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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Jun 03. 2024

우리가 진짜 1도 모르는 것들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여러분에게도 이런 책이 있나요?


전공책이든, 사전이든, 시집이든, 성경이든... 어떤 책이든지 간에, 쭉 읽는 것이 아니라 늘 곁에 두고  참고 삼아 자주 찾아보는 책 말이지요. 일종의 '백서'랄까요? 한 분야의 다양한 측면을 다룬 개론서라든지, 한 사람의 감정을 여러 각도로 들여다보는 수필집은 줄을 그은 부분이 긋지 않은 부분보다 적을지도 모릅니다. 글을 쓰거나 다른 책을 읽다가 문득 들여다보고 싶을지도 모르고요.


기후변화와 에너지 부문을 공부하고, 책을 쓰고 있는 제게 그런 책은 빌 게이츠의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입니다. 왜냐하면 1) 비교적 최근에 출판되어 자료가 오래되지 않았고, 2) 기후변화의 대부분의 측면을 대략적인 수치와 근거를 들어 제시하며, 3) 이해가 쉽고 명료하게 쓰였기 때문입니다. 아, 솔직히 책으로서의 재미로 따지자면 ‘꿀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비전문가가 보면 더욱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제게는 매우 도움이 되는 책이죠.


그런데 그 책을 쓴 빌 게이츠에게도 이런 지침서가 있을까요? 옆에 끼고 읽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가 가장 신뢰한다는 학자가 누군지는 알려져 있습니다. 바로 <바츨라프 스밀>이라는 분으로, <대전환>, <숫자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 등 40여 권의 저서를 내놓으셨습니다. 이 분이 쓰신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How the World Really Works>라는 책이 있는데요, 제가 이걸 드디어! 끝냈습니다. (오백년 걸림) 정말 훌륭한 저서고, 오늘 여기에 대해 글을 쓰고 싶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 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말... 재미가 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빌 게이츠는 이 책에 대해 "결코 따분하지는 않다."라고 말했다네요.  Are you sure? 허허)

꿀잼은 아니지만 훌륭한 책 

이 분은 본인을 한 분야를 깊이 연구하는 학자라기보다는 여러 부문을 두루두루 살펴보는 '제너럴리스트'라고 소개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이 분이 잘 모른다고 하는 부문도 그 분야의 박사 급입니다. 그만큼 에너지와 환경, 역사, 과학 전반에 걸쳐 폭넓은 지식을 자랑하는 분이죠. "여우는 많은 것을 알고, 고슴도치는 큰 것 하나를 안다"라는 말을 인용하시며 본인은 탁월한 전문가보다는 사면팔방을 훑어보는 타입이라고 하는데... 이 책 중 여기만 웃깁니다. 여우고 고슴도치고 뭐고, 겁나 방대한 지식과 통찰력을 자랑하는 분이 스스로 탁월한 전문가가 아니라고 하니, 좀 웃겼습니다.  


아무튼, 이 책을 다 읽고 메모를 남겨놓고 싶긴 한데 뭔가 나중에도 꺼내 읽을 수 있을 만큼 쉬운 글로 남기고 싶더군요. 제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기회가 되신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몇 달 전, 비비의 <밤양갱>이 선풍적인 인기를 누릴 때 AI로 구현한 아이유 버전의 <밤양갱>을 혹시 들어 보셨나요? 저는 처음 듣고 당연히 아이유가 커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문가가 듣기엔 어떨지 몰라도, 저 같은 ‘막귀’가 듣기에는 도무지 진짜 사람이 부른 것과 구분이 안 갔거든요. 앞으로 십수 년 후만 해도 인공지능의 역습이 닥치지는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해가 갑니다.

내가 부른 거 아니야...


이런 세대에 살다 보니, “우리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하면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실제 자산보다는 코인에 투자하고, 사이버 인간이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디지털 디바이스가 없다면 가상의 세상을 여는 문이 없어지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에 따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굳건히 “물질문명”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도 전자 기기를 이루는 실리콘이 아니라, 시멘트와 강철, 플라스틱, 암모니아의 4가지 물질이 바로 현대 사회의 기둥이라는 것이지요. 휴대폰이 없다면 (죽을 만큼 답답할 수는 있을지언정) 진짜로 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회 인프라를 이루는 물질들(강철, 시멘트)과 대규모 농업과 어업을 통해 식량 생산을 가능하게 해주는 물질들(플라스틱, 암모니아)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레알, 진짜로 없어져 버립니다.


이 분이 그냥 뇌피셜로 말씀하시는 게 아닙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고, 대답해 보자고요.


- 꼭 필요한가? (필수성)

- 어디에든 존재하는가? (편재성)

- 원하는 사람이 많은가? (수요)

- 대체 가능한가? (대체 가능성)


가장 흔히 접하는 물질, "플라스틱"만 생각해 봐도 그렇습니다. 환경에 좀 신경 쓰는 사람들은 최대한 일회용품을 적게 쓰려고 애쓰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닙니다. 쿠팡과 배달의 민족에 필수불가결하게 딸려오는 일회용품은 배달을 안 시키면 된다 쳐도, 코로나19 때 여실히 깨달았잖아요. 의료계에서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사용은 필수불가결할 뿐 아니라 감염을 막는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기까지 합니다. 우리 삶을 정상적으로 굴러가게 만드는 건 바로 이런 물질들이라는 소린데요, 실제로 플라스틱의 생산량은 1925년 고작 2만 톤이었던 것이 2019년에는 무려 3억 7천만 톤으로 뜁니다. 의료용품, 산업용 부품, 생활용품, 가전제품(마감재를 비롯하여 안팎으로 쬐그마난 플라스틱 부품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얼마나 많이 쓰고 있나요? 



1도 모르는 것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인류는 현재 그 어느 시대보다도 우리가 먹는 것, 쓰는 것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닿는지 전혀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밥상에 올라온 쌀밥은 어디서 오나요?


딱 내 수준에서 상상할 수 있는 농업.. (이미지: Unsplash.com)

엄... 농부 아저씨의 피땀으로...  예전 같으면 실제로 농사를 지어서 정확히 알고 있을 농업의 구체적 절차를 우리는 개념적으로만 어렴풋이 알 뿐입니다. 게다가 현대의 농업은 과거와는 달리 "합성 비료"에 아주 크게 기대고 있습니다. 스밀 교수님은 현대인의 생존과 가장 밀접한 발명이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하버-보슈 공법"이라고 단언합니다. 보슈? 충청도 사람인가요? 그게 아니라, 이렇게 생성된 암모니아로 비료 합성을 못하면 인류 중 40억 인구는 굶어 죽는다고 해요. 현대 인류의 생존을 떠받치는 근간은 휴대폰도, 랩탑 컴퓨터도 아닌 "비료"라니까요.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암모니아의 무려 80퍼센트는 작물에 살포하는 비료로 사용되며, 이 덕에 80억씩이나 되는 인류는 다이어트가 시급해질 만큼 풍족한 식량을 누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알았나요? 암모니아가 이렇게 중요한지? (암모니아는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로키가 살아가는 환경이었다는 것밖에 모름


기후 위기 때문에 화석연료를 줄이고 태양광이나 풍력을 늘이자며 미디어에서는 떠들고 있지만, 사실 비료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 발생도 그만큼이나 엄청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건 잘 모르고, 그저 에어컨 온도를 바꾸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만이 기후 위기 대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비료 사용은 농업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일반적인 시민들의 행동으로는 바꿀 수 없는 것이기도 하고, 농업인조차 손을 댈 수 없는 영역이어서 그렇습니다. '실천'할 수 없는 부분이죠.


강철이나 시멘트는 또 어떤가요? 


스밀 교수님 말마따나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금속 및 비금속 제품이 강철로 만든 공구와 기계로 가공되어 형태를 갖추고 마무리 과정을 거쳐 유통"됩니다. 교량이나 송전탑, 가로등, 비행기, 자동차부터 우리네 부엌에서 생선을 썰고 있는 부엌칼까지, 강철은 우리 삶을 실제로 떠받치고 있습니다. 시멘트로 만드는 콘크리트도 마찬가지예요. 20세기 전반기 50년 동안 사용한 모든 시멘트 양보다 현재 한 해에 사용하는 시멘트 양이 더 많습니다. 게다가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이나 인프라는 영원히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품질이 저하되기 때문에, 지금부터 2-30년만 지나도 급격히 상태가 나빠지는 콘크리트가 많아질 거예요. 그러면 허물거나 교체해야 할 텐데, 그때 시멘트 수요가 얼마나 많아질까요? 

리터럴리 일상을 떠받치는 콘크리트 기둥..(이미지: Unsplash.com)


그리고 여러분도 알다시피 플라스틱, 암모니아, 강철, 시멘트는 모두 기후 위기로 연결됩니다. 넷 다 화석연료에 크게 의존할뿐더러, 생산과 사용에 온실가스가 방출되는 물질들이거든요


지금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많은 나라들과 대기업들은 2050년까지 온실가스를 "넷 제로"로 만들겠다며 큰소리를 땅땅 치고 있습니다. 마치 조금만 노력하면 가능한 목표인 것처럼 말이에요. 


그럼 2050년이 되면 이런 물질들을 사용 안 해도 되나요? 


뭔 소리예요. 친환경의 상징 풍력발전기와 전기차마저 강철과 플라스틱으로 만드는걸요. 대체 뭔 수로 물질세계에서 탈피하냐고요. AI가 아무리 발달한다 한들,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물질세계인데 말이죠. 



그래서 어쩌라고? 

이 책에서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결론입니다. 저자는 자기도 먼 미래를 점칠 수 없다고 깔끔하게 인정합니다. 인류가 예로부터 무수히 예측하고 무수히 틀렸던 걸 지적하며 말이죠. 


먼 미래에 대해 불가지론자가 된다는 것은 정직하겠다는 뜻이다. 우리는 우리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전 지구적 문제에 겸손하게 접근해야 한다. (...) 과거와 현재, 불확실한 미래를 현실적으로 파악하는 게 우리 앞에 펼쳐질 불가지의 시간에 접근하는 최고의 지름길이다. 

- 바츨라프 스밀,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중


이거 사실 '공부하자'는 얘기예요. 우리는 현재 얼마나 진지한 토론을 하고 있나요? 토론을 할 만큼 현세대가 당면한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요? 인터넷 뉴스에 달린 감정적인 댓글에 휩쓸리고 있지나 않나요? 


노르웨이인 친구가 있는데, 그런 얘기를 하더군요. 작년에 노르웨이에서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탑 인기 학과인) 법대와 의대를 제외하고 가장 경쟁률이 높았던 대학 학과는 "철학과"였다고 합니다. 프랑스도 매년 바칼로레아 시험에 나오는 철학적인 문제가 늘 사회적인 이슈가 되며, 남녀노소 누구나 이에 대해 토론한다고 하지요. 


기후 위기는 분명 현 인류에게 닥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입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이에 대한 여러 대안을 '철학적으로' 접근하여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책을 읽고 나니 두꺼운 두께보다 더 묵직한 메시지가 마음 깊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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