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사일지
"귀하의 뛰어난 역량과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
취업 준비를 하면서 도저히 적응이 안되는 내용의 문자다.
취업 준비를 시작하며
공대에 입학한 나는, 같은 학과의 사람들의 공통 커리어패스처럼 대학교 4학년 때 본격적인 취업준비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어떤 일을 하고싶은 지에 대한 깊은 고민도 없었고, 제조업이 나에게 맞을까 하는 .. 막연한 의문만 있었다. 이 길이 나한테 맞나? 하는 의문은 지울 수 없었지만 결국 불안함에 쫒겨 남들 따라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공대가면 제조업에 취직할 거 알았잖아?
사실 공대에 입학 하게 된 것도, 미래의 취업에 유리할 것이라 생각해서 입학했다. 고등학교 당시에는 병리학을 공부 해보고 싶어 해당 과의 전망을 알아보았는데, 별로 좋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기억에 남는 건 다른 계열들이 비가 내리는 수준이라면 해당과는 태풍이 부는 수준이라는 글이었다. 이런 글들을 읽고 더욱 선택이 어려웠다. 부모님은 지거국 공대를 가기 원하셨고, 결국 두려움을 이기지 못 해 선택했다. 결국 공대가면 제조업에 몸 닮을 걸 알았는데도 계속 외면해왔고 직면하길 미뤄두었던 것 같다.
사회에서 내 놓을 수 있는 건 정량적인 것들
졸업할 당시 내 성적은 4.5만점에 약 3.5라서 학과 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애매한 수준이었다. 1학년때는 놀아도 된다는 선배들의 홀림, 물리와 화학을 공부하기 싫어서 1, 2학년에는 술 마시고 동아리 활동하면서 놀면서 재수강도 해보고 2.X의 학점도 받아봤다. 그러다가 2학년 말에 '이렇게 살다간 큰일나겠다' 싶어서 3학년부터 정신 꽉잡고 공부했다. 매일 도서관을 가고, 학술 동아리에 들고, 족보를 몇번씩 돌려가면서 악깡버로 공부했더니 해당 학기 차석을 했다. 그렇게 4학년까지 노력해서 올린 게 3.5라는 성적이다.
하지만 기업에 입사 지원을 하면서 성적칸에 기입할 땐, 제가 사실은 이랬는데요 ~ 중간부터 정말 열심히 해서 여기까지 올렸어요! 라는 내용을 쓰지도 못 하고 그냥 숫자를 기입할 수 밖에 없었다. 1학년 때 놀아도 된다고 했던 선배가 미워지는 순간이다(남탓 금물). 의미 있는 활동도 간단히 서술하게 되어있다. 자기소개서 작성할 때 풀어 쓸 수는 있겠지만, 그동안 나의 이야기를 글로 써 본적이 없어 알맹이 없이 내 자랑만 썼다. 현직 선배들에게 첨삭 받고 지적도 받아가면서 자존감이 떨어지는 순간도 있었지만 받아들여야했다.(합격자들은 다르자나 .. )
나만 도태된 기분
뜨는 공고는 모두 지원 했지만 죄다 서류를 탈락하며 자존감이 뚝뚝 떨어져갔다. 그 와중에 친한 선배 동기는 서류합격하고 인적성 준비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나만 도태된 기분이었다. 이렇게 계속 나만 남겨져 있을 것 같은 기분에 불안함은 심해졌고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 때는 자존감이 너무 떨어져있던 시기라, 무슨 기업이고 무슨 직무고 상관없이 그냥 '합격'이라는 문구를 보고 싶어 아무데나 지원한 적도 있었다.
양치기 성공 ~ 면접 후기
거의 기계적으로 채용형인턴/신입사원 채용 지원서를 제출했더니 L모그룹 계열사의 개발직무 채용형 인턴에 합격을 했다. 채용 대상이 졸업 대상자였기에 경쟁률이 괜찮았는지 서류 합격을 했고, 고통스러운 취업준비에서 벗어나고 싶어 미친듯이 인적성과 면접을 준비했다. 당시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기라 온라인 인적성이었는데, 온라인 인적성 도입 초기라 그런지 탈락자는 거의 없었다. 결국 면접에서 승패가 갈리는 것이었고 면접스터디를 들어 계속 다듬어 나간 뒤 온라인 면접을 봤다. 면접은 자기소개서 질문과, 저학년 학점이 부진했던 내용, 가벼운 전공질문 2개 등 총 10개의 질문이 빠르게 지나갔고 대부분 무난하게 답하여 합격할 수 있었다.
결론은 운9기1
동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까다로운 전공질문과 심층 면접 과정을 겪곤 했다는데, 나는 그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에 운이 좋다고 해야할 지 모르겠다. 나의 경험에 빗대어 보면 취업은 운9기1 같다고 느꼈다. 오프더레코드지만, 면접에서 1순위 지원 직무에서 후순위로 밀려 사실 2순위 직무로 면접을 본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입사하게 된 팀은 원래 여자를 안 뽑는 팀이었는데, 한창 여타 기업들이 여자 임원들을 키우는 훈풍이 불 때라 그 여파를 타고 처음 여자 신입으로 뽑힌 것이었다.
그래도 노력은 해야해
이러한 운9기1을 겪은 나로서 취업 준비를 하던 당시 불안해 했던 게 에너지 낭비였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물론 지원 자격이 되고 남들보다 경쟁력있는 인재로 비춰져야 하니, 마냥 운을 믿고 아무것도 안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를 헤쳐가면서까지 불안해 할 필요는 없었구나 싶은 것이다. 그리고 동기들도 대부분 시기가 다를 뿐이지, 취직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더욱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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