 어디? 멀리건 놈이랑 같이 있던가? 스티븐의 충실한 아카티스(아니어스의 충실한 친구를 역설적으로 표현)!

—아니, 혼자였어.

데덜러스는 아들 스티븐이 못된 무리들과 어울린다며 더블린 악당 멀리건이 스티븐을 버려놓기 전에 그의 모친이나 이모에게 편지를 쓰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자기 아들밖에 모르는 시끄러운 고집쟁이. 이해는 가.. 뭔가 남겨 줄 게 있으니. 블룸은 태어난 지 11일 밖에 안되어 죽은 아들 루디가 떠올랐다. 벌써 10년이나 지났다. 명문 이튼 칼리지의 교복을 입고 몰리 옆에 서있는 루디를 상상해 본다. 내 아들. 그 애의 눈에 비친 나. 이상한 기분일 거야.


하룻밤 사이 고인이 된 패디를 모두가 동정하는 가운데 블룸은 고통 없이 끝난 최고의 죽음이라고 한다. 모두가 눈을 크게 뜬 채 할 말을 잃는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지은 죄를 고해하고 면죄받을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에 결코 좋은 죽음이 될 수 없다. 다른 사내들처럼 그 자신 카톨릭에 속해 있지만 블룸은 다소 엉뚱하고 자유로운 면이 있다. 하긴 종교라는 것이 그의 뼛속 깊이 뿌리박지 못했다. 부모가 헝가리 유대인으로 아일랜드로 이주해서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했고 몰리와 결혼하기 위해 카톨릭으로 다시 개종한 이력이 있다. 그에게 종교는 구성원으로서의 물리적 테두리일 뿐이다. 패디를 포함해 그들은 블룸에게 그저 아는 친구에 가깝고 유대인을 경멸하는 그들 사이에서 블룸은 겉도는 기분이다.


잭 파워는 최악의 죽음은 자살이라고 하고 마틴은 블룸의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한다. 블룸은 아버지가 떠난 날과 남긴 유서를 떠올린다. No more pain. Wake no more. Nobody owns. 아버지는 어머니와 루디가 묻힌 글라스네븐 묘지에 안장되지 못했다. 자살에 자비는 없었고 크리스천 장례도 없었다.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신을 도외시한 죄 중하고 중하도다.


스미스 오브라이언, 존 그레이, 넬슨 장군, 오코넬, 매튜 신부, 파넬 - 19세기에 영면한 아일랜드 위인들의 동상을 지나간다. 더블린 중심가, 색빌 스트릿(현 오코넬 스크릿)의 위인들은 오늘도 더블린 시민들과 함께 한다. 삶과 죽음이 어우러진 모습. 오브라이언의 기일에 어느 여인이 놓음직한 꽃 한 다발. Oot, oot. 1 페니에 브우츠 끈 네 개를 파는 늙은 행상. 1 페니에 자두 여덟 개! 1 페니에 여덟 개! 넬슨 기념비 아래에서 자두를 파는 소녀. 지나가는 유대인 대금업자…

Image from joyceproject.com


묘지씬

죽음 한가운데 심장이 자리한다. 블룸 아버지의 개, 아토스는 죽은 주인을 가슴에 묻고 야위어갔다.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마셔대다 갑작스럽게 떠나버린 패디의 무너진 심장. 죽은 남편 알버트를 향한 빅토리아 여왕의 기나긴 애도, 헛된 사랑. 올드 댄(다니엘 오코넬)의 심장은 로마에 묻히고.. 마운트 제롬 묘지(프로테스탄트) 장례식의 가슴을 때리는 추도사: 나는 부활이자 생명! 농담을 건네는 묘지 관리인의 따뜻한 가슴. 햄릿에 등장하는 무덤 파는 인부들의 심장에 대한 심오한 지식. 무덤 속 늙은 아일랜드의 심장과 손. 스물세 번 반복한 heart라는 단어 뒤에서 펌프질하는 제임스 조이스의 하트. 애정의 자리. 부서진 심장. 매일 수천 갤론의 피를 퍼내는 펌프. 어느 날 막혀버림. 낡아 녹슨 펌프들. 다른 모든 건 무용지물. 부활과 생명? 죽은 것은 죽은 것.

 

관은 내려가고 시야에서 사라진다. 가대에 걸터 서서 관을 안장한 인부들이 올라온다. 모두 모자를 벗는다. 스무 명. 일시 중지. 우리 모두가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다면. 지금 여기에서 다른 사람. 영혼의 환생.. 근데 저기 매킨토시(비옷) 입고 서 있는 멀대같은 인간은 누구지? 누군지 알고 싶네. 상상 못 한 인간들이 꼭 나타난다니까. 도대체 어디에서 출몰한 거지? 분명 아까까진 없었는데. 유령인가?


아주 조금 또는 전혀 자취를 남기지 않고 눈에 띄지 않게 오갈 수 있는 능력은 유령뿐 아니라 작가의 특성이다. 이러한 작가가 되는 것에 성공한다면 현세에 파워풀한 투명성을 이루게 될지도 모른다. 작가는 주관적 입장을 초월해 사람들이 어떻게 인생을 경험하는지 보여주는 가운데 그의 의식을 숨긴다. 신의 경지. 작가는 그의 작품 안에, 뒤에, 위에 보이지 않고 무심하게 존재한다. 자기 소멸. 자기가 없어진 예술의 신, 셰익스피어처럼.


감사. 오늘 아침 우리의 존재는 얼마나 눈부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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