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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사 May 29. 2021

잘못 고른 샌드위치가 글을 쓰게 했다.


안 먹어 봤던 비싼 샌드위치를 샀다.

사실 오늘 아침에 사이렌 오더로 보고 온 것은 이게 아니었다. 늘 먹고 싶었지만 재고가 없어서 못 먹었던 토마토 바질 크림 베이글이 세 개나 입고되어있는 걸 보고 눈꼽만 떼고 달려왔는데, 후회할 걸 알면서 나도 모르게 가장 비싸지만 제일 칼로리가 낮은 샌드위치를 골랐다.

미쳐 가격을 확인하지 못했다. 계산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직원분들에게 어서 피드백을 주고 싶어서였나. 카드 지갑에는 얼마 전 선물로 받은 스타벅스 기프트카드가 있었다. 아마 저 샌드위치를 골랐을 때는 얼마가 나오던 이 기프트카드로 결제하리라 했을 거다.

바코드를 찍고 카드를 내밀려는데, 카드에 문구가 적혀있다. 뭘 등록해서 사용하면 무료 커피를 준다고? 뭔지 잘 모르지만 이대로 계산하면 내가 손해를 보게 될까? 혹은 내 뒤에 줄줄이 계산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데 설명이 길어진다면 그들을 더 오래 기다리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을까.

기프트카드를 슥 집어넣고 결국 내 돈으로 결제했다. 남들 시선 의식하는 걸로는 어디에 내놔도 지지 않는다.


오늘의 커피랑 샌드위치 하나 집었는데 만 원이 나왔다.

헐, 주말 비용은 평일보다 후하게 지불하는 편이지만 9시도 안된 이 시간에 벌써 만원을 지출했다는 것에 죄책감이 들었다. 커피와 샌드위치를 받아 들고 한 동안 후회의 찝찝함이 밀려왔다.

나는 적은 인풋에 훌륭한 아웃풋을 즐긴다.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윽, 이 비싼 샌드위치가 점점 식어가고 있는데 왠지 정이 떨어져 입에 대고 싶지 않다. 참 이상한 성격이다.

집을 나서게 했던 처음 그 결심대로 결정을 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괜찮은 기분이었을 텐데.

꼭 답을 바꿔서 틀린 학생 때처럼 처음 찍은 걸로 하지 않아 후회하는 그 마음을 서른셋이 된 지금 스타벅스에 앉아 느끼고 있다.


사실, 아침에 생각했던 그 베이글이 정답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이 루꼴라 샌드위치를 받아 들고 나니 그 크림치즈 베이글이 더 나았겠다 싶은 거지, 시간을 되돌려 크림치즈 베이글을 골랐어도 쟁반 위에 두고 안 먹었을지도 모른다.


만 원 어치


나는 주 5일을 일하고 그렇게 기다리던 토요일 아침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그러면서도 카운터에서 일하고 있는 파트너들을 보면, 그들은 일을 하고 있는데 나 혼자 나태하게 이러고 있는 것 같은 죄책감이 든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참 이상한 성격이다.

주중에는 아, 좀 쉬고 싶다 하지만 주말에는 아, 일하고 싶다 한다.


가만 보면 아이러니의 복합체다.

소소한 걸 좋아한다고 하지만 블록버스터 영화를 즐겨본다. 분노의 질주와 미션 임파서블은 내 최애다.

어떤 분야에서는 얘가 왜 이럴까 싶을 정도로 게으르다. 또 다른 분야에서 보면 다른 의미로 얘가 왜 이럴까 싶게 부지런하다.

해도 티 안나는 잔잔바리 업무들을 처리할 때는 무기력의 끝판을 달리며 게을러진다. 아직 시간이 널널하지만 꽤나 커다란 미션이 주어지면 화장실도 안 가고 컴퓨터를 붙잡고 있다.

주말 오전에 스타벅스로 출근하는 때는 티브이도 켜지 않고 소파에 앉아 시계만 쳐다본다.

스타벅스가 오픈하는 8시가 얼른 되기를 바라면서.

꽤나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아직도 편식이 심한 것처럼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대하는 태도가 나조차 혀를 내두르고 싶게 확실하다.



옹동이 학살


합리적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합리화의 장인이다.

널찍한 안장에 굵은 프레임을 가졌지만 조금 더 저렴한 자전거 대신 엉덩이에 파고들 것 같은 얇은 안장에 돌부리에 걸렸다간 그대로 고꾸라 질 것 같은 얇은 바퀴에 가격도 비싸지만 디자인이 이쁜 자전거를 산다.

체인 가림막이 없어서 비싸게 주고 산 바지가 기름때로 엉망이 되자, 에라 모르겠다 엉덩이를 흙바닥에 비비고 앉는다.

벤치에 앉을 때 보였던 나뭇잎들 대신, 흙바닥에 앉으니 작은 들꽃들이 보이고 기어가는 개미들이 보이고. 땅에서부터 솟아난 나무의 뿌리가 보였다.

그럼 또 피시식 웃는다.

그래 맞아, 내가 저 비싸고 예쁜 쓰레기 같은 자전거를 산 대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거야.

나는 다 계획이 있었던 거라고!

합리화의 장인은 백전백승이다.

실패하는 적이 없다.


지구력이 없는 편이라 소설 도전을 엄두도 못 내다가, 요즘 한 번 써볼까 하는 마음으로 캐릭터를 만들다 보니 에세이를 쓰는 일에 뜸해졌다.

머리를 쥐어 짜가며 쓰던 어젯밤과 다르게 오늘 아침의 이 글에 숨통이 트인다.

비록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잘못 고른 저 샌드위치는 차갑게 식어가고 있지만, 이제는 오늘 아침 지불한 만 원이 아깝지 않은 기분이다.

헐, 그렇다. 만 원이 아깝지 않은 기분을 얻었다.

내가 갑자기 왜 이 글을 쓰기 시작했지?


어쩌면 나의 만 원을 아깝지 않게 하기 위해, 스타벅스에서의 완성된 무언가가 하나쯤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진행이 한 참 더딘 소설 말고. 한 편으로 뭔가 해 냈다는 느낌을 얻을 수 있는 무언가가! 이렇게 쓰고 있는 글이 내 만 원의 지출에 대한 합리화를 위한 도구라는 생각이 들자,

“너는 이미 그렇게 시스템이 되어 있어”라는 합리화의 장인의 거만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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