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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Jan 10. 2024

매일 울면서 어린이집을 보냅니다

감동받아서 ...

저는 첫째를 미국에서, 둘째는 홍콩에서 낳았습니다.


덕분에 미국, 홍콩, 한국에서 골고루(?) 아이를 기관에 보내본 경험이 생겼죠. 미국에서는 데이케어(어린이집)과 프리스쿨(유치원)을 보내 봤고, 홍콩에서는 국제학교에 딸린 유치부와 초등학교를 두 군데 보내 보았습니다. 미국에서 홍콩으로 넘어가기 전에는 3개월 정도 시간이 떠서 그동안 한국 "영유"에 보내기도 했고요. 여름에만 보내는 써머스쿨까지 합치면 3개국에서 8군데 정도의 기관에 아이를 보내본 셈이네요.


그러고 보면 이건 모두 큰애의 경험입니다. 둘째는 홍콩에서 태어나기만 하고 생후 두 달이 채 되기 전에 귀국했거든요. 그래서 작년 3월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어린이집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한국의 '얼집'을 육아 10년 차에 비로소 처음으로 경험해 본 것이죠.



둘째가 어린이집 생활을 시작한 건 16개월이 넘은 시점이었습니다. 아이사랑 포털을 통해 대기를 해 놓기는 했지만, 막상 자리가 났다고 전화를 받았을 때는 마음의 준비가 된 느낌이 아니었어요. 첫째는 22개월까지 데리고 있다가 데이케어를 시작했었는데 그것도 빠른 편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보낼까 말까 많이도 망설였습니다. 아직 너무 어린것 같기도 했고, 막내다 보니 더 걱정도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주변 엄마들에게 조언을 구하니 자리만 나면 안 보낼 이유가 없다며 다들 적극적으로 어린이집 생활을 권하는 겁니다. (정확히는 "왜 안 보내려고?"가 주된 반응이었어요.)


그렇게 고민 끝에 시작하게 된 둘째의 어린이집 생활.. 어느덧 10개월이 넘어가는 지금은? 저는 아침마다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있습니다. 초반엔 여러 번 아프기도 했지만, 적응을 마치고서는 울지도 않고 엄마에게 빠이빠이를 하는 씩씩한 둘째는 어린이집에서 나름의 사회생활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비교하고 싶진 않지만 비교가 된다

각기 다른 나라마다 다른 문화와 배경이 있기 때문에 제 경험만 가지고 비교를 하는 건 옳지 않겠지만, 아무튼 한국 어린이집 경험은.... 진짜...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신세계'라고 하는 게 제일 가까울 것 같아요. 외국인 친구들과 해외 거주 중인 한국인들에게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싶을 정도니까요. 한국 어린이집은 정말 상상초월로 세심하게 아이를 케어하고, 부모도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기준 자체가 다르달까요?


예를 들어 '양치'만 봐도 그래요. 저희 아이는 외국에서 국제학교 유치부를 두 군데 다녔었는데, 여느 한국 부모들처럼 저도 아이가 점심 식사 후 양치를 하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양치에 대해 질문할 때마다 선생님들은 모두 당황하는 표정이셨어요. "음... 아이가 원한다면 칫솔과 치약을 가져와서 이를 닦아도 좋습니다."라는 것이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치원 아이가 혼자서 칫솔 관리를 얼마나 잘할 수 있을까요? 몇 달 후 아이의 교실에 방문한 저는 보고 말았습니다. 곰팡이가 핀 채로 썩어가고 있는 아이의 양치컵을요. 다른 한국 엄마들이 그러더군요. "차라리 이가 썩는 게 나아요..."   


그런데 한국의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정말 엄청나더군요. 기관마다 살균소독기가 준비되어 있고, 선생님들께서 아이들 양치를 관리해 주실뿐더러, 양치 후에는 칫솔과 양치컵을 깨끗하게 소독해 주십니다. 어찌 보면 집에서보다 훨씬 더 세심하게 해 주시는 것 같기도 해요. 양치는 한 사례일 뿐, 사실 매사가 다 그렇지요. 추운 날 내복을 입혀 보내면 실내에서 더울까 봐 적절히 겉옷을 벗겨 주시기도 하고, 물장난을 치다가 조금이라도 쏟으면 바로 여벌옷으로 갈아입혀 주시고요. 미국 데이케어에서 아이가 한참을 물에 흠뻑 젖어 놀고 있어도 다치지만 않으면 그대로 두는 것을 보았던 저로서는 그저 감사하기만 합니다. 

칫솔 살균소독기.. 이런거 막 있음. (이미지: 칭찬나라큰나라)

게다가 이게 우리 아이의 어린이집만 그런 게 아니고, 어느 정도 표준화된 케어라는 게 압권입니다. 더 비싼 기관이 더 좋은 곳이 아니니까요. 외국에서는 가격 편차도 큰 데다 보육 서비스의 퀄리티도 제각각이었던 것에 비하면 참 대단하죠. 최소 기준 자체가 아주 높고 섬세하니까요.


세심한 케어가 무조건 '우월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선생님들의 부담이 훨씬 더 크고, 기관에서 엄마들 눈치를 많이 본다는 거잖아요. 외국에서는 어쨌든 교사가 교실에서만큼은 권한을 충분히 가진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한국 보육 환경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최근에 국내에서 문제가 되었던 사건을 보고 많이 느꼈는데요, 어떤 갑질 학부모가 어린이집 교사에게 "아니 뭐, 보육 교사는 제대로 된 교사도 아니지만..."이라는 말을 했더라고요. 아니, 자기 자식 맡아서 돌봐 주는 선생님에게 그런 말이 어떻게 나올까요?


김현수의 <괴물 부모의 탄생>이라는 책을 보면, 한국의 학부모들은 철저히 '소비자'로서 교육 환경에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소비자 마인드라 하면, '손님은 왕,' 즉 '내 자식은 응당 이 정도 대우는 받아야 한다'라는 마인드랄까요? 흥미롭게도 이런 현상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홍콩에서도 똑같이 관찰된다고 합니다. 경쟁이 치열한 동아시아 사회에서 이런 현상이 유독 불거지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씁쓸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신세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내 아이가 무엇보다 소중하지만, 똑같이 소중한 여러 아이를 성심성의껏 돌보느라 애쓰시는 선생님들의 노고는 결코 당연하지 않습니다. 네이버 웹툰 <어린이집에 다니는 구나>는 보육 교사의 생활을 다룹니다. (일단 재밌어서 추천) 그러나 단순한 재미를 넘어, 보육 교사들이 그렇게도 섬세한, 극세사 같은 케어를 제공하느라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 조금은 엿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네이버 웹툰 <어린이집 다니는 구나>



한국인은 뭐다? 밥심이다!

또 한 가지, 한국의 어린이집에서 두드러지는 장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밥'입니다.


제가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낼지 말지 결정하기에 앞서, 현재 다니는 어린이집을 방문해서 둘러본 적이 있습니다. 원장님과 인사를 하고 마주 앉았는데, 원장님께서 다짜고짜 종이를 한 장 내미시더군요. 그것은 바로 '식단표.' 원장님께서는 어린이집 소개에 앞서 먼저 밥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때는 다소 어리둥절했지만, 생각해 보면 당연합니다. 한국인은 뭐다? 밥심의 민족이잖아요! 당연히 밥 얘기부터 해야죠.


어린이집을 시작하니 매일 키즈노트에 식단과 식판 사진을 공유해 주시는데, 저는 요즘도 그걸 보면 마음이 울컥합니다. 너무도 정성스럽고 맛있어 보여서요. 미국에 사는 언니에게도 약 올릴 용도로(!) 가끔 사진을 캡처해서 보내주곤 합니다. 아이가 등원하는 아침마다 어린이집 주방에서 직접 만든 간식과 식사 냄새가 솔솔 나는데, 어른들마저 군침이 돌아요. 아침을 못 먹고 온 친구들을 위해 매일 다른 종류의 죽을 준비 해 주시고, 점심 때는 막 지은 밥과 따끈한 국, 반찬 서너 가지를 매일 다르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경이롭기만 했는데, 알고 보니 구 차원에서 영양상 균형 잡힌 식단표를 지침 삼아 제공하더군요. 가끔은 구청 소속 영양사 선생님을 파견 보내 주셔서 영양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고요. 민, 관의 협동이 이렇게나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어린이집에서 식사하는 아가들 (이미지: 뉴스프리존, 얼굴이 나와있어 어설프게 가렸습니다)


아, 정말 외국에서 학교를 보낼 때 아이의 식사를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일단 당연히 도시락이고요, 국제학교는 여러 국가의 아이들이 모여서 다니기 때문에 너무 냄새가 강한 음식은 꺼려지곤 했습니다. (물론 저희 애는 김치는 싸줘도 안 먹긴 했겠지만요. 전생에 이탈리안으로 추정됨) 알러지 규정도 엄격해서 항상 뻔한 메뉴만 싸주곤 했습니다. 파스타, 샌드위치, 꼬마김밥 같은 것 말이에요. 아이는 입맛이 안 그래도 까다로운 편이라, 늘 도시락이 다 식어서 맛이 없다며 불평을 했습니다. 마침 학교에서 제공하는 케이터링 메뉴가 있기는 해서 그러면 도시락 대신 시켜 먹으라고 돈을 냈는데 (비싸긴 또 오지게 비쌉니다) 애가 하나도 안 먹고 매일 얼굴이 노래져서 굶고 오는 겁니다. 속상해서 한 번 남긴 걸 가져와 보라고 했는데, 먹어보고 갑자기 아이에게 깊은 이해심이 생겼습니다. 진짜, 진짜, 진짜 맛이 없는 거예요. 제가 정말 어릴 때부터 아무거나 다 잘 먹고 입맛이 둔하기로 유명한 사람인데도 도저히 먹을 수가 없더군요. 결국 뾰족한 해결책이 없이 몇 년을 지내다 저희 가족은 귀국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희 큰애도 어린이집과 다름없는 “밥에 진심인“ 한국 학교 식단의 혜택을 보고 있습니다.


하루에 한 끼라도 균형 잡힌 따스한 식사를 한다는 것. 그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요? 아이의 평생에 걸쳐 분명 식습관의 밑거름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미국 영부인이었던 미셸 오바마는 <비커밍>과 <자기만의 빛>이라는 저서를 통해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비만과 영양 불균형에 신음하는 수많은 미국인들을 보며, 어릴 때부터 식습관을 잡아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이죠. 백악관에 텃밭을 키우기도 했고,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지요. 어릴 때 기관에서 먹는 ‘한 끼’가 대충 때우는 냉동식품인지, 손수 만든 신선한 음식인지는 너무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텃밭을 가꾸는 미셸 오바마 (이미지: 뉴욕타임스)

그래서일까요? 아마도 타고난 식성도 한몫하겠지만, 둘째는 완전한 한식 파입니다. 아침에 다른 식구들이 빵과 과일을 먹을 때 혼자서 국과 밥, 반찬을 드시는 바람에 저의 일은 늘어났지만, 나물이며 김치를 넙죽넙죽 먹는 아이를 보면 기쁘기만 합니다. 그리고 아이의 이런 식성에는 분명 어린이집의 공도 어느 정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 달에 얼마 정도 내니? “

저와 마찬가지로 손주 어린이집을 한국에서 보내는 경험이 처음인 친정 아빠가 얼마 전에 물으셨습니다. (특별활동비를 제외하곤) 공짜라고 하니 눈알이 튀어나오십니다. 정부에서 어느 정도 지원해 주는 건 아셨지만, 무상 보육인 건 모르셨나 봐요. 어린이집 결제를 위해 정부에서 바우처를 제공하니, 사실상 공짜가 맞죠. 저도 처음에는 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서비스가 공짜라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지원을 받지 않는다 해도 애초에 미국이나 홍콩의 보육 비용에 비해서 너무도 적은 금액이기도 하고요.


한국에 와서 느끼는 점은, “지원책이 부족해서 아이를 낳지 않는 게 아니구나”라는 거예요. 아이를 낳으면 출산지원금도 현금으로 주고, 매달 육아 지원금도 꼬박꼬박 주잖아요. 게다가 가족지원센터나 도서관 프로그램 등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육아 관련 프로그램도 정말 많고요. 한국의 출산율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만큼 떨어진 건 지원책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버거워서 아이를 키우는 건 엄두를 못 내기 때문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 저출산 대책도 현금을 쥐어주는 것 말고도 (물론 이것에 반대하는 거 아닙니다. 지원금 좋아요 알럽유) 사회가 아이를 키우기에,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란 어른들이 살아가기에 더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고민이 필요한 것 같아요. 교육 관련 종사자들 처우를 개선하고, 자녀를 갑질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학부모들이 발 디딜 곳 없도록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고요. 무엇보다 부모들이 사회 속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얼마 전 둘째를 데리고 지하철을 탔는데, 어떤 할머니께서 아이를 유심히 보시더니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예뻐하셨어요. ”요즘 아이가 귀해, 아이 한 명 한 명이 보물단지야."라며 말이지요. 아이만 보물단지인가요? 어른도 똑같죠. 어른들이 행복해야 아이도 낳지 않겠어요? 전국의 수많은 어린이집이 이렇게도 꼼꼼하고 섬세하게 아이들을 돌보는데, 사회도 하나의 "어른이집"처럼 서로를 소중하게, 귀하게 다루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말: 

물론 간혹 뉴스에서 보이는 끔찍한 학대 및 사건사고들을 떠올리실 분도 있겠지만, 그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평범한 여느 어린이집에 대해 다루고 있다고 생각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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