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완전한 가정은 없다

주어진 환경을 마주하는 자세

by 앵날



엄마가 파산 신청을 하고 한동안 고민에 잠겼다. 우리 가족이 유별난 걸까. 다른 가족은 어떤 고민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나는 언제부터 다른 가족과 우리 가족을 자꾸 비교하게 된 걸까.




초등학생 때 반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네 집에는 플레이스테이션이 있었다. 반면 마땅한 게임기가 없었던 나는 주말마다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친구와 함께 온갖 게임을 했다. 게임기의 주인은 친구였기 때문에 게임 실력은 언제나 친구가 우위였지만 그래도 주말마다 친구와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컨트롤러를 잡고 무슨 게임을 할지 고민하는 건 즐거운 경험이었다.


친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보던 다른 친구에게도 플레이스테이션이 있었다. 그 친구네에 한번 놀러간 적이 있는데 널찍한 거실의 티비장 안에는 엑스박스와 닌텐도까지 있었다. 티비장 안에 놓인 흠집 하나 없는 게임기들을 보자 나는 갑자기 기름진 음식이라도 들이킨 것처럼 배가 꿀렁거렸다. 부러워서 배가 아프다는 기분을 그때 처음 느꼈다. 우리집에는 티비장 같은 건 없는데. 티비 밑에는 닌텐도 대신 바퀴벌레만 잔뜩 있는데. 가끔씩 하얀 바퀴벌레도 나오는데.


그 친구가 부러웠다. 내게는 닌텐도 같은 근사한 물건은 없었기에. 나는 하지 못하는 걸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다른 사람의 성공이 동기부여와 자극제가 된다는 말이 있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런 말이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게 타인의 성공은 내면의 결핍과 무력감만 키울 뿐이었다.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은 비교에서부터 시작하는 법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일이 늘었다. 그래서였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이 성숙해지기는커녕 어딘가 구질구질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스스로의 구질구질함을 감지할 수 있다는 건 다행이었다. 언제까지나 그런 사람으로 남을 수는 없어.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나는 ‘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쿨한 사람이 되는지 알 수 없었다. 내게 그런 사람들은 그저 타고난 것처럼 보였다.




나는 헌병으로 군 복무를 했는데, 우리 부대 헌병들에게 주어진 주된 임무는 위병소 경계근무를 서는 것이었다. 2인1조로 하루에 두 번, 한 번에 네 시간 씩 들어가는 경계근무에서 모든 헌병에게 주어진 공통 과제는 ‘어떻게 하면 근무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때울 것인가’였다.


해결책은 언제나 하나로 귀결되었다. 바로 경계근무를 같이 서는 근무자와 서로 흥미 있을만한 이야기를 최대한 쏟아내는 것이었다. 그래도 할 말이 다 떨어져서 한두 시간은 멍하니 있다 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말발 좋은 친구가 헌병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상병이었던 나는 여느 때처럼 위병소 안에서 네 시간을 견디기 위해 후임과 부지런히 입을 놀리고 있었다. 어쩌다 대화는 가족 이야기로 흘렀는데, 가족에 대한 기억이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았던 나는 이야기를 짧게 마치고 다시 재밌는 주제로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후임은 그럴 생각이 없었는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저희 아버지는 많이 엄격하셨습니다. 제가 왼손잡이인데 아버지는 왼손잡이들이 팔자가 흉하다면서 제가 왼손으로 수저를 들거나 연필을 잡을 때마다 야단을 치면서 오른손으로 먹고 쓰는 훈련을 시켰습니다. 저번에 저보고 양손잡이는 처음 본다고 신기해하지 않으셨습니까. 저 원래는 왼손잡이입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양손잡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어쩌다가 되어버렸다. 그 말이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뇌리 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어린 시절을 담담하게 고백하는 후임 앞에서 나는 어쩐지 부끄러워졌다. 자신의 아픔을 이렇게 차분한 자세로 고백할 수도 있구나. 그럴 수 있는 후임의 용기가 부러웠다.


나는 한때 가족이 부끄러웠다. 엄마와 아빠가 떨어져 산다는 사실, 집안의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사실을 되도록이면 감추고 살아왔다. 나는 어느새 ‘척하는 인간’이 되어있었다. 남들의 시선은 신경 안 쓰는 척, 부족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낸 척했다. 부끄러워해야 하는 건 가족이 아닌 나 자신이었다.




후임과 대화를 나눈 이후, 내 안에 묵혀놓았던 질문들의 답을 구하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과학자는 무슨 꿈을 꾸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소설가의 청소년기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사업가의 인생은 어떤 굴곡이 있었는지를 살펴보면서 내 모습에 투영했다.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성공한 사람들의 인생에는 항상 실패가 있었다는 것을. 지금에야 실패 없는 성공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당시 나는 실패를 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성공에 가까워진다는 순진한 성공론을 믿었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내가 바라는 성공은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가 나를 인정해야 한다. 남들의 인정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것이다.




세상에 완전한 가정은 없다. 내게 주어진 환경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결국 주어진 환경을 어떤 자세로 마주하는가에 대한 문제만 남는다. 우리는 모두 어쩌다가 무언가 되어버리지만, 주어진 환경을 하찮게 여기지 않고 부지런히 가꾸면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친구와 게임기를 가지고 놀았던 순간을 기억한다. 위병소에서 후임과 대화를 나눴던 순간을 기억한다. 사람들과 교감하면 그들의 이야기는 내게로 흘러들었다. 그러자 마음 저변에 깔려 있는 비교의식과 열등감이 걷히고 세상과 나 사이에 동질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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