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끝나도 삶은 계속된다

무너지지 않는 주인공의 삶

by 앵날



얼마 전에 읽은 소설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장류진의 데뷔작이자 단편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그녀가 선보인 세계에 흠뻑 빠졌었던 나는 작가가 첫 장편소설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길로 책방으로 향했다.


그녀의 장편소설 역시 나를 흡입력 있는 세계로 데려가리라 기대하면서 <달까지 가자>의 첫 장을 펼쳤고, 장류진은 이번에도 나를 자신만의 세계로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달까지 가자>의 등장인물 정다해와 강은상, 정지송은 같은 회사의 동료이자 회사에서 ‘비공채 출신 3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주인공 다해는 회사의 큰언니 은상의 제안으로 가상화폐 투자를 시작하고, 이후 지송까지 합류하여 그들은 전 재산을 가상화폐에 붓는 위험한 도전을 이어간다.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들이 투자한 가상화폐 ‘이더리움’의 가격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2017년 당시 실제 이더리움의 가격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2017년⋯. 그 해는 내가 가상화폐에 투자한 해이기도 하다. 나 역시 <달까지 가자>의 인물들처럼 우연한 기회로 가상화폐를 접하고 가상화폐의 가능성에 매료되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며칠에 걸쳐서 이더리움 150만원어치를 매수했다.




개인적으로 목표한 매수액 150만원을 달성한 다음날, 나의 150만원어치 이더리움은 270만원이 되어 있었다. 당시 그래프를 보는 내 마음은 심장이 두근거렸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아르바이트로 한 달에 80만원을 받던 시절, 아르바이트 급여 한 달 하고도 2주일 치의 돈이 하룻밤 사이에 불어나 있었다. 어느새 나는 소설 속 인물들처럼 외치고 있었다.


“J커브 가즈아! 달까지 가보자.”


물론 그때 이더리움을 팔지는 않았다. 가파른 상승세에 힘입어 다음날이면 이더리움의 가격이 더 오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자, 270만원이었던 이더리움은 180만원으로 내려와 있었다.


사람은 기회비용이라는 개념을 정말 자기 멋대로 사용한다. 애초에 150만원을 넣은 게 180만원이 되었으니 30만원 벌었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최고점인 270만원에서 180만원으로 내려왔으니 90만원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기이한 투자자의 마음으로 6개월 동안 가상화폐 거래를 이어갔다. 2018년을 앞두고 나는 약간의 수익을 끝으로 가상화폐 거래를 그만두었다. 가상화폐 때문에 그동안 마음 졸인 것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수익이었다.


* 이후 내용 <달까지 가자> 결말 스포 주의




이러한 경험이 있기에 나는 <달까지 가자>를 읽으면서 주인공 다해와 그녀의 동료들이 흔히 말하는 ‘나락’을 경험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결말은 다행히도 해피엔딩이었다. 다해와 은상, 지송 모두 억 단위의 수익을 얻고 가상화폐 시장의 짜릿한 승자가 되었다.


<달까지 가자>의 주인공 다해는 가상화폐로 얻은 수익 전부를 월세방에서 전셋집으로 이사를 가는 데 쓴다. 인생역전을 할 만한 돈도 아니었으니 회사는 얄짤없이 계속 다녀야 한다. 소설 치고는 주인공의 결말이 꽤 현실적이다.


소설이 가진 힘이 여기에 있다. 소설은 허구이면서도 현실에 단단히 뿌리내려있다. <달까지 가자>는 가상화폐 투자에 가장 성공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럼에도 그 성공이 인생을 바꿀 정도로 대단치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소설은 누군가의 삶이 하나의 이야기로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설은 막이 내리고 다해와 은상, 지송은 분명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갈 테지만, 또한 이전과는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갈 것이다.


누군가의 삶이 하나의 이야기로는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 소설은 내게 이 사실을 알려줬다. 내게 주어진 환경이 별거 가정이든 가난이든 다른 무엇이든 나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내게 주어진 환경이 어떻든 내가 걸어야 할 길은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소설을 읽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다.




사실 나는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소설은 결국 허구라는 생각이 들면 소설이라는 세계가 무의미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 역시 현실이 투영된 세계라는 것을 깨닫고는 비로소 소설이 이룩한 세계에 뛰어들 수 있었다.


소설에서조차 자신의 운명을 어쩌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현실보다 더욱 현실 같아 보인다. 소설가 김영하는 말했다. 소설가는 이야기를 창조하는 전지전능한 위치에 있는 것 같지만, 소설 속의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인물들이 가는 길을 막을 수 있는 건 없다고. 소설이라는 세계에 깊숙이 들어갈수록 소설가가 도리어 인물들의 발자국을 뒤쫓는 모양새가 되는 것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라 할지라도 삶의 부조리함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뜻밖의 위안을 준다. 우리 역시 운명에 어느 정도 발목 잡힌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서 승리했노라 장담했지만 얼마 안 가서 예기치 않은 절망에 빠질 수도 있고, 부모님을 잠시만 돕겠다며 무심한 자세로 거든 사업이 영혼을 바칠만한 천직이 될 수도 있다. 운명에 맞서 발버둥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본다.




소설 속의 주인공에게 배울 점이 있다면, 그들은 갈등할지언정 결코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 역시 자기 나름의 세계에서 자기 나름의 삶을 이어갈 뿐이다. 주인공이 소설에서 겪는 불가사의한 사건은 언젠가는 끝날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갈등하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고 삶의 의지를 이어간다.


나 역시 내게 주어진 환경이 무엇이든 그것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자 마음속에 닫혀있던 창 하나가 새로 열리는 느낌이었다. 소설의 막이 내려도 주인공이 삶을 계속 이어가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이야기가 끝나도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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