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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자연스러운 중매인

꿀벌이 농사를 짓는답니다. 네?



생명의 제1 목적은 

후손을 남기는 일이다. 



동물의 경우 짝짓기를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지만, 제 몸을 가동할 능력이 없는 식물 대부분은 수정을 위해 다른 존재한테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꿀벌은 자연에서 가장 중요한 중매인이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식량 작물 중 1/3이 꽃가루를 옮겨주는 곤충의 수분 활동으로 열매를 맺는데 그중 80%가 꿀벌의 수고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꿀벌을 통한 자연수정은 자연계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현상인 셈이다. 



꿀벌한테 힘을 빌려 수정한다는 이 자연스러운 모습을 정작 농사 현장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꿀벌이 아닌, 사람이 직접 붓이나 분무기로 인공수정에 나서는 농가가 더 많은 현실이다. 이들이 인공수정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생산량이다. 인공수정을 할 때는 토마토톤과 지베레린 등 생장조절제를 섞어서 주니 거의 100% 착과가 될뿐더러 큼직큼직하게 자라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 열매가 많이 열린다. 제초제, 살충제에 약한 꿀벌 때문에 농약을 치기 어려운 점도 인공수정을 선택하는 주된 이유가 된다. 약 한 번 뿌리면 될 일을 손으로 김매고, 천적으로 벌레를 잡는 수고를 해야 하니, 어쩌면 꿀벌을 이용해 자연수정을 하는 것을 선택하는 이들이 별나게 보일 수도 있겠다. 



이즈음 참외밭에는 꿀벌이 다리에 꽃가루를 덕지덕지 묻힌 채 붕붕 대며 참외꽃 사이를 날아다닌다. 참외는 꿀벌로 자연수정을 하기 좋은 대표적인 작물이다. 참외는 18~25℃에서 가장 잘 자라는데 다행히 꿀벌도 같은 온도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한다. 또한, 이는 사람이 일하기에도 좋은 온도이다 보니 무성히 열린 참외 곳곳에서 생산자와 꿀벌이 더불어 일하는 모습이 자주 연출된다. 



늦겨울 암꽃이 다문다문 보이기 시작할 무렵에 하우스마다 한 통씩 벌통을 집어넣는다. 꿀벌은 수꽃, 암꽃을 가리지 않고 다니며 꿀을 따서 꿀주머니에 저장하는데 그 과정에서 꽃가루를 함께 옮겨준다. 꿀벌이 건넨 수꽃의 꽃가루가 암꽃에 닿아 수정되면 엄지손톱만 한 열매가 달리고 그로부터 한 달 정도 지나면 우리가 먹는 노랗고 큼지막한 참외가 된다. 



자연수정도 하고 친환경 농사로 참외를 키우면 여간 고생스러운 게 아니지만 인공수정한 참외와는 맛의 차이가 있어 그 수고로움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다. 자연 수정한 참외는 껍질이 얇고 당도가 높으며 아삭한 맛이 좋다. 요즘은 영양을 생각해 과일을 껍질째 먹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자연수정 한 참외는 껍질까지 먹어도 큰 부담이 없다. 이 또한 꿀벌이 중매를 잘 선 덕분이다. 



통통한 모양새에 샛노란 빛깔이 귀여운 꿀벌. 네 덕에 꽃도 열매도 그것을 먹는 사람도 산다.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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