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드라이>
기후변화로 인해 변화한 삶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요?
작년에 제 책 <이제 지구는 망한 걸까요?>가 출간된 후 몇 번 받은 질문입니다. 물론 저도 겪어본 바가 없어 뭐라 말하기 어려웠지만, 저는 주로 2020년부터 온 세상을 멈추게 했던 코로나 사태에 빗대어 설명하곤 했습니다. 우리가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일상, 멈추어 버린 경제, 개인적인 이동과 만남까지 제한되는 전지구적인 재앙이었으니, 그나마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건 아니었을까요?
그러나, 사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생존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었던 분이 아니라면 내 몸에 물리적으로 어떤 위해가 가해지는 느낌은 상상하기 어려울 겁니다. 코로나로 목숨이나 건강을 잃고 직장을 잃은 분들이 아니라면, 막연한 공포감과 답답함을 견디는 것이 더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만일 일상의 박탈이 훨씬 더 날카롭고 직접적으로 다가오면 어떨까요?
예를 들면 수도꼭지를 돌리면 나오는 물이 사라져 버리고, 한낮의 뜨거운 열기에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난다면...
읽기만 해도 목이 마른 이야기
기후변화가 가져올 '구체적인' 위협을 상상하고 싶다면, 목이 바싹바싹 마를 만큼 몸으로 느껴보고 싶다면, 이 소설을 추천합니다.
배경은 평소에도 가뭄으로 몸살을 앓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가뭄' 대신 '수자원 위기'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물이 부족하다는 점은 똑같습니다. ('기후변화'도 원래 '지구 온난화'였다가 '기후 위기'로 이름만 열심히 바꾸고 있지만, 실체는 비슷하지요.) 그런데 물이 '부족하다'는 것과 물이 아예 '끊긴다'는 것은 천지차이지요. 어느 십 대 소녀의 집에서는 수도가 끊겼다는 소식에도 식구들은 위기감을 쉽게 체감하지 못합니다. 생수를 쟁이려 코스트코에 달려가서야, 텅 빈 매대를 발견하고서야 등골이 오싹해지지요.
이런 사재기 현상은 조금의 사회 불안감에도 쉽게 나타나곤 합니다. 코로나가 피크일 때, 저는 홍콩에 살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사스가 돌았을 때는 식초가 해독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돌아 마트마다 식초가 품절이었다고 하던데, 2020년에는 휴지가 문제였어요. 화장지의 원료가 모두 마스크 생산에 쓰인다는 소문이 돌아 집집마다 화장지 대란이었습니다. 새벽부터 마트에 나가 줄을 서도 화장지는 구할 수 없었고, 간혹 들어오더라도 1인당 1팩 이상 살 수 없도록 엄하게 감시하곤 했죠. 저희 집도 점점 떨어져 가는 화장지를 보며 발만 동동 구르다가, 딱 한 롤이 남았을 때에서야 간신히 헬퍼 아주머니가 사 오신 화장지를 받아 들 수 있었거든요.
화장지 없다고 죽는 건 아니잖아요. 물이랑은 차원이 다르죠. 화장지 품귀 사태 때만 해도 제 소심한 마음은 요동치기 바빴는데, 제 아이들이 마실 식수가 귀해지면 어떻게 할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습니다. 물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사람들은 우선 정원부터 내버려 두기 시작합니다. 예쁜 꽃밭이 자랑이었던 이웃집은 어느덧 돌밭으로 변했고요. 그다음은 샤워와 세수를 포기했죠. 변기 물을 내리는 것도 어느새 사치가 되어 버립니다. 집안은 퀴퀴한 썩은내로 진동을 하지만, 청소조차 할 수 없는 신세가 되지요. 식구들의 목을 축일 물조차 없으니,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물그릇도 말라버리고 개는 살기 위해 도망가 버립니다.
물이 부족하다고 하면 식수는 생각나지만, 변기까지 생각나진 않잖아요. 물이 우리 일상 구석구석에 주는 혜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지요. 그뿐이 아닙니다. 정부는 물 부족 사태를 맞이하자 일단 한 산업에 물을 몰아주기로 결정합니다. 그건 바로... 네, 농업이에요. 우리가 마실 물도 중요하지만, 식량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농업용수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생명줄입니다. 아몬드처럼 물이 많이 드는 농가는 금방 폐농했지만, 적어도 밀이나 옥수수 같은 주곡을 생산하기 위한 물까지 다 마셔버릴 순 없죠. 어쨌든 사람은 밥도 먹어야 하니까요.
식량 생산만 문제게요? 에너지도 문제입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발전소에는 냉각 등에 필요한 발전 용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대량의 냉각수가 필요한 핵 발전소는 대개 해안에 위치합니다. 일본의 후쿠시마 발전소 사태도 바닷가 쓰나미 때문에 비롯되었지요.) 이러한 이유로 발전소에 물이 끊기면 전기 공급도 끊겨 버리지요. 수도와 전기가 모두 사라진 마을은 금세 폐허가 되어버립니다.
물이 한정되어 있으면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가?
예전에 쓴 글에서도 물과 수자원, 그리고 에너지의 상관관계(그리고 경쟁 관계)에 대해 쓴 적이 있는데요,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뿐 아니라 이렇게 경쟁 관계에 처하기도 합니다. 한정된 자원의 배분에 대한 목숨을 건 고민이 시작되는 것이죠.
지금도 물 부족 사태는 이미 일어나고 있다
사실 물 부족 사태는 하루이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특히 이 소설의 배경이 된 캘리포니아를 비롯하여 애리조나 같은 서부 지역은 건조하고 가물기로 유명한 데다, 기후변화로 인하여 더욱 바싹바싹 말라가고 있거든요. 그래서 예전부터 수도 업체들은 가정이나 회사에서 물을 절약하는 방안을 실천하면 인센티브를 주기도 해 왔답니다. 예를 들어 한 번 물을 내릴 때 사용하는 물의 양이 적은 변기라든지, 비가 오는 날은 물을 주는 스케줄을 취소하는 스프링클러라든지 하는 제품을 구매하면 일정한 금액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식이지요. 특히 미국은 가정집의 정원이 발달해 있다 보니 방금 설명한 날씨 데이터에 기반한 스프링클러라든지 물을 절약하는 노즐, 토양의 습도를 센싱하여 급수 스케줄을 조정하는 스마트 디바이스 등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누수를 탐지하여 집주인의 스마트폰으로 알림을 주는 센서도 있고요.
위에 첨부한 스크린샷에 보면 정원을 개조하여 잔디를 없애거나 물을 적게 먹는 수종으로 없애거나, 스마트 스프링클러 시스템 도입, 빗물받이 마련 등 다양한 물 절약 방안에 각각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한참 전부터 시행해 왔던 것이지요.
물론 이 소설에서는 이런 물 부족 사태를 넘어서서 당장 생명이 걸린 사안이 되다 보니, 물 절약을 권장하는 수준이 아니라 물을 둘러싸고 약탈이 자행되는 무법지대가 되어버립니다. 수영장의 염소 가득한 물을 군대에서 나와 수거해 가기도 하고, 이웃집의 대형 어항을 다른 사람들이 멋대로 들어와 부숴버리기도 합니다. 지금은 단순히 공익 캠페인처럼 느껴지는 수자원 절약이라는 어젠다가, 더 나아가서 어디까지 치달을 수 있는지 상상해 보실 수 있나요?
다음 세대의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저는 원래 아포칼립스 스타일의 소설을 썩 좋아하진 않는데요, 인간의 밑바닥까지 보여줄 수밖에 없는 세팅이 좀 불편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드라이>의 제2장, 다음과 같은 제목은 사람이 기본적인 욕구에 얼마나 취약한지 여실히 드러내지요.
사흘, 짐승이 되기까지
딱 사흘, 물을 마시지 못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마 물 한 잔을 위해 교양이고 체면은 물론이고 인간다움도 기꺼이 포기할 사람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난 상황을 그린 이 소설이 참 매력적으로 느껴진 이유는 주인공이 '청소년'들이기 때문입니다. 성장 소설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같은 표류기지만 <15년 표류기>가 <로빈슨 크루소>보다 밝은 느낌인 것과 비슷하달까요. 난생처음 겪어보는 재난에 부모님의 생사조차 불투명하고, 자신들도 당장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헤쳐나가는 모습이 찡하더군요. 실제로 청소년들은 기후 위기에 가장 취약한 계층이지만, 어쨌든 삶에 대한 낙천성도 생명력도 간직하고 있는 세대니까요. (스포일러일까봐 더 이상 자세히 말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마지막 몇 장은 정말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습니다 ㅠㅠㅠ)
이 소설을 끝내자마자 심한 갈증이 몰려와 물부터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언제라도 손끝에 물과 에너지가 닿는 세상, 이건 당연한 걸까요? 바로 엊그제 짐바브웨에서는 가뭄이 지속되어 '국가 재난 사태'를 선포했다고 하는데, 옆 나라인 잠비아와 말라위도 아마 곧 그 뒤를 따를 것 같다고 합니다 [1]. 안 그래도 농업에 의존하는 국가들이 가뭄에 노출되면 농업용수와 식수난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나날이 심각해지는 기후 위기. 이 소설이 단순히 소설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