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해 보이는 바다가 반가워서 차에서 내리자마자 냅다 뛰었는데..... 많이 습하고 끈적였다. 한 가지 반가웠던 것은 무료 화장실이
있었다는 점이다. 줄을 서지 않고도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
사실 이번 여행 기간 중에 식구들 모두 한번 이동할 때마다 화장실이 걱정되어서 조금 힘들었다.
관광도시답게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모두 발그스레 상기된 표정으로 칸의 낭만을 찾아 모여든 것처럼 보였다.
그들을 따라 두리번거리면서 걷는데 빨간색 카펫을 깔아놓은 계단이 보였다.
그렇다. 바로 그 유명한 레드 카펫이었다.
칸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국제영화제와 레드카펫이다.
그 유명한 배우들이 밴을 타고 스르륵 문을 열고
내려서 레드 카펫 위에서 한 번씩 기념 촬영을 한다.
말도 안 되지만 사실은 나도 칸에 가면 레드카펫 위에서 손을 번쩍 들고 사진을 찍어보리라
다짐했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펜스를 둘러놓고 철통 같은
보안 하에 가까이 가서 사진 찍는 것조차
관리인에게 아쉬운 소리를 들어야 했다.
하는 수 없이 하얀 펜스 앞에서 엉거주춤 한 장씩 재빨리 찍고 부끄러워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가까이에는 관광안내소가 있는데 잠시 들어가
더위도 식히고 영화제에 출품된 영화와 배우들을 볼 수 있었다. 대충 보고 돌아서는데
브래드 피트님이 등장하셔서 안 찍을 수가 없었다.
비록 레드카펫 위에 서보지는 못했지만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니 집에 가서 올겨울엔
빨간 카펫이라도 하나 장만해야겠다 생각했다.
레드카펫을 지나 걷다 보니 비탈길로 접어들었다. 저 비탈길은 은근히 경사도가 있어서 더운 날 걸어 올라가자니 조금 지치긴 했다. 관광객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서
유명한 호텔들과 카지노가 곳곳에 있었다.
어디를 가든 신호등이 보이질 않는데 어쩜 그렇게 사람들과 자동차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질서 있게 서로 기다려 주는지 존경심마저 들었다. 분명히 사람이 먼저였다. 차들은 사람이 보이면 무조건 멀리서부터 서서히 다가가와
정지를 했다. 아이들의 교통사고 소식이 왕왕
들리는 우리나라를 생각하니 나부터도 반성을 할 일들이 많은 듯했다.
거리에 가로수가 거의 보이지 않아서 그 점이
신기했다. 가끔 마주치는 야자수 나무가 마치 세트장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상점구경도 하고 식사도 하고 걷다 보니 서서히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해가 지니 조금씩 바람도 불었다.
바다를 보며 걷다 보니 해변가에서 운동을 하거나 달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하늘이 드디어 붉어지기 시작했다.
하늘빛이 너무 아름다워 넋을 잃고 바라보는데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 해변은 ' 프렌치 리비에라'라고 부르고
니스까지 이어지는 해변이다.
우리가 갔을 때 마침 요트 페스티벌기간이어서
커다란 보트쇼가 열리고 있었다.
칸의 구 광장인 르 쉬케 입구에 있는 비유 포흐
( vieufaure) 에는 고급 요트들과 어선들이 정박해 있었고 페스티벌에 참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인 듯했다.
노을빛이 무슨 색이라고 표현하기 어려웠다.
마치 그림처럼 그 노을에 기대어 있는 노트르담 드 레스페랑스 성당이 보였다.
17세기에는 신자들이 늘어서 종탑까지 세울 정도로 칸이 성장을 했었다고 한다. 종탑의 시계에서 보이듯 저녁 7시쯤이었는데 이미 문을 닫은 상태여서 아쉽지만 내부에는 가보지 못했다. 탑 꼭대기에 오르면 칸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데 그러지 못해서 조금 아쉬웠다.
그러나 여행이란 조금은 아쉬움이 있어야
다음 여행을 또 계획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칸은 항구도시이다. 수많은 배들이 정박하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배들을 타고 칸으로 들어왔다가 물밀듯이 빠져나간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 도시가 이방인의 도시처럼 느껴졌다. 밤이 되면 도시가더욱 화려해질 것이다. 석양이 아름답지만곧 다가올 밤이 느껴져서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버릇처럼 하나의 현상을 볼 때 그 이면을
또는 그 후의 생길 상황을 함께 생각하게 된다.
지금 기쁘면 그냥 기쁜 거고 지금 행복하면 그냥 행복한 거라는 누군가의 말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나는 행복할 때 그 행복을 충분히 누리지를 못하는 것 같다.
아마도 20년 전에 건강하셨던 부모님이 연이어
돌아가시는 일을 겪으면서 내게는 늘 트라우마처럼 조마조마함이 마음 한편에 도사리고 있는지도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